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가수 금사향 선생 예술, 노래비로 재탄생…

‘홍콩 아가씨’로 유명한 원로가수 금사향선생의 ‘님 계신 전선’ 노래비가 지난 8월 5일 세워졌다.

노래비가 세워진 곳은 강화도 선원사지. 1만5,000평의 연꽃 밭에서 열리는 논두렁 연꽃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팔순잔치를 겸한 노래비 제막식은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축제의 마지막 날 메인 행사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장마가 지나가고 살인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린 이 날, 만개한 수 천 송이의 연꽃이 행사를 축하하듯 장관을 이뤘다.

지금도 각종 공연무대에 오르고 있는 최고령 현역가수인 금사향 선생.

지난 해 신카나리아 선생이 타계한 지금 활동을 하지 않는 백설희선생(27년생)과 더불어 생존해 있는 유성기 시절의 마지막 여가수다. 남녀 통틀어 생존하는 최고령 대중음악인은 작사가겸 가수인 반야월(17년생)선생이 있다.

대한가수협회의 주요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후배들을 격려하는 그녀인지라 이날 행사에는 최백호, 정훈희, 오은주등 많은 후배가수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참석했고 남진, 문주란, 설운도 등이 화환을 보내와 의의를 더해주었다.

금사향선생은 “오늘 제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입니다. 한국전쟁 때 종군가수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는데, 그때 전사하지 않을 걸 너무 감사합니다.”라며 기쁨을 감추질 않았다.

95년 지방자치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각 지방에 유행처럼 각광받고 있는 것이 있다.

그 지방을 대표하는 가수의 이름을 딴 공원과 가요제 그리고 노래비다.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대중가요는 이처럼 최근 지역을 대표하는 각종 상징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6월 제주에 건립된 백난아의 ‘찔레꽃’공원, 부산 송도에 조성된 현인 공원 그리고 목포 유달산의 ‘목포의 눈물’ 이난영 공원을 비롯해 부산 해운대의 ‘해운대 엘리지’, 대전역 광장의 ‘대전블루스’, 흑산도의 ‘흑산도 아가씨’, 춘천 소양호변의 ‘소양강 처녀’, 대구 고모역의 ‘비 나리는 고모령’, 영암의 ‘영암 아리랑’, 포항 영일만의 ‘영일만 친구’ 등 이제 전국 어느 지역이든 노래비는 지역대중문화의 핵심이 되었다.

이처럼 노래비는 특정 지명과 연관이 있는 가수나 국민가요급 노래들이 그 지방에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님 계신 전선’은 사실 특정 지명과는 연관이 없는 노래다.

굳이 따져본다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대구에서 발표된 노래이니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대구나 휴전선 근처 어디쯤이어야 할 것 같은데 왜 강화도의 사찰에 세워졌을까?

노래비 건립의 숨은 공로자는 선원사 주지 성원스님이다. 그는 1997년 황량했던 폐사지에 연꽃을 심기 시작해 지금의 아름다운 연꽃 세상으로 부활시켜 최근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원래 ‘홍콩 아가씨’와 ‘님 계신 전선’ 두 노래의 노래비를 다 만들려고 했지만 노래비로 쓸 돌을 찾기 쉽기 않아 한 곡만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금사향선생께서 강화는 북한과 가까운 지역인지라 ‘님 계신 전선’이 더 좋겠다고 선택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렇다. 10세 때 출가해 속세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성원스님은 사실 대중음악과는 별반 인연이 없었다

. 하지만 최근 속세의 포교행사에 참여하면서 금사향선생을 알게 되었다. 본인이 참석한 행사마다 빠짐없이 등장해 열심히 노래공양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작년 한강 유람선 선착장 행사에서 선생을 처음 뵈었습니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정하게 30분 동안 무대를 누비며 노래와 만담을 거뜬하게 소화하시는 모습에 많은 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더군요.

그래서 연꽃축제 무대에 한번 초대할 생각이었는데 최근 지팡이로 부축을 받아야 될 만큼 건강이 나빠져 의자에 앉아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니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 가수 불자들로부터 “많은 국민이 사랑하는 노래를 발표하셨고 성품 또한 좋아 많은 후배가수들이 존경하는 원로가수인데 노래비 하나 없고 가족도 편안하게 모실 형편이 못돼 외롭게 지낸다.”는 선생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들었다.

여러 행사에서 성심으로 노래공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존경하는 마음을 생긴 터였던지라 노래비는 물론 돌아가신 뒤 극락왕생하시도록 선원사에 납골당을 만들어드릴 결심을 했다.

노래비에 사용할 돌을 인근 채석장에서 기증받게 되면서 자신의 의향을 선생에게 전하자 너무도 고마워하셨다

. “금선생님 같은 불자는 불교계에서 챙겨야한다는 마음입니다. 더구나 딱한 사정 이야기를 들으니 절로 불심이 생겨나더군요. 대중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 부디 외롭지 않았으면 했는데 오늘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시는 광경을 보니 기쁜 마음입니다.”

금사향이란 가수에 대해 설명을 좀 해야 될 것 같다.

금사향은 1929년 1월 30일 평양에서 태어나 19세 때 작곡가 박시춘과 작사가 조명암이 심사를 본 럭키레코드사 주최 전국 가수선발 경연대회에 나가 백난아의 ‘아리랑 낭낭’과 ‘망향초 사랑’을 불러 박재홍에 이어 2위에 입상하며 서울중앙방송국(KBS전신)의 전속가수가 되었다.

애교 넘치는 은방울 같은 목소리를 지닌 그녀는 박시춘으로 부터 ‘오빠는 풍각쟁이야’로 유명한 박향림의 후계자가 될 재목으로 칭찬을 받았다.

문학적 재질이 있었던 금사향은 작사에도 재능을 보였지만 유달리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으로 레코드 취입가수로만 활동을 하려고 했다. 당시 한복에 하이힐을 신고 무대에 오른 가수는 그녀가 최초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데뷔하자마자 ‘첫사랑’, ‘안개 낀 부두’ 같은 노래로 ‘꾀꼬리 가수’로 불리며 촉망받는 신인가수로 떠올랐다.

1952년 한국전쟁 중에 대구 오리엔탈레코드를 통해 발표한 박시춘작곡 손로원작사 ‘님 계신 전선’ 또한 오랫동안 널리 애창된 불후의 명곡이다.

남편을 전선으로 떠나보낸 아내와 그 가족들의 슬픔을 노래한 이 노래는 음반이 발표되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 남인수 등과 함께 군예대에 소속되어 전방을 누비며 활동하던 금사향을 정상의 가수로 떠오르게 했다.

전쟁의 우울함을 잊게 해준 중국풍의 경쾌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도미도레코드를 통해 발표한 ‘홍콩 아가씨’는 그녀의 대표곡이다.

제막식 날 노래비 주변엔 분홍빛 고운 홍련, 순백의 청순한 백련, 수면 위로 피어낸 소담스런 수련 등 수 천 송이 연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장관을 연출했다.

쓸쓸하게 여생을 끝낼 수도 있었던 금사향선생에게 노래비로 음악업적을 기리고 그의 극락왕생까지 준비한 성원스님의 마음은 황홀한 색채를 뽐내는 가장 아름다운 한 송이 연꽃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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