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윤동주·김지하·신경림 등 친필 시 23편 돌에 새겨
남근석 인기 최고… 앞에서 기도하고 뒤에선 웃음보 터뜨리고
분지라는 지형특성상 여름만 되면 전국 최고 온도를 기록하는 대구의 거의 유일한 피서지 팔공산에 다녀왔다. 지난 4월 정식 오픈한 이색적인 한국 현대시 육필공원 '시인의 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 공원에 전시된 육필시가 새겨진 23점의 바위들은 이색적인 포토시집 '시인의 길'로 엮어져 최근 발간되었다. 한국 대표시인들의 육필시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공원은 이 곳 말고도 충북에 한군데 더 있다.
주위엔 방짜유기박물관, 지역사 박물관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시를 사랑하는 대중과 학생들의 문학기행 코스로 대구의 새로운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과거 문학기행 취재를 다닐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팔공산 삼거리에서 동화사 쪽으로 2㎞가량 오르다보니 자연석을 배경으로 한 '시인의 길' 표지석이 반긴다.
아름다운 경관 속 4천여 평의 부지에는 수 천 개의 크고 작은 자연석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도로변을 따라 전시된 김수영의 ‘여름밤’, 김춘수의 ‘하늘수박’을 비롯해 한용운, 윤동주, 김지하, 고은, 신경림, 정호승, 안도현 등 시인들이 직접 쓴 정감어린 육필시가 자연석에 원문 그대로 새겨져 돌들도 볼만했지만 수도 없이 널려있는 남근석들 또한 흥미로웠다.
주인공은 돌 수집가 채희복(63) 씨. 20여 년간 고서점을 뒤져 찾아낸 육필시 중 23편을 선정해 육필공원을 조성한 채씨는 "제 나름대로 팔공산 자락에 만들 수 있는 문화공간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지난해부터 조성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채 대표는 3명의 전문가들과 함께 석 달 동안 작업을 하며 시를 바위에 새기는 데만 3천700여만 원이 들였다. 육필을 그대로 새기기 위한 컴퓨터 스캔작업은 기본이고 일부 육필원고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크기를 조절한 뒤 돌에 새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20세기는 육필의 글쓰기 시대였지요.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글쓴이의 꿈과 열정이 느껴집니다.
이 공간을 준비하면서 많은 시인들이 자료를 보내줘 좋은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팔공산 나들이를 하면서 편안하게 쉬어가는 좋은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발한 명소를 만든 주인공 채희복씨(63)는 참 흥미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어쩌면 문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그 일수도 있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유명한 한량중의 한량이었다.
경상도지역의 고위공무원이었던 아버님 때문에 그의 집을 방문한 과거의 모든 대통령들을 보고 자란 그다. 사회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어려운 아이들과 어울려 성장을 해야 세상공부를 할 수 있다며 자신의 귀한 아들을 고아원아이들과 친구를 맺게 했다. 그래서 그의 어린 시절 친구들은 대부분 고아원 출신의 거친 아이들이라 한다.
그는 껄껄 웃으며 “중고등학교 시절 대구지역의 유명 폭력서클 아이들은 죄다 제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자연석 수집에 특별한 집념을 보여 2300점 가량의 크고 작은 자연석을 모았다. 그는 산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돌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모아놓은 돌의 대부분은 1997년 남덕유산에서 농수용 댐 건설공사 발파 작업 때 나온 것들이다. 우연히 산행 중에 깨서 버리거나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놓인 거대한 돌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오랜 설득 끝에 보존시킬 수 있었다.
“당시 이 돌들을 가져가려했던 사람들이 조직폭력배 비슷한 사람들이었는데 제가 가져가려고 하니 협박을 해오고 겁주고 막무가내였어요. 결국 물러서지 않는 제 배짱에 그 사람들도 두 손 들고 설득 당했지만요.”
막상 돌을 확보했지만 트럭 수백대분의 옮기는 작업은 산 너머 산이었다. “정말 어렵게 모은 돌들입니다. 돌 수송을 할 때 얼마나 단속에 많이 걸렸는지.... 전 무조건 돈으로 해결해야했으니 수억 들었습니다 . 어느 정도냐면 나중엔 제 돌을 옮기는 차량이 나타나면 단속반들이 미안한 마음에 수송차를 못 본채 하거나 피해버릴 정도였으니”
그는 남근석에도 관심이 지대하다. 공원 한쪽엔 실제로 크고 작은 남근석이 지천으로 포진해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남근을 빼 닮은 자연석 몇 개와 인공을 가해 남근의 특징을 살린 돌들이다.
수집한 남근석의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남근석 많다는 입소문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근석 앞에 선 사람들 반응도 제각각으로 재미납니다. 웃음보가 터져서 참지 못하는 사람, 슬그머니 이 곳 저 곳을 만져보는 사람,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 심지어는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여기에 와서 남근석을 보고 기분 좋아진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한껏 웃음을 터뜨리거나 농담 한마디라도 건넨다면 그것이 곧 살아가는데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살펴보니 공원 방문객들은 대부분 남근석을 보며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돌 공원 '돌 그리고'에는 한 눈에도 압도당할 만큼 수십 톤급의 거대한 돌들이 많다. 그래서 가족과 나라의 기복을 원하는 사람들이 팔공산 ‘갓바위’를 찾듯 이곳을 찾는 발길도 분주해졌다.
육필공원 탄생에 큰 도움을 준 시인이자 영남대 국문과 교수인 이동순씨는 “이곳을 천천히 걷다 보면 한국현대시사에서 굵은 획을 그었던 현대시인들의 육필 시비를 직접 대면하면서 그들의 향기와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앞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여행코스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채희복씨는 이곳을 특색 있는 문학기행 코스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는 “앞으로 육필시 공원과 팔공산 자락에 있는 개인박물관, 찻집, 화가의 작업실, 천연 염색가 등과 연계해 문화관광자원으로 개발, 문화관광투어코스가 되도록 힘을 모으겠다.”며 “같은 시라 해도 돌에 새겨진 육필시를 읽는 느낌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지난해 가을 단풍철에는 하루에도 수 백 대 차량이 몰려들 정도로 대구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고 전해주었다.
시와 시인은 많으나 시가 읽혀지지 않는 세상이다. 우리 대중가요에도 시가 가요로 변신한 역사가 길다. 고 김광석이 죽기 전 꿈꿨던 음악도 시 노래였다.
오락과 놀이위주로 치닫는 문화공간의 범람 속에 시향기 그윽한 육필공원 같은 새로운 대중문화공간의 탄생은 언제나 즐겁고 환영할 일이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