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꼬리표'는 반짝 후광효과에 불과… '실력으로 평가 받겠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가수는 서세원의 아들 서동천과 아일리(34· 본명 김은령)다. 데뷔 전 각종 UCC 사이트를 통해 화제를 모았던 아일리는 'I LOVE YOU'의 이니셜을 조합한 예명이다.
가수 현미가 고모고 노사연이 고종사촌인 그녀의 어머니는 ‘울릉도 트위스트’로 유명한 여성트리오 이시스터즈의 2기 멤버 김상미다.
지난 주말 여의도에서 만난 아일리는 “어른들의 후광으로 가수가 됐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아일리의 가수 데뷔는 어머니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노래 연습을 들으며 성장했다. 엄마의 멋진 무대 드레스는 감동이었다. 책가방에는 책보다 워크맨과 노래 테이프가 더 많았던 아이였다. 중학생 때 노래경연대회에 출전 후 주변 친구들로부터 ‘훌륭한 가수가 되라’는 격려를 받았으니 노래 실력은 집안의 내력인 셈이다.
아일리의 어머니 김상미는 1965년 춘천여고 졸업 후 KBS 연말 톱싱어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가수가 되었다. 66년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여성트리오 이시스터즈의 리드보컬 이정자의 솔로 독립으로 가창력을 인정받아 2기 멤버로 영입되었다.
73년 팀 해체 후에도 80년대 후반까지 솔로가수로 밤무대 활동을 했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아일리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이 큰 눈망울이 붉어진다. “제가 가수로 성공하면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릴 겁니다.
평생의 소원인 솔로 앨범을 제작해드리고 싶어요.” 현재 동덕여대에서 실용음악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는 졸업을 하면 대학에서 보컬 실용음악을 강의할 생각이다.
그런데 가수 친척이 많아 데뷔가 쉬웠을 것 같은데 왜 나이 30을 넘겨 데뷔를 했을까? “95년 연예인 지망생들을 위한 MBC <스타예감> 프로에 나간 후 댄스그룹 제의를 받았어요.
그땐 댄스가 주류였죠. 하지만 솔로가수가 되고 싶어 때를 기다리며 노래 공부를 해오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한 아일리는 한시도 가수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90년대부터 10여 년간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창작 뮤지컬 <꽃님이>, 악극 <아씨> 등에서 활약하며 8인조 크로스오버 재즈밴드 ‘코즈’의 홍일점 보컬로 활동한 것은 다 가수의 내공을 쌓기 위한 오랜 수련이었다.
최근 활동하는 연예인 2세 중 선두주자는 누구일까? 단연 연기자 김을동의 아들 송일국이다. 그는 드라마 <주몽>을 통해 국민배우로 성장했다. 국민배우로 자리매김된 안성기와 이덕화 역시 모두 연예인 2세 출신이다.
연기자에 비해 가수는 상대적으로 위상이 왜소했다. 작고한 배우 김동원의 아들 김세환과 배우 황해와 가수 백설희의 아들 전영록 이후 정상급 스타가수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가요사를 통틀어도 황금심 고복수의 아들 고영준, 이미자의 딸 정재은, 나애심의 딸 김혜림, 박재란의 딸 박성신, 선우용녀의 딸 최연제 정도가 잠시 주목받았을 정도다.
한동안 주춤했던 2세 가수의 역사에 최근 등장한 2세 가수들은 활력을 불어넣을 기대주로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최근 등장해 활동하는 연예인 2세 가수들을 살펴보자.
우선 태진아의 아들 이루, 나미의 아들 정철을 필두로 남성듀오 해바라기 이주호의 아들 이상, 방송인 임성훈의 아들 테이크(임희택), 탤런트 박근형의 아들 박상훈(R&B그룹 멜로 브리즈), 탤런트 정운용의 아들 후(정태수) 등 꽤 많다. 최주봉의 아들 최규환, 이영하와 선우은숙의 아들 이상원, 김용건의 아들 하정우 등 2세 연기자까지 합하면 전체 연예인 2세는 50명이 족히 넘고 있다.
확실히 ‘2세 꼬리표’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반짝 후광효과가 있다. 하지만 부모세대와 비교하려는 대중의 심리 때문에 이내 한계를 보여 왔다. 대부분 2세 가수들은 “실제로 부정적인 면이 더 많고 음반 판매와 인기에도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실력으로 평가 받겠다”고 입을 모은다.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가수 태진아의 아들 이루와 나미의 아들 정철은 부모 관계를 숨기며 활동하다 노래가 히트되면서 공개해 화제가 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제 막 데뷔한 아일리의 성공 가능성은 어떨까? 싱글 앨범을 들어보니 발라드에서 R&B, 보사노바, 댄스까지 각 장르의 노래를 소화한다. “모든 장르를 다 해보고 싶어요.
관객이 요구하면 댄스나 트로트도 예외는 아니죠. 항상 대중에게 감동과 에너지와 기쁨을 줄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래서 음악 카멜레온이 되려고 합니다.” 귀엽고 시원한 마스크와 호소력 짙은 풍부한 음색을 지닌 아일리는 타고난 리듬감각과 시원한 가창력으로 일단 자질은 충분해 보인다.
짙은 페이소스의 질감이 느껴지는 허스키 보컬 또한 탁월하다. 그래서 빠르고 경쾌한 비트의 곡조차 묘하게도 슬프고 드라마틱하게 채색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여자 조성모’로 불려도 될 그녀만의 매력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정체성이다. 이미 트렌드화된 흔한 노래 편곡 때문에 그녀만의 차별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언뜻 들어도 양파나 가비&제이와 흡사한 멜로디 라인과 창법인지라 아쉽다.
또한 표현력 좋고 맛깔스러운 고음에 비해 다소 밋밋하게 들리는 저음 또한 큰 가수가 되기 위해선 개선해야 될 점일 것 같다. 라이브 가수가 되고 싶은 아일리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트로트가수 데뷔를 권유받기도 했지만 장르가 무엇이든 누가 들어도 차별되는 자신만의 사운드와 색깔 찾기에 무게 중심을 두었으면 좋겠다.
유행에 편승하는 트렌드 음악은 비교적 손쉽게 대중적 호감을 얻어낼 수 있지만 긴 생명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연예인 2세 전성시대’는 예견된 흐름일까? 한순간의 유행일까? 과거에는 가난한 집안에서도 명문대학생이 탄생하는 미덕이 있었다. 요즘은 불가능한 시대다.
모든 분야에서 치열한 투자가 우선되기 때문이다. 연예인 2세들은 오랜 기간 투자를 거쳐 치밀하게 준비된 인재들이다. 그래서 지금의 전성시대는 일회성으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아일리의 마지막 말은 많은 걸 시사한다. “빨리 데뷔해 사라지는 것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죽을 때까지 활동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어릴 때 데뷔했다면 인기 스타가 되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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