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굿 음악제> 신선한 감동

창립10주년을 맞은 경기문화재단이 흥미로운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의 장을 주선했다. 세계 최초로 시도된 ‘굿 음악제’다. 대게 관이나 민간의 기념행사는 기념식 후 유명가수들이 주축이 된 여흥을 위한 공연이 일반적이다.

이번 경기문화재단의 야심찬 기획은 이질적인 장르의 충돌을 통한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를 부여받을 만 했다. 본 공연에 앞서 지난 1일 사전행사로 서울 한옥마을에서 학술판굿(심포지엄)도 열었다.

대중음악과 전통음악의 접점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을 시도한 그날 예상외로 100여명이 넘는 일반인의 참석으로 대중적 관심도가 증명되었다.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 시청 앞 잔디광장. 마치 한국판 우드스탁처럼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장장 10시간에 걸친 ‘소리굿 난장’이 밤 세워 펼쳐진 현장이다.

공연시작 몇 시간 전부터 하나 둘 몰려든 관객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막걸리와 준비해온 음식을 먹으며 난장 같은 자연스런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어둠이 내리고 공연이 시작될 쯤 관객 수는 1천여 명으로 늘어나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각 지방의 전통 굿 음악 고수들과 재즈 뮤지션, 록밴드가 한 무대에서 어우러지는 공연의 특성답게 관객층도 호기심 어린 외국인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분위기의 젊은 층과 중장년층이 뒤섞여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공연 전에 만난 프리재즈 퍼커션 박재천씨는 “굿에 관련된 사람들을 다 모은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헌데 음악과 여흥의 구분이 모호해 조금 산만한 점이 아쉽다.

하지만 소위 인기가수들을 부르지 않고 대중음악과 전통음악이 함께 만나는 굿 음악제가 열린 것 만해도 의미 있다.”고 환영했다.

다이나믹한 피아노 연주로 주목받은 재즈 피아니스트 미연씨는 “국악을 굉장히 좋아한다. 헌데 프리 재즈에 무조건 국악을 접목하는 것은 무리다. 재즈는 매번 다른 음악이지만 국악은 정형화되어 있다. 그래서 접목을 통해 양쪽의 맛을 제대로 내는 건 숙제처럼 두렵게 느껴진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해금 강은일, 진도씻김굿 소리꾼 최수정, 섹스폰의 거장 강태환과 함께 재즈와 씻김굿의 한마당을 펼쳐내 흥에 겨운 일부 관객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진풍경까지 이끌어냈다.

이어진 인디밴드 크라잉넛의 굿음악 편곡 연주와 뽕짝 시나위, 칸소네와 팝송의 경기소리창법 부르기 또한 흥미로웠다.

언제부턴가 국악은 어렵고 지루한 음악으로 여겨지며 대중과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외국인들과 소수의 애호가들만이 관심을 가질 뿐 도대체 들으려 하지를 않는다. 국악보다 외국의 팝 음악에 더 친숙한 문화적 환경 때문이다. 사실 국악을 대중음악에 접목하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시도되어 왔다.

그 시초는 50-60년대의 신민요라 해야 할 것이다. 김세레나와 김부자, 김용만은 익숙한 전래 민요를 새로운 감각으로 리메이크한 신민요로 인기를 얻었던 가수들이다. 60년대에 접어들며 서양음악인 포크와 록이 등장하면서 신민요는 낡은 음악으로 치부되며 그 힘이 약화되었다.

록의 대부 신중현은 60년대 초부터 무던히도 록과 국악의 접목을 통해 한국적인 록을 꿈꿨던 뮤지션이다. 포크의 전설 김민기도 ‘고향 가는 길’, ‘밤 뱃놀이’같은 국악가요를 만들었고 이종구등과 함께 국악의 대중화를 문화운동으로 연결했던 인물이다.

친숙한 구전가요 ‘타박네’,‘진주낭군’을 재해석한 서유석과 ‘벽오동’ 투코리언스, 송창식, 정태춘, 김태곤 등은 국악가요로도 주목을 받았던 인기가수들이다. 창작 국악가요를 시도한 노래단체도 있었다.

대학생들이 추축이 되었던 ‘맷돌’과 ‘참새를 태운 잠수함’이다. 이곳을 통해 통기타와 가야금 협주를 시도한 남성듀오 4월과 5월의 ‘딩동댕 지난 여름’과 유한그루의 ‘물레’ 같은 히트곡이 탄생되기도 했다.

대중음악인들만 국악과의 접목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김영동과 슬기둥 등 국악인들이 앞장서 ‘국악가요’를 시도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장사익도 국악인 출신 아닌가.

80년대에 들어 자신의 국악가요 1호 ‘별리’를 발표하며 국악가요의 역사를 잇고 있는 김수철은 ‘서편제’등 영화음악과 국내외 중요 국가행사에서 성과를 올리는 거의 유일한 대중음악 뮤지션이다.

국악인 김덕수도 사물놀이패를 결성해 국내외를 넘나들며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선 인물로 손꼽힌다. 이외 ‘칠갑산’의 주병선, ‘공무도하가’의 이상은, 판소리와 랩을 접목한 ‘흥보가 기가 막혀’의 육각수, 넥스트의 신해철 등 수많은 가수들이 대중음악에 국악을 접목해오고 있다.

이처럼 국악은 음악성을 지닌 대중음악뮤지션들에겐 공통의 화두다. 하지만 국악가요는 아직도 확실한 장르로 정착하지 못했다. 대중이 너무 진지한 음악으로 여겨 멀리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대중음악계에선 진지한 음악적 고뇌를 실천하는 뮤지션은 그 순간부터 대중과 멀어지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감내해야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국악이나 진지한 음악을 하는 것은 곧 천형’이란 말이 나돌까. 80년대 초 국악가요음반 ‘여행’을 발표했고 이후 기타산조 연주를 완성한 오세은은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공연 후 박재천씨는 “국악은 서양음악을 하는 사람이 발전시켜야 되고 새롭게 개혁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국악인들은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이기에 발전을 시키는 것은 대중음악인의 몫이다.

김수철의 음악도 월드뮤직의 한 부분이다. 우리 대중음악의 세계화를 위해선 이제라도 우리식의 음악 코드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의 음악가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생전에 인정을 받질 못했다.

죽은 후에야 거룩한 음악으로 포장이 될 뿐이다. 윤이상이 그랬고 뛰어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임동창도 ‘기인’, ‘괴짜’, ‘피아노 잘 치는 중’ 쯤으로 치부되지 않는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문화가 충돌해 상충작용으로 재즈가 등장했다.

그걸 세계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미국인이 아닌 유럽인들이다. 국악은 전라도에서 꽃피웠지만 발전시킨 곳은 서울이다. 우리 국악이 대중음악으로 각광받기 위해선 그 자체로 튀기보단 자연스럽게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스며드는 음악이 되어야 한다.

라틴 음악도 독특하지만 팝과 만났을 때 전혀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던가. 생소했지만 가능성을 제시한 ‘굿 음악회’같은 이질적인 음악회가 아무런 사회적 제약과 편견 없이 세종문화회관 같은 무대에서 대중을 만날 수 있을 때 진정한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접목이 실현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가능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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