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하다. 눈을 떠보니 내가 식당 바닥에 널브러져 누워있다. 식당 주인이 다급하게 119구급차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필름이 끊어졌나 보다. 몸을 일으켜 앉으니 나를 에워싼 회원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정신이 드냐, 집에 알려야 하지 않겠냐,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며... 나도 모르게 연신 뒤통수에 손이 올라간다. 머리카락을 들쳐 본 회원이 혹이 나고 피멍이 들었다며 걱정한다.
연말 출판기념회 자리에 후식으로 찰떡이 나왔다. 팥고물 듬뿍 묻은 먹음직한 찰떡이었다. 소문난 방앗간에서 갓 만들어 차진 떡을 누군가 먹기 좋게 잘라 놓았다. 좋아하는 떡이라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딱 한 조각, 맛을 보려다 사달이 났다.
기념사진 찍은 후에 떡도 먹고 천천히 가자던 회원들이 사진을 찍고 나자 우르르 나가는 분위기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입에 넣은 떡을 서둘러 삼키고 말았다. 물도 마시지 않고 제대로 씹지 못한 떡이 하필이면 기도에 달라붙을 줄이야.
손가락으로 빼려 해도 나오지 않고 물을 마시면 내려갈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주위에는 물이 없었다. 신발은 닥치는 대로 신는 둥 마는 둥, 어기적거리며 간신히 프런트로 갔다. 방에서 프런트까지 가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죽고 사는 게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주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외치는데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었다. 한 손은 목울대를 잡은 채 다른 손으로 들이키는 시늉을 거듭했다. 그다음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식당 안주인이 눈치로 감을 잡았나 보다. 주방에 가서 물을 가지고 오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나를 목격했단다. 혼비백산한 그녀가 방에 남아 있던 일행들에게 나와보라고 소리쳤고, 화들짝 놀란 회원들이 달려온 터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머리를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기도에 붙었던 찰떡이 튀어나온 모양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얼떨결에 되돌아온 정신줄을 힘주어 잡았다. 특별한 날, 이 난리를 쳤으니 투명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 와중에도 좋은 날, 기쁜 마음으로 찰떡을 준비한 회원이 행여 자책할까 염려되었다.
구급차 침대에 드러눕기도 처음이다. 정신은 멀쩡한데 어쩔 수 없이 응급환자가 되었다. 이동 중 구급대원이 우리 집으로 연락했고, 병원에 도착하니 한 회원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급박한 상황이라 가족이 올 때까지 보호자가 되어주겠다면서.
응급실은 만원이었다. 차 안에서 대기하는 사이에 남편이 도착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를 듣고 달려오면서 그는 별별 상상을 다 했으리라. 칠칠치 못한 아내에 대한 원망도, 황망한 마음도 다 내려놓고 그저 묵묵히 곁을 지켰다.
마침내 응급실에 입원했다.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일상적인 말도 알레그로 모드이다. 일사천리로 정밀검사까지 받았다. 연탄난로 피우다 가스중독으로 온 할머니, 뇌졸증으로 쓰러진 할아버지, 교통사고로 중증외상을 입고 온 젊은이 등 제각기 분초를 다투는 환자들로 주변이 어수선하다.
그곳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자니 열사의 나라 야전병원에 온 듯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 간다. 물 한 방울이 간절한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물조차 금식이다. 운명으로 받아들이니 의외로 마음은 덤덤하다. 다만 토정비결에 삼재라는 말이 또 목에 걸린다.
아직은 할 일이 남아서일까. 평소에 배고픈 걸 참지 못하고 허겁지겁 먹는 내게 경각심을 주려고 그랬을까. 늦은 밤이 되어서야 당분간 집에서 경과를 지켜보고 이상 있으면 외래로 오란다.
퇴원해도 된다는 판정을 받고 나와도 황천길 가다가 되돌아온 듯 혼미하다. 검사 결과 나오면 연락하겠다고 했건만, 보호자를 자처했던 회원은 그때까지도 내내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걱정하는 마음이 보살심이다.
불가에서는 음식도 수행으로 여긴다. 사찰음식 전문가인 백양사 천진암 정관 스님은 음식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음식 안에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합니다. 거기에 정신이 들어가고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부터 식재료와 자연 그리고 농부에 대한 고마움이 보태져 먹는 사람의 뼛속까지 울림이 전해진답니다. 그러므로 음식은 탐내서 먹으면 병이 나고, 그대로 성글게 먹으면 내 몸에 약이 되지요"
무엇을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먹느냐가 관건이다. 가능하면 수저를 내려놓고 오래 씹으려고 애를 써야겠다.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질 수 있도록. 음식을 먹기 전에 그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과정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런 불상사가 있었을까.
요즘은 음식을 대할 때면 멈칫하게 된다. 무엇보다 죄 없는 찰떡 앞에서는 촉수가 예민해진다. 사선을 넘나든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했던가. 선한 보살의 마음이 내게도 전염되었으면... 음식 앞에서 한 호흡 가다듬고 두 손을 모은다.
◆서미숙 주요 약력
△경북 안동시 출생 △계간 《문장》 2015년 등단 △수필집 『남의 눈에 꽃이 되게』 기행수필집 『종점 기행』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 △프리랜서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