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대표곡 '행복의 나라로' 노래하며 기타치며 한마음
2020명 세계신기록 도전은 실패… 판국 최초 ·최다 기록은 달성
주제곡은 모던 포크의 창시자 한대수의 대표곡 ‘행복의 나라로’. 행사 주관단체인 에너지 시민연대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20% 감축하자는 의미에서 목표를 2020명으로 잡았다.
최다 기타 합주 기네스 세계기록은 지난 2007년 6월 23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1876명이 동시에 연주한 록 그룹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다.
이날 통기타를 들고 참여한 시민 숫자는 당초 목표에 절반에도 못 미친 903명으로 최종 공식 집계되었다. 비록 세계기록 경신에는 실패했지만 시민들은 아쉬움보다는 도전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903대의 통기타가 빚어내는 선율은 한 여름 밤의 무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시원하고 감미로웠다. 한국기록원 김덕은 원장은 "오늘 2020명을 목표로 세계 기록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 최초로 시도된 기타 합주인지라 한국 최초, 최다기록으로 인증됐다"며 행사를 주최한 에너지 시민연대에 기록 인증서를 전달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행사 5시간 전부터 통기타들고 시청 앞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공인 세계기록 도전 행사였기에 출입구에는 참가신청서를 제출하고 통기타를 지참한 사람들만을 입장시키는 엄격한 출입통제가 이뤄졌다.
참가 연령층은 부모와 함께 참가한 초등학생 어린이부터 10대 청소년, 20대 젊은이, 30대 직장인, 40대 주부, 50-60대 중장년층까지 다양했다. 남녀노소가 통기타를 어깨에 메고 한자리에 운집한 풍경은 70년대에도 볼 수 없던 그야말로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70년대는 그야말로 통기타 전성시대였다. 주말마다 기차역은 물론 어느 산이든 입구에서 기타를 압수하는 경찰과 젊은이들의 실랑이가 빚어졌다.
당시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이동파출소에는 압수한 기타로 넘쳐났을 정도였다. 또한 크리스마스나 망년회 행사가 빈번했던 연말에는 파고다 공원 앞에서 서울 인근의 장흥등 유원지로 데려다 주는 관광버스를 타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모닥불이 근사했던 그 곳에서도 기타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기타가 있는 곳엔 수 백 명의 젊은이가 모여들어 새벽까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낭만의 넘쳐흘렀던 시대였다.
이날 합주 도전을 지휘한 한국 모던포크의 대부 한대수는 몽골계 러시아인 아내 옥사나 알페로바와 지난 6월 1일 태어난 딸 한양호를 동반하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행사 전에 만난 그는 “우선 내 노래가 도전 곡으로 채택되어 영광이다.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은 골프를 치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이다.
행복의 나라로’는 기타 코드 5개만 알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곡이니 2000여명이 함께 하는 오늘 기타 연주는 마치 파도치듯 화음이 울려 퍼지는 멋진 예술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흥분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사실 그는 공연에 나올 수 없는 심각한 건강상태였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식을 본 그는 아이 돌보는 일 때문에 매일 3시간도 잠을 못자는 생활을 2달째 해왔다.
만성 피로감에 시달리며 건강에 적신호가 울렸음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행사 전 한 TV프로그램 촬영 중 그의 심장이 중병에 걸려있음을 발견되었다.
‘심장마비로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위중한 상태라 빠른 시일 내로 심장이식수술을 해야 된다.’는 의사의 청천 벽력같은 진단을 받았다.
당연히 행사 참가 불가를 권고 받은 상태였다. “많이 아프다. 지금 심장이 고장 나 바로 입원을 해야 될 상황이지만 내겐 너무 의미 있는 행사라 무대 위에서 쓰러져 죽더라도 많은 대중과 한 약속을 지키려 무리해서 참석했다"
가수 한대수와 안치환, 포크 남성듀오 나무자전거는 오후 7시30분부터 전자 악기를 빼고 통기타로 연주하는 ‘언플러그드’ 콘서트를 펼쳤다. 저녁 9시.
제 4회 에너지의 날 기념식의 일환으로 열린 이 행사장 주변 대형건물의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5분 소등행사'다. 이 자리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명숙 전 총리 등이 참석했다.
이어 한대수와 포크듀오 나무자전거, 기타리스트 김도균, 브라질 퍼커션주자 발지노가 무대에 오르자 참가자들은 모두 일어섰다.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참여자에게 일일이 기타 코드를 알려줬고 먼저 1절을 연습했다. 이어 9시 20분 참가자 모두는 '행복의 나라'를 3절까지 노래하며 합주했다.
합주를 마친 뒤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한대수는 "60~70년대 통기타 세대가 아닌 젊은이들, 중년의 여성들까지 이 더운 날 통기타를 정성어리게 들고 시청 앞 광장에 왔다"며 "인생은 성공과 실패가 전부가 아니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무자전거 역시 "이제부터 시작이다.
올해 첫 행사에서 1천 명이 모였다면 내년엔 2천 명이 모일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처음 시도된 이번 행사는 에너지 절약 의식을 고취시킨 것은 물론 색다른 추억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했다.
참가자들은 더운 날씨를 잊은 듯 시종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함께 연주할 때 그들은 모두가 한 몸이 된 듯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참가자들의 기타합주소리가 무대 앰프 소리에 가려 잘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박해은씨는 "대학 기타 동아리 친구 세 명과 함께 왔다. 세계 기록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기록을 위해 내 연주가 한 몫 한 것이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학생 아들과 함께 참여한 학원강사 최은진(46)씨는 “통기타라는 매개체 하나로 이렇게 세대를 초월해 즐겁게 모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다운타운 DJ 성명진(49)씨는 “기록 경신을 떠나 동참만으로도 재미있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참석해 기분 좋았다. 68년 미국에서 열렸던 우드스탁 공연 참가자들의 기분도 지금 내 기분과 비슷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행사가 끝난 뒤 한대수는 "병원입원까지 미루고 참석했는데 기록경신이 무산되어 너무 슬프다. 하지만 이 더운 날 많은 시민들이 기타를 메고 찾아줘 너무 고맙다.
내년에 젊은 밴드들과 함께 새롭게 도전하길 바란다."고 불굴의 도전의지를 밝혔다. 그는 행사 다음 날 심장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숨 쉬기도 힘든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은 그의 도전은 그래서 세계기록 경신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