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내내 악화된 실적에도 인력 영입 잰걸음
알토스벤처 지분투자 등 가시적 성과 나타나
일각에선 승계 작업 위한 큰 밑그림 분석도

사진=캐롯손해보험.
사진=캐롯손해보험.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의 야심작 캐롯손해보험이 연이은 적자를 만회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 교체라는 강수를 뒀지만 실적 반등의 실마리를 아직까지 찾지 못하면서 한화 금융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한화그룹의 행보는 이러한 캐롯손보의 실적과 반비례 중이다. 적자 행진에도 한화그룹은 금융 계열사 개편을 통해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업계에선 한화가 금융 부문을 이끄는 김 사장의 승계 구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캐롯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대형 손보사들과 비교해 개발 인력 등 규모가 작은 캐롯손보가 승계 구도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시각도 있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1호 디지털손해보험사로 야심 차게 출범한 캐롯손해보험이 자동차보험에 쏠려있는 한정된 상품 구조로 수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캐롯손보는 165억원의 순손실을 나타냈다. 지난해엔 79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2021년 650억원, 2020년 381억원, 2019년 91억원 등 출범 이후 매번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업계에선 캐롯손보의 적자 행진이 자동차보험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보험사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이 차량 운전자라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이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지 않아 보험사 입장에선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애물단지 상품이다"라고 설명했다.

캐롯손보의 새 광고 모델인 배우 고윤정. 사진=캐롯손해보험.
캐롯손보의 새 광고 모델인 배우 고윤정. 사진=캐롯손해보험.

◇ 적자 이어지며 '애물단지' 전락

캐롯손보가 출범 후 4년간 적자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최대 주주인 한화손보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지만 한화그룹은 인력 보강과 마케팅 강화 등 캐롯손보를 살리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8월 캐롯손보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 본사에서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기계학습) 개발을 담당해 온 이진호 박사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캐롯손보 관계자는 "이진호 CTO 영입을 통해 데이터 기반의 상품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기존 보험사와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캐롯손보는 지난해 9월 경영난 개선을 위해 최고경영자(CEO)를 문효일 대표이사로 교체한 바 있다. 실적 개선 전문가로 알려진 문 대표이사가 새롭게 지휘봉을 잡자 캐롯손보의 적자 폭은 크게 줄었고 업계에선 임원 교체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지난 5월에는 현대차그룹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과 한컴 등에서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로 일했던 배주영 씨를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선임하면서 마케팅과 영업 역량을 강화하는 데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캐롯손보는 주력 상품인 '퍼마일자동차보험'의 새로운 광고 모델로 배우 고윤정을 발탁하고 신규 광고를 TV와 유튜브, 디지털 채널 등을 통해 방영 중이다.

이와 더불어 캐롯손보의 장기적인 비전을 본 알토스벤처스가 캐롯손보(지분율 10.1%)에 투자를 했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요소다. 미국의 한국계 벤처캐피탈인 알토스벤처스가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며 투자했던 토스, 당근마켓, 배달의민족 등은 추후 급속도로 성장했다. 캐롯손보 역시 잠재력이 큰 기업이기 때문에 알토스벤처스가 투자에 나서지 않았겠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출범 후 매년 적자에 허덕이는 캐롯손보에 최근 고급 기술 인력이 영입되고 광고·마케팅 투자를 확대한다는 점은 실적을 개선하기 위한 그룹 차원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이진호 캐롯손해보험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진=캐롯손해보험.
이진호 캐롯손해보험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진=캐롯손해보험.

◇ 한화그룹 승계 구도 관련 '설왕설래'

일각에선 한화그룹이 캐롯손보를 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그룹 승계 구도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화그룹은 현재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태양광과 방위산업,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삼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유통을 맡는 방향으로 승계 구도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 부분을 사실상 총괄하고 있는 김동원 사장은 지난 2019년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고 보험업 전반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겠단 취지로 캐롯손해보를 출범했지만 매년 적자가 이어지면서 리더십에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캐롯손보의 모회사는 60.4%의 지분을 가진 한화손해보험이다. 한화손해보험은 51.4%의 지분을 보유한 한화생명의 지배를 받는다. 이처럼 그룹 금융 계열사 지배 구조의 정점은 한화생명이다. 김동원 사장은 한화생명의 대주주인 한화 지분의 2.1%, 한화생명 지분의 0.03%를 각각 보유 중이다.

결국 업계에선 캐롯손보가 빠른 시일 내 실적을 개선하고 성과를 내야 향후 김동원 사장이 그룹 내 금융 부문을 완전하게 이끌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한화저축은행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 역시 승계 구도 정리를 위한 움직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동관 부회장이 관리하는 한화솔루션의 손자회사인 한화저축은행을 매각할 경우 승계 구도가 명확하게 정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대형 손보사들과 비교해 개발 인력 등 규모가 작은 캐롯손보가 승계 구도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사실 캐롯손보는 그룹 승계 구도에서 봤을 때 작은 부분이다"라며 "원래 손보업 자체가 흑자 전환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지금의 투자는 중장기적인 투자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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