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출신 최민호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새해가 밝았습니다. 설날이 왔어요. 오늘은 떡국 먹고 한 살 더 먹는 날입니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지요.
오늘은 때때옷 입고 세배하는 날이랍니다.
아빠, 엄마, 하윤이, 동생 소윤이. 모두모두 때때옷으로 갈아입어요. 엄마가 오늘 입으려고 모두 모두 새 옷으로 준비했지요. 버석버석, 사각사각... 새 옷을 입고 걸으면 걸을 때마다 옷에서 기분좋은 소리가 나요. 하윤이는 때때옷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좋아 옷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곤 한답니다. 참 좋은 냄새예요. 엄마 냄새인가? 하윤이는 엄마 옷에 코를 박고는 엄마 옷 냄새도 맡아 보았어요. 엄마 옷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어요. 정말 좋은 냄새예요.
때때옷을 갈아입을 때, 텔레비전을 봤어요. 우리는 설날이라 떡국이랑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는데, 얼굴이 새까만 아프리카 어린이는 앙상하게 말라 있었어요. 배가 고파도 못 먹어서 그렇대요.
어떤 아저씨가 3만원이면 어린이들을 구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하윤이는 얼굴이 검은 아프리카 어린이가 참 불쌍했어요. 하윤이와 친구해도 좋을 어린이였어요. 하윤이는 뚫어져라 텔레비전을 보았어요. 가슴이 아팠어요.
때때옷을 입고 할아버지 할머니 큰 아빠 작은 아빠들에게 세배를 해요. 세배를 하면 세뱃돈도 받지요. 세뱃돈은 마치 방금 구운 과자같이 빳빳한 새 돈이예요.
세뱃돈을 받으면 무얼하지요? 엄마는 좋은 일을 하라며 엄마한테 맡기라고 했어요. 하윤이는 엄마에게 세뱃돈을 받을 때마다 맡겼어요.
“하윤이 참 예쁘다. 올해도 건강하고 엄마 말 잘 들어요.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동생도 잘 봐주고. 우리 하윤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하윤이에게 모두 착한 아이가 되라고 해요. 그리고 예쁜 봉투에 넣어 세뱃돈을 주셨어요.
하윤이는 얼른 돌아서서 봉투를 열어보았어요. 돈을 세 보았어요. 천원짜리 세 장이 들어있었어요. 3천원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셨거든요. 천원짜리, 5천원짜리, 만원짜리...
그런 하윤이를 바라보시면서 할아버지가 웃으셨어요.
“우리 하윤이 똑똑하구나. 벌써 돈을 셀 줄 아네. ”
하셨어요.
‘3천원.. 3천원..’
하윤이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큰 아빠에게 세배를 하였어요. 큰 아빠도 세뱃돈을 주셨어요. 그 봉투도 열어보았어요. 천원짜리 다섯 장. 하윤이는 눈을 반짝였어요. 세뱃돈을 받자, 엄마가 얼른 말씀하셨어요.
“하윤아 세뱃돈 엄마에게 맡겨야지? 엄마가 나중에 하윤이가 필요할 때 줄게.”
하셨어요. 하윤이는 쪼르르 엄마에게 가서 세뱃돈을 맡기지요. 하지만 하윤이는 알고 있었어요. 큰 아빠는 5천원...
하윤이는 세뱃돈을 받으면 꼬박꼬박 봉투를 열어 돈을 세 보았어요. 그런 하윤이를 보고 큰 아빠도 작은 아빠도 모두 웃으시며,
“하하하... 하윤이는 나중에 부자로 살겠네. 세뱃돈 챙기는 걸 보면...”
하셨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런 말씀에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으셨어요. 아빠도 그렇고요. 하윤이는 세뱃돈을 받을 때마다 꼬박꼬박 봉투를 열어보고 나서 엄마한테 세뱃돈을 맡겼어요.
설날은 맛있는 음식도 많이많이 먹어요. 하윤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도 있고요. 곶감도 대추도 있어요. 설날 하윤이는 온 가족들 앞에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어서 어른들 귀염을 많이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또 용돈을 받았답니다.정말 정말 설날은 신나는 날이예요.
저녁이 되자 집에 돌아오게 되었어요. 설날 아침은 즐거운데 저녁은 조금 피곤해요. 엄마는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텔레비전을 켰어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아침에 보았던 새까만 아프리카 친구가 또 나왔어요. 말라가고 있는 불쌍한 어린이였어요.
“엄마, 엄마, 제 세뱃돈 주세요.”
하윤이는 엄마를 큰 목소리로 불렀어요. 엄마는 하윤이를 보더니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어요.
“엄마, 제 세뱃돈 주세요. 얼마예요?”
하고 물었더니 엄마 얼굴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뀌었어요. 아빠도 그런 하윤이를 말없이 쳐다보셨어요.
“엄마 빨리 세뱃돈 주세요.”
하고 하윤이는 재촉했어요.
“얘가 왜 이렇게 돈을 챙기지?”
엄마는 근심스런 얼굴로 하윤이를 바라보더니 세뱃돈을 건네주었어요. 하윤이는 돈을 세어 보았어요. 얼마인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나 세뱃돈 얼마 받았어?”
엄마는 표정이 또 굳어지셨어요.
“만9천원이다. 왜?”
하시면서,
“하윤이 왜 그러니? 그렇게 돈을 챙기면 못써요. 엄마가 하윤이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아빠도 재미있는 장난감도 많이 사주시는데, 자꾸 돈 주세요, 돈 주세요. 하면 못 쓰는 거예요. 알았지?”
하고 부드럽게 말씀하셨어요. 하윤이는 갑자기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어요. 마구 떼를 쓰며 앙앙앙 울었어요. 엄마는 하윤이를 나무래서 그러신 줄 알고 깜짝 놀라며,
“어머, 얘가 도대체 왜 이래?”
하시며 표정이 더 굳어지셨어요. 아빠도 표정이 딱딱하게 변하였어요.
“왜 그래 하윤이. 울면 못 써요. ”
하셨어요. 하윤이는 마구 울었어요.
“세뱃돈이 3만원이 안되잖아요. 어떡해... 앙앙앙..”
엄마 아빠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놀란 표정으로 하윤이를 바라보았어요.
“하윤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3만원이 어때서... 3만원으로 무얼 사려고...”
하시는 것이었어요. 하윤이는 손가락으로 텔레비전을 가리켰어요. 아프리카 어린이가 또 화면에 나왔어요. 크고 둥그런 눈, 앙상한 가슴, 먹을 것이 없어서 가늘어진 팔다리...
하윤이가 말했어요.
“저기 저 아이. 3만원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다잖아요. 병들어 죽는대요. 앙앙앙... 근데 만9천원이면 어떡해요. 3만원이 안되면 쟤가 죽잖아요.”
하였습니다. 엄마 아빠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란 얼굴로 하윤이를 보았어요.
“너 그래서 3만원을 모으려고 했던 거니?”
하윤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엄마가 와락 하윤이를 품에 안으셨어요.
“우리 착한 하윤이...”
그런 하윤이를 말없이 바라보시던 아빠가 말했어요.
“근데 하윤이. 엄마 아빠에게 세배했니?”
하셨어요. 하윤이는 눈을 깜박거렸어요. 할아버지와 큰 아빠, 작은 아빠에게는 했는데 엄마 아빠에게 세배를 했는지는 기억이 없었어요.
“하윤이, 엄마 아빠에게도 세배해야지.”
아빠가 말씀하셨어요. 하윤이는 얼른 일어나 엄마 아빠에게 공손하게 세배를 했어요.
“우리 착한 하윤이. 불쌍한 어린이도 많이 돕고.. 그래요. 하윤이같이 착한 어린이는 없어요. 여기 있다. 세뱃돈. 이제 3만원이 되었지?“
하시는 것이었어요. 하윤이는 정말 기뻤어요.
3만원으로 저 새까만 어린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대요. 앙상한 뼈만 남아 말도 제대로 못하는 친구가 살아날 수 있대요. 팔다리도 굵어져서 힘차게 달릴 수도 있게 된대요. 하윤이는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다시 엄마에게 3만원을 맡겼습니다. 오늘은 정말 행복한 설날이었습니다.
■ 미노스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해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 차관급 고위직을 세번이나 거쳤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도쿄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교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공직 퇴임 후 고려대·공주대 객원교수, 배재대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홍익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30여년의 공직생활 퇴임후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새움출판사)'라는 단편소설과 동화가 있는 이야기책을 출간, 동화작가로 데뷔했다. 단순히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童話)'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남녀노소 모두를 아우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화(動話)'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