사진작가로 제2의 인생 여는 방송인 이상벽
2005년부터 전국 누비며 담아낸 사진… 첫 개인전 열며 변신 모색
그가 지난 2005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전국의 산하를 누비며 담은 2만 장의 사진 중 70장을 엄선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첫 개인사진전을 열고 있다.
“40여 년 동안 기자와 방송인으로 바쁘게 살면서도 늘 마음속엔 창작의 꿈이 사지지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다시 시작한 건 오랜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은퇴 뒤 예술가로 자식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 때문입니다.”
첫 사진전의 주제는 자연이다. 그중에서도 ‘나무’를 소재로 한 포트폴리오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농협에 근무했던 아버님 덕에 어린 시절부터 쉽게 다양한 나무를 접했고 나무는 마치 우리네 인생을 닮은 것 같아 참 좋아했습니다.”
이상벽은 전문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DMZ 사진으로 국내외에 유명한 사진작가 최병관 씨를 스승으로 모셨다. 최 씨는 “방송연예인들이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그림이나 사진을 쉽게 생각하고 자기과시용으로 시작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대부분 1회성에 그치는 경우를 많이 보아서 이상벽 씨에게도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지가 워낙 확고했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예술가적 감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철저한 프로정신에 매료되었죠”라고 말했다.
사진의 기초부터 다시 배우면서 이상벽은 전국을 돌며 사진 찍기에 발품을 팔았다. 직접 현장을 가야 하는 사진의 특성상 에피소드도 무진장이다. 변변한 길조차 없는 산골 오지로 촬영을 갔다가 부상당한 것도 여러 번.
가는 곳마다 알아보는 시골 사람들이 막걸리 한 잔을 권해와 예정했던 사진 작업이 늦어지는 일도 늘 겪는 즐거운 고역이었다. 때론 신문사 기자로 오인받아 ‘사진을 찍지 말라’고 협박당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 연예인 사진동아리를 이끌 만큼 사진과의 인연은 오래되었습니다. 이왕 다시 시작했으니 이번엔 끝을 보려는 각오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 프로 사진가들도 수동카메라를 버리고 해상도가 높고 품이 덜 드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하지만 이상벽은 철저하게 고전적인 사진작업을 고집하는 ‘쟁이 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우선 필름을 사용하는 수동카메라 니콘FM2를 기본 장비로 고집한다. 또한 동시에 여러 장을 연속 촬영할 수 있는 모터 드라이버도 사용하지 않는다. 한 장 한 장 셔터를 직접 돌려가며 찍는 피곤한 작업을 고수한다.
사진 한 장 속에 자신의 혼과 정성을 담기 위해서란다. 또한 촬영한 사진은 트리밍이나 리터칭을 일체 하지 않고 원본 그대로를 인화한다.
구식 촬영 방식을 고집하는 정신만큼 사진전문가인 필자가 봐도 그의 사진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일단 적절한 여백의 미를 전달하는 구성은 물론 사진 촬영에 최적의 광선을 만날 수 있는 새벽과 일몰 시간에 집중적으로 작업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만큼 고생하여 얻어낸 결과물이란 이야기다.
그리고 역광을 적절하게 이용해 환상적이고 입체적인 색감으로 표현해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4계절을 담은 그의 사진 속엔 그가 흘렸을 땀방울의 흔적이 선명하다.
또한 나무를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전하려는 그의 메시지 또한 충실한 편이다. 충분히 감상할 만한 작품들이다.
사실 그는 홍익대 미대 시절 음악감상실 ‘세시봉’의 ‘대학생의 밤’ 음악프로 진행자로 활동을 시작했던 대중음악의 산증인이다.
그는 포크의 대중화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송창식, 윤형주의 ‘트윈폴리오’ 결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트윈폴리오의 원래 이름은 세시봉 트리오입니다.
이익균이란 친구가 군 입대를 하면서 듀오로 변경되었죠. 처음 결성했을 때 세시봉의 이니셜 ‘C'를 달고 방송국 오디션을 보았는데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한동안 공중파 TV의 인기MC로 활약했던 그의 근황이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2005년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공연사고는 그해 연예계의 가장 충격적인 이슈였다.
눈 깜짝할 새에 사고가 발생해 관객들의 환호성과 박수 대신 구급차 사이렌 소리와 비명소리가 난무했던 현장에서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중소도시의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공연이었지만 MBC TV <가요콘서트>를 3년 째 진행했던 그의 땀과 열정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때였다.
“사고가 난 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좋은 뜻을 품고 시작했던 일인데…. 사찰에 가서 4일 동안 사고를 당한 분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사고로 한동안 방송가를 떠났던 이상벽은 지금은 CBS 표준FM <뉴스 매거진>의 진행자로 방송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68년 대학 시절 우연히 CBS 라디오의 <명랑백일장>으로 데뷔해 졸업 후 경향신문에서 발행하는 주간지에서 연예부기자로 10년간 활동하다 운명처럼 들어선 방송인의 길을 벌써 40년이나 걷고 있네요.
” 87년 MBC TV <주부 가요열창>은 그의 출세작. 하지만 이상벽 하면 떠오르는 프로그램은 KBS의 <아침마당>이다. “10년 동안 열심히 진행하면서 3%에 머물던 시청률을 두 자리 수로 올렸어요. 잊지 못할 프로입니다.”
다시 사진이야기로 돌아가자. 이상벽은 방송 활동을 중단할 계획은 없지만 앞으로는 조금씩 사진작가 쪽에 무게를 둔 '제2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다.
그의 첫 사진전은 6월 17일까지 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고 25일부터 7월8일까지는 초대전 형식으로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내 안의 나무 이야기’라는 주제로 계속될 예정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인기 방송연예인들의 사진전 개최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지난달 탤런트 조민기, 가수 박지윤, 개그맨 정종철은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3인 3색’ 사진전을 열었고 개그맨 이병진도 얼마 전 사진집 <찰나의 외면>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었다.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사진촬영이 일반화된 요즘, 이상벽을 비롯한 인기 방송연예인들의 연이은 사진 작품전 소식은 대중문화에 있어 사진에 대한 관심과 비중이 그만치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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