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각 LP음반 당당히 1위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전설은 계속되는가? 작년 말 은퇴를 선언한 그가 경기도 용인의 전원에서 칩거에 들어간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공식 활동을 접고 자신의 인터넷 음악방송에만 전념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국내외가 인정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화두임이 사방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 난데없이 옛 노래와 그때 그 시절의 스타들이 등장하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KBS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불후의 명곡’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모시고 싶은 스타’ 1순위에 조용필, 나훈아와 더불어 신중현도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했다.

8월 9일부터 14일까지 23개국의 영화 71편을 상영하는 제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도 그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음악전문 다큐멘터리 섹션인 ‘뮤직 인 사이트’에 작년 12월 은퇴 공연을 준비하던 당시 그의 이야기를 담은 <신중현의 라스트 콘서트>가 상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최근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시장 공략에 나선 전통주업체인 보해양조는 미국 수입상사와 연간 60만병의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LA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가기 위해 신중현을 모델로 선택했다.

왜 아직도 신중현인가? 아마도 고집스럽게 미개척 분야를 개척하며 세상에 남겨놓은 그의 음악외길 인생의 업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흥미로운 소식이 하나 더 있다. 아마도 ‘신중현 사단’이란 말은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1968년 펄시스터즈을 발굴해 스타 작곡가로 등극한 이후 신중현의 작업실엔 신인가수들의 발걸음이 문지방을 닳게 했었다. 대형가수 김추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신중현이 최전성기를 구가하며 ‘사단’을 형성했던 그 시절 그가 관여한 음반에는 <신중현 사운드>라는 라벨이 붙여졌다.

일종의 대중가요 음반의 명품인증서였다. 바로 그 시절의 시리즈 음반인 ‘신중현 사운드 1-3집’이 300장 한정 본으로 막 발매되어 가요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생산이 불가능한 LP발매인지라 구미를 당기게 한다. 사실 지난 해 신씨가 은퇴를 선언한 시점에도 발매 자체가 화제가 된 음반이 있었다.

전설적으로 회자되던, 1958년에 녹음한 신씨의 데뷔음반 ‘히키신 기타 멜로디’와 1964년 발매된 신씨가 결성한 국내 최초의 록 그룹 앨범 ‘에드훠’의 ‘비속의 여인’이다.

최근 디지털 음원으로 대중가요시장이 전환되면서 음반시대의 종말까지 예견되고 있다.

그런데 CD도 아니고 국내에서는 생산조차 불가능한 LP로 그의 초기 명반들 뿐 아니라 대중가요의 희귀음반들이 줄줄이 발매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2000년대 들어 불어 닥친 열풍이 있다. 복고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생성된 것은 ‘추억의 공감대’였다. 7080 음악이 되살아 난 것도 그 추억을 되살리는 불씨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전설적으로 회자되던 희귀음반 사재기가 광풍처럼 불어 닥쳤었다.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우리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가 아닌 일종의 투자개념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그 뜨거운 바람은 수많은 희귀 대중가요 음반들의 리바이벌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새로운 장르의 음악시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었다.

그 중 ‘록의 대부’ 신중현은 가장 많은 음반이 복각된 뮤지션으로 기록되었다. 이번의 <신중현 사운드> 전집을 비롯해 히키신, 에드훠, 신중현과 엽전들 1, 2집 그리고 신중현사단 가수인 김정미, 윤용균, 김추자의 신중현 작곡집 등이 빛을 봤다.

서울음반, 포니캐년 등 덩치 큰 매니저 음반사들도 이 놀라운 흐름에 동승했었지만 주도세력은 한두 명에 의해 운영되는 이름도 생소한 비트볼, 리듬온, 솟대, 레트로, 뮤직리서치 같은 소규모 인디레이블들이었다.

이들 덕에 오리지널 음반은 수십에서 수 백 만원을 호가하거나 실물은 구경조차 힘든 대중가요의 명반들이 줄을 이어 부활했다.

그러나 장기간의 불경기와 음반시장의 불황과 함께 그 열풍도 많이 식은 상태다. 중고 음반시장도 희귀 가요음반의 수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고가 일변도인지라 시장유지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저렴한 재발매음반을 제작하려 해도 마스터 녹음테이프가 대부분 유실되었고 대체할 오리지널 음반조차 구하기 역시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야말로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형국이건만 들여야 하는 품에 비해 수익성이 턱없이 낮은 것도 한 몫 거들었다.

그 바람에 그 많던 복각LP 음반사들은 현재 다 사라진 상태다. 이번 <신중현 사운드> 복각 LP박스를 작업한 주인공은 30대의 음악마니아 손병문씨(37).

그는 국내 유일의 아날로그 가요 LP음반 제작사 리듬온의 대표다. 왜 손쉬운 CD가 아닌, 수용 층이 제한적이고 외국에서 제작해야 되는 이중고를 안겨주는 아날로그 LP를 굳이 제작하려는지 물었다. “따뜻한 아날로그 LP 소리의 맛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디지털 소리가 세상에 넘쳐나니 인간미 넘치는 아날로그의 추억과 감동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어 고집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미국영화 ‘다이하드 4편’을 보면 그의 말에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해커들에 의해 컴퓨터를 장악당해 교통대란이 일어나고 은행 업무가 마비되는 최첨단 디지털세상을 다룬 영화이지만, 결국 인터넷이 마비될 경우 옛날 구닥다리 무전기만이 사용가능한 설정도 그렇고 주제가로 70년대 록그룹 C.C.R의 아날로그 음악을 사용한 것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 즉 신조어인 ‘디지로그’ 쪽으로 메시지의 가닥을 잡은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국내 드라마에도 이런 현상은 공통적이다. 최근 인기절정의 MBC 월화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남장으로 등장하는 윤은혜가 전설적인 여성듀엣 ‘현경과 영애’의 LP를 가슴에 얹고 추억을 되새기는 장면이 나왔다. 이처럼 드라마, 영화 속에 아날로그 정서를 삽입하는 것은 삭막함을 없애고 인간미를 부각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라 할 만하다.

신세대 가수의 대표주자격인 비도 최근 고가의 한정 본 LP를 발매해 외국 시장에 선보였다.

아날로그 LP음반 발매는 이제 아무나 발매할 수 없는 음반의 상징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디지털세상이 가속화될수록 아날로그는 대중문화 속 어딘가에서 더욱 강렬하게 살아 꿈틀 거릴 것이 분명하다. 결국은 인간의 마음이 소통하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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