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USA 투데이 '최근 25년간 미국서 없어진 25가지' 발표
한국서도 비닐우산 장수·연탄·LP음반 등 자취 감춰
미국 사회의 시각에서 선정한 것이니 우리의 그것과 100% 대입되지는 않겠지만 어느 나라건 80년대 이후 디지털화 과정에서 겪는 변화는 쉽게 공감대가 느껴졌다. 우선 미국에선 대중문화와 연관된 사라진 것이 무엇인가가 궁금했다.
상위 순위부터 사라진 것들을 살펴보자. 1위는 실내흡연, 2위는 주유소의 간식점, 3위는 소련의 위협, 사무실의 필수품 타자기도 컴퓨터에 밀려 4위에 올랐다.
박물관 입성이 가능한 상위권인 5위에 LP음반도 랭크되었다. 사실 LP는 CD에 밀려났다고 하지만 지금도 소량 발매가 되고 있다. 자연스런 소리인 아날로그 음악의 수호자들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달 신중현 음악의 정수라 할 ‘신중현 사운드 1-3집’이 300장 한정 박스LP로 미국서 제작되어 국내 발매되었다. 그럼 CD는 영원할까? CD가 LP의 자리를 밀어낸 것도 불과 1990년대의 일이다. 그런데 CD 역시 벌써 끝이 보이고 있다.
■ 1위 실내흡연, 2위는 주유소 간식점
최근 극심한 국내 음반시장의 불황은 음악의 개념까지 뒤흔들고 있다. 음반은 기껏해야 싱글 음반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이제는 디지털 음원이 대세인 시대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흐름이다.
대부분의 가수들도 휴대폰 컬러링이나 벨소리 그리고 MP3 다운용인 디지털 음원으로만 음악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음악이 음반으로 소장하는 개념이 아니라 디지털 파일로 쉽게 다운받고 버리는 소비의 개념으로 변했음을 말한다.
그래서 MP3같은 음원파일은 알아도 LP, CD, 카세트가 무엇인지 모르는 요즘 아이들도 적지 않다. 조만간 각종 음반을 진열한 음반 박물관의 탄생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계속 살펴보자. 가정용 VHS비디오도 어느덧 DVD에 내쫓겨 8위에, 휴대폰에 밀린 공중전화 부스까지도 9위에 올랐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만인이 애용했던 회전식 다이얼 전화기도 버튼식 전화기에 밀려 11위에 올랐으니 각종 박물관이 앞으로 비좁게 생겼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교양’도 사라진 순위 15위에 등극되었다.
밀렵 때문에 자취를 감춘 서아프리카의 검은 코뿔소는 18위, 자동차 창문 여닫을 때 돌리던 레버 또한 손끝 하나로 작동하는 전자식 버튼에 밀려 19위에 올랐다.
이 중 DVD에 내쫓긴 비디오 이야기를 그냥 넘길 순 없다. 영상물도 디지털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다. 이미 미국 가정의 60%이상이 적어도 한 개 이상의 DVD 플레이어를 소유하고 있고, DVD 플레이어 기능을 갖춘 컴퓨터를 포함할 경우, 73%까지 확대되었을 만큼 VHS는 이제 퇴물이 되었다.
이에 미국 내에만 3600개 이상의 점포를 소유한 월마트는 신작을 제외한 영화 비디오를 더 이상 취급하지 않기로 했고, 1300개의 점포를 소유한 ‘타겟’도 어린이용과 신작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수 결정을 했다. 미국 홈비디오 시장의 3분의 1을 점하고 있는 두 거대 점포의 결정은 미국만의 양상은 아니다.
보수적인 영국에서도 DVD가 VHS 생산을 추월했고 일본도 미국에서 비디오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다. 흔하게 난립했던 동네 비디오 가게들이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지 않은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젊은이를 열광시켰던 대중문화의 상징 같았던 록밴드들의 장발과 가죽바지는 21위에 올랐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23위에 등극했다. 한때 젊음과 변혁의 상징이었던 록밴드 멤버의 장발도 이제는 촌스러운 것이 된 것이다.
또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연속극과 음악에 울고 웃었던 시절이 있었건만…. 세상과 소통시켜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라디오는 이제 보기 힘든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운전할 때 차 속에서 듣거나 그나마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라디오 방송을 듣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한때 팝의 황제로 불렸던 마이클 잭슨은 24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달 위를 걷는 듯한 뒤로 가는 춤 ‘문 워크’는 누구나 열광했던 세계 대중문화의 명품이었다.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브 원더는 “만일 눈을 뜨게 되면 딸과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가 가장 먼저 보고 싶다”고 답했을 정도. 그런 그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도 사라진 25가지에 포함된 것이다.
60년대 잭슨 5의 일원으로 음악생활을 시작해 1982년 '스릴러'음반으로 팝의 황제로 떠올랐던 그는 어린이 성추행 혐의로 여러 번 구설에 올랐고 성형중독 후유증인 ‘흘러내린 코’가 공개된 이후 잠적해 버렸다. 최근 바레인에 살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지고 있다.
■ 아날로그 시대의 따뜻한 인간미 그리워
우리 주변에도 사라진 것들이 무수하다.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은 말할 것도 없고 한때 모든 가정의 주 연료였던 연탄, 생필품은 물론 수집의 대상이었던 성냥, 대가족제도, 연말에 거리를 뒤덮던 캐롤송, 한여름 장대비가 쏟아질 때 파란 비닐우산을 팔던 우산장수, 한겨울 ‘메밀 무~욱, 찹살 떠~억’을 외치던 정겨운 메밀묵 장수의 소리도 이젠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여자 친구나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떠준 털목도리도, 동네 어귀에 자리 잡고 있던 만화방도, 사랑과 우정, 따뜻한 정성을 주고받던 편지 또한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에 밀려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품목이다.
삶을 더욱 편리하고 스피디하게 변화시킨 디지털 세상의 장점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기계 만능주의 속에서 하나 둘 아날로그 시대의 따뜻한 인간미를 그리워하는 사람 또한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지지직 거리는 LP음반의 잡음 소리를 찾는 이가 늘어가고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도 증가일로다. 그러고 보니 왜 2000년대 들어 복고문화가 부활하고 수많은 개인 박물관들이 급증하는 것인지 알 것 같다.
최근 생겨난 신조어 중엔 ‘디지로그’란 말도 있다. 디지털 세상 속에도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것을 함께 추구하는 움직임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다지만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서로를 따뜻하게 소통시켜주는 ‘인간미’가 아닐까?! 오늘 지지직 거리는 LP음반과 화질과 음질이 떨어지지만 따뜻한 색감을 보여주는 비디오로 영화나 한편 봐야겠다. 사라지고 잊혀진 그것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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