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에 매각 노리는 저축은행 속출
적자 계속되자 인수·합병 순탄치 않아
동일 대주주 지역 규제 풀어줘야 가능성↑

수도권의 한 저축은행. 사진=연합뉴스.
수도권의 한 저축은행.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실적 악화로 여려움을 겪고 있는 저축은행이 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도 매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부 저축은행은 매각을 통해 경영 정상화에 나서고 있지만 업계 전체가 부진을 겪으면서 인수에 적극적인 후보자는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올 들어 저축은행 간 M&A가 활성화되도록 규제를 완화했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여러 재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저축은행의 인수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동일 대주주가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 저축은행도 소유할 수 있도록 당국이 추가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7일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현재 대형 저축은행들이 잇달아 매물로 나오고 있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저축은행, 상상인 계열 저축은행, 자산 규모 기준 업계 6위인 애큐온저축은행이 매각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은 지난 7월부터 계열사인 한화저축은행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는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한화저축은행을 팔기 위해 인수 후보자에 대한 수요 조사를 거쳐 일부 사모펀드, 몇몇 금융사와도 매각 협상을 진행했지만 가격 차이가 커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업계 7위인 상상인 그룹 계열의 저축은행(상상인저축은행·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도 조만간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4일 두 저축은행에 대한 대주주 지분 매각 명령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상상인 계열 저축은행 2곳은 신용공여 의무 비율을 거짓으로 보고하고 대주주가 전환사채를 저가로 취득할 수 있도록 형식적인 공매를 진행했다는 점이 문제가 돼 2019년 금융위의 중징계를 받았다. 금융위는 두 은행이 지난 8월 내린 대주주 적격성 충족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자 매각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상상인 그룹은 내년 4월까지 보유 지분 100% 중 최소 90%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대주주로서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애큐온저축은행 역시 조만간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자산 규모 업계 6위인 애큐온저축은행은 국내 10위권 저축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갖고 있는데 지난 2019년 애큐온을 인수한 홍콩계 펀드인 베어링PEA는 애큐온저축은행을 매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애큐온저축은행이 올해로 인수 5년째를 맞이하고 있다"며 "이르면 내년부터 차익 실현에 나서기 위해 매각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상상인저축은행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우리금융그룹. 사진=우리금융그룹.
상상인저축은행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우리금융그룹. 사진=우리금융그룹.

◇ 실적 악화 직격탄에 저축은행 인수 어려워

저축은행 매물은 계속 늘고 있지만 인수 후보자들은 등장하지 않으면서 IB업계는 저축은행 인수가 내년까진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한화저축은행의 경우 매각 작업이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접촉한 사모펀드 등으로부터 별다른 인수 의사는 받지 못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나서진 않았지만 애큐온저축은행 역시 계속된 실적 악화로 매각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저축은행 매각이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 배경에는 실적 악화가 가장 먼저 지적된다. 총자산 기준 주요 저축은행 열 곳의 지난 2분기 별도 당기순이익 총합은 -228억원으로 전년동기(2912억원)대비 3140억원 급감했다. 실제 대형 저축은행 가운데 흑자를 유지한 곳은 단 네 곳뿐이었다. SBI·OK·웰컴저축은행과 다우키움그룹 계열 저축은행뿐이다.

저축은행의 향후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올 상반기까지 대출 연체율 상승으로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으면서 순이익 성장에 발목이 잡혔다. 인수를 원하는 금융그룹이나 사모펀드 역시 저축은행권의 업황이 나빠진 상황에서 섣불리 인수하는 것은 리스크가 높을 것으로 판단하고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시중은행들이 예금 금리 경쟁에 뛰어들면서 저축은행들도 금리 방어를 하기 위해 지출이 늘고 있다"며 "인수 후 5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사모펀드 역시 성장성이 떨어지고 부실 위험이 큰 저축은행보다 보험사 인수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상상인저축은행은 최근 우리금융그룹이 인수·합병에 대한 의사를 밝히면서 매각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건호 우리금융 미래사업추진부문 상무는 최근 3분기 경영 실적 발표 후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는 검토 중인 사안이 맞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상상인저축은행을 통해 지주 내 아픈 손가락 중 하나였던 우리금융저축은행의 영업 기반 확대를 노릴 예정이다. 

◇ 금융당국이 지역 규제 풀어줘야

업계에선 매물로 나오는 저축은행들이 점차 늘어나면 지난 2010년대 초반 발생한 저축은행 대규모 파산 사태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M&A를 활성화해 시장 내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가이드라인 확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 역시 저축은행의 효과적인 M&A를 위해선 동일 대주주가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 저축은행도 소유할 수 있도록 추가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저축은행 영업권은 수도권 2곳(서울, 인천·경기)과 비수도권 4곳(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강원, 광주·전라·제주, 대전·세종·충청) 등 총 6곳으로 나뉘는데 동일 대주주의 경우 저축은행을 3곳까지만 소유하고 영업권이 다른 은행들의 합병은 금지된다.

앞서 금융당국도 M&A 활성화를 위해 지난 7월 동일 대주주가 최대 4곳까지 소유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지만 대상 지역이 비수도권으로 한정되면서 반쪽짜리 규제 완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현재 저축은행들의 영업권은 지방보다 수도권에 더 쏠려있지만 이번 규제 완화가 비수도권에 한정되다 보니 M&A를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지역 간 M&A 규제를 풀 경우 금융지주사뿐 아니라 영업망 확대와 대형화를 노리는 타 저축은행도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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