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침체·레고랜드발 '돈맥경화'로 건설업계 '줄도산' 우려
당분간 금리하락 기대 어려워...규제완화 통한 거래회복 시급

지난 23일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이번주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71.0을 기록해 3주 연속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급매' 전단지가 붙어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3일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이번주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71.0을 기록해 3주 연속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급매' 전단지가 붙어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김지현 기자] 올초만 해도 부동산 시장 전망은 낙관론이 대세였다. 그러나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원자재 값이 급등하기 시작했고, 그로인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가 급등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앞서 부동산 시장은 8년간 상승세가 이어지는 상황이었고, 특히 2020년과 2021년 폭발적인 호황기를 거친 탓에 세금 및 대출 규제는 주택 구매력을 강력하게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맞춰졌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세제와 과도한 국민 세부담을 정상화시키겠다고 공약했지만, 지난 8월 첫 부동산 대책으로 270만호 공급대책을 발표했을 뿐 규제 완화에는 미온적이었다. 집값 급등에 대한 부담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부동산 규제가 초래한 거래절벽과 글로벌 경기 침체, 금리인상 부담 등이 맞물리며 시장은 순식간에 폭락을 거듭하는 가파른 하락장으로 접어들었다.

집값 급락 사태는 곧바로 미분양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레고랜드발 PF 사태까지 터지며 건설업계는 벼랑끝 위기에 몰렸다. 집값 급락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역전세난과 전세사기, 가계소비 위축, 영끌족 파산 위험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분간 시장 반등은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인상과 경기침체 등 올해 부동산 시장을 침체시킨 주요 요인들은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2020년 7.10 대책으로 다주택자와 법인사업자의 취득세율은 8%, 12%로 3배 이상 늘어났다. 2021년 말에는 DSR 40% 대출규제가 적용됐다. 그 이후 서울 아파트 월별 거래건수는 급감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1028건, 8월에는 907건, 9월에는 856건, 10월에는 900건을 기록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소 거래량인 1344건(2008년 11월)보다 적은 거래 건수다. 자료=리치고 엑스퍼트 제공
지난 2020년 7.10 대책으로 다주택자와 법인사업자의 취득세율은 8%, 12%로 3배 이상 늘어났다. 2021년 말에는 DSR 40% 대출규제가 적용됐다. 그 이후 서울 아파트 월별 거래건수는 급감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1028건, 8월에는 907건, 9월에는 856건, 10월에는 900건을 기록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소 거래량인 1344건(2008년 11월)보다 적은 거래 건수다. 자료=리치고 엑스퍼트 제공

◇ 금리인상·경기침체, 규제로 인한 거래절벽과 만나 '급급매' 폭락 초래

올초까지만 해도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정비구역 대거 해제가 초래한 수도권 지역 공급부족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부동산 시장은 뜨거웠다. 

집값을 잡기 위한 여러가지 규제를 도입했지만, 효과가 미비하자 이전 정부는 2020년 7.10 대책으로 최고 12%까지 취득세를 중과하고 2021년 말 DSR 40%를 적용하는 등 강력한 거래억제대책을 도입했다.

30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12월(25일 기준)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매매건수는 1만1324건으로 2021년 거래된 4만1948건의 27%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같은 정책은 실수요자들도 이사 가기 힘들정도로 부동산 거래를 급감시켰지만, 가격 상승을 막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6월부터 본격적으로 하락거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각종 규제로 거래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침체와 금리인상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극소수의 거래로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 가파른 하락장이 펼쳐졌다는 점이다. 

대출금리 상승으로 전세 수요가 급감하면서 전세 값이 가파르게 떨어진 점도 하락속도를 높였다. 통상 집값이 하락하면 임대차 수요가 몰려 전세가격이 오르는데, 이번에는 그같은 공식이 작동하지 않았다. 

거래절벽 상황에서 매매 값의 하방을 받쳐주는 전세까지 동반 하락하면서 매매 값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실제로 지난해 9월 23억7000만원에 거래됐던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는 지난 1일 19억4500만원에, 지난해 10월 27억원에 거래됐던 잠실동 트리지움 전용 84㎡는 지난 1일 19억4500만원에 손바뀜됐다.

◇ 청약률↓· 당첨되도 포기...'미분양 공포'에 건설사 줄도산 우려 '솔솔'

주택가격 하락은 곧바로 청약시장 한파로 이어졌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집값이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미분양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말 1만7710가구였던 전국 미분양 주택은 올 10월 말 기준 4만7217가구로 세배 가까이 늘어났다. 수도권은 같은 기간 1509가구에서 7612가구로 5배 가까이 훌쩍 뛰었다. 업계에서는 오피스텔과 생활형숙박시설 등을 포함하면 7만 가구를 넘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미분양 증가는 공사 진행에 지장을 초래한다. 아파트 공사비는 분양자의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원자재 값이 30%가량 뛴 상태에서 청약 한파가 불어닥치면 시행사와 건설사의 재무구조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여기에 레고랜드발 프로젝트파이낸상(PF) 사태까지 터지면서 시장 유동성은 완전히 말라붙었다. 결국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우석건설, 동권건설산업 등 중견건설사들이 무너져 내렸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돈맥경화 사태라는 겹악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년 금리가 추가로 인상될 경우 건설업계는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실제로 26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 하반기 종합건설사의 폐업 신고 건수는 182건이다. 지난해 하반기(135건)보다 34%나 늘어났다. 올 상반기(150건)과 비교해도 20% 이상 늘었다.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건설사 중심으로 줄도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 사우디서 불어온 '봄바람'...정부도 건설사 해외 공략 적극 지원

국내 부동산 사업 침체 전망에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건설사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국내 대형 건설업체들은 내년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를 노리고 있다. 

네옴시티 핵심 사업인 ‘더 라인’ 터널 공사를 수주하는 데 성공한 삼성물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해외 수주 1위에 올랐다. 해외건설종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삼성물산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49억668만달러로 2위인 삼성엔지니어링(27억5644만달러), 3위 현대엔지니어링(27억1540만달러)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지난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삼성엔지니어링은 올 초 중국 국영 건설사 CC7과 1조4000억원 규모 러시아 '발틱 에탄크래커 프로젝트' 설계‧조달 계약을 성사를 시작으로, 베트남·알제리·카타르 등에서 화공플랜트 부문 수주 성과를 올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인니 라인프로젝트와 호주 ASM더보 프로젝트 수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해외 수주를 이어갔다. 특히 지난 1월 따낸 인니 라인프로젝트는 인도네시아에 뉴 에틸렌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롯데건설과 함께 수주에 성공했다.

삼성물산과 함께 ‘더 라인’ 터널 공사를 수주한 현대건설도 26억9066만달러의 수주고를 올렸다. 이는 지난해 21억1473억달러보다 27.2% 증가한 액수다. 

롯데건설은 올해 글로벌 건설사 도약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올해 해외 누적 수주액은 17억6000만달러(5위)다. 지난 2년간 해외 수주액(4억5803만달러, 1억1707만 달러)에 비해 크게 올랐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거점 국가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도 진출한 결과다.

DL이앤씨도 주택사업에서 벗어나 신사업과 고수익 포트폴리오 구조 다변화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 차나칼레 대교와 신림선, 파키스탄 굴푸르 수력발전소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으며 글로벌 디벨로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대우건설은 해외시장 확대를 적극 모색중이다. 대우건설은 올해 미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 다양한 국가를 누비며 현지 주요 인사와 면담을 나눴다. 아프리카 시장 확대를 위해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고,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비료공장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정부도 적극 지원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28일 해외건설 수주 연 500억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해외건설 수주지원단'을 출범시켰다. 민관 역량을 하나로 모아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수주를 위해 팀을 짰듯이 프로젝트별로 '원팀 코리아'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3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인수위는 당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전반적으로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특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없애는 방안을 먼저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 방침은 지난 21일에서야 발표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인수위는 당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전반적으로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특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없애는 방안을 먼저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 방침은 지난 21일에서야 발표됐다. 사진=연합뉴스 

◇ 취득세 중과 완화·다주택자 주담대 금지 해제..."시장 안정화엔 역부족"

집값 급락에도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지난 9월까지 “아직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규제 완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집값 고점'에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무주택자만 103만명. 금리 상승 부담과 가파른 하락장이 겹치면서 가계 부채 부실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고, 지난 21일 대출 규제 및 세제 완화를 발표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중과제도를 3주택은 4%로, 4주택 이상과 법인은 6%로 완화됐고, 한시 유예 중인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기간을 오는 2024년 5월까지 연장했다. 규제지역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금지 규제도 풀렸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상한은 30%로 바뀌었다. 

시장 침체 주요 요인 중 금리인상, 경기침체는 외부 요인이다. 정부가 당장 개선시킬수 있는 부분은 거래정상화 뿐이다.

이에 이번 규제완화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시장 안정화에 부족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둘러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 시켜야 할 정부가 여전히 민심 간보기를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금리인상이 부동산 하락의 가장 주요한 원인인데, 당분간 금리하락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번 규제 완화가 매매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래를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키려면 더 신속하고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5일 규제 지역 추가 해제를 다음달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추 장관은 “지금 하락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며 “지금 발표한 조치를 몇 개월 시행해도 시장 흐름이 제대로 안착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대응을 또 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세금을) 상당폭 인하하고 규제를 푸는 내용이 논의되고 있지만, 더 큰 폭의 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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