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 첫 호흡 맞췄던 ‘차이콥스키 비창’ 똑같은 날 공연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브람스 바이올린협주곡’ 협연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네덜란드에는 두 개의 국보급 오케스트라가 있다. 수도인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하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그리고 최대 규모의 무역항인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뛰어난 연주력과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이는 두 오케스트라가 2023년 롯데콘서트홀 월드 클래스 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잇달아 한국을 찾는다.
먼저 6월 19일 내한하는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18년 창단 이후 현대 음악가들에게 신작을 위촉하고 연주하면서 ‘오늘의 음악’에 꾸준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왔다. 또한 젊은 지휘자들을 발탁해 지휘봉을 맡기는 과감한 모험과 도전으로 악단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는 11월 11일과 12일 내한한다.
2018년 로테르담 필하모닉 역사상 27세에 최연소 상임 지휘자가 된 이스라엘 출신의 신예 라하브 샤니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타고난 감각으로 로테르담 필하모닉을 이끌어오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 로테르담 필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협연으로 브람스가 남긴 단 하나뿐인 바이올린 협주곡과 차이콥스키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교향곡 6번 ‘비창’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공연은 샤니와 로테르담 필이 첫 호흡을 맞춘 2016년 6월 19일로부터 정확히 7년이 되는 2023년 6월 19일, 당시 지휘한 차이콥스키 ‘비창’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고 특별하다.
네덜란드 교향악단의 역사는 유럽 여느 나라에 비해 그리 길지 않다. 동쪽의 독일과 북쪽의 영국이 일찍이 오케스트라의 전통을 확립한 것에 비해 네덜란드 근대 악단의 설립은 대략 19세기 말에 시작됐다. 오늘날 ‘전통’과 ‘정통’의 악단으로 손꼽히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가 창단된 것도 1888년, 19세기 말이다.
후발 주자인 네덜란드 악단에는 ‘전통’이 부재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도전’을 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악단은 지휘자 선택에 있어 보다 과감하고 파격적인 초이스를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로테르담 필은 명석한 혜안과 과감한 판단력으로 발레리 게르기예프, 야닉 네제-세갱, 라하브 샤니 등 손꼽히는 지휘의 반열의 오른 지휘자들을 매우 이른 나이에 수석 지휘자로 임명했다.
1995년 임명된 게르기예프는 42세에 로테르담 필을 맡았고, 2006년 단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출된 네제-세갱의 나이는 33세였으며, 샤니는 2018년 27세의 나이로 로테르담 필의 수석지휘자가 되어 지금까지 악단을 이끌고 있다. 게다가 샤니는 로테르담 필을 맡은 이후로 이스라엘 필하모닉, 최근 뮌헨 필하모닉까지 추가로 계약을 맺으며 그 스스로 지휘자로서의 역량과 명성을 입증해 나가고 있다.
샤니는 198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이스라엘 음악계에도 잘 알려진 마이클 샤니로 첼리스트이자 합창 지휘자로 활동했고, 샤니의 형제 롬 샤니도 색소포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텔아비브에서 성장한 샤니는 6세가 되면서 한나 살기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부흐만-메타 음악학교에서 아리에 바르디(손열음, 박종해, 김다솔 등의 스승)를 사사했다. 이 학교는 이스라엘 필과 협력하여 자국의 재능 있는 학생들을 성장시켜 나갔다. 이처럼 샤니의 주변에는 이스라엘 필이 있었고,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피아니스트의 길을 목표로 하면서도 지휘자의 세계에 매료될 수 있었다. 이후 샤니는 독일로 유학해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대에서 피아노와 함께 지휘를 공부했다.
샤니는 24세이던 2013년, 밤베르크에서 열린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 지휘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2015년 플루트 3중주 음반(메르디앙 레이블)을 내놓기도 했고, 빈 심포니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6년 6월 17일과 19일, 로테르담 필과의 첫 만남을 갖게 된다. 그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을 지휘했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도 연주했다. 전임 지휘자 네제-세갱의 후임자를 찾고 있던 로테르담 필은 이후 샤니에게 2018/19 시즌 연주를 제안했다.
로테르담 필과 첫 시즌을 열었던 2018년, 샤니는 50년 넘게 지휘봉을 잡아 온 주빈 메타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필의 음악감독으로 임명, 2020/21 시즌부터 활동 중이다. 또한 올해 1월에는 뮌헨 필하모닉과 2026/27 시즌부터 함께 하는 수장으로도 임명됐다. 이 외에도 2021년 베를린필 제야음악회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함께하지 못한 키릴 페트렌코를 대신해 지휘봉을 잡는 등 샤니는 지휘의 역량을 인정받아 현재부터 미래까지 러브콜을 받으며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다채롭게 채워나가고 있다.
‘지휘자 샤니’를 논하는 데 있어, ‘피아니스트 샤니’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라디오 프랑스 필 등과 협연‧지휘를 맡기도 했다.
2019년 발매한 음반(에라토 레이블)에는 차이콥스키‧드보르자크 피아노 3중주를 담기도 했다. 르노 카퓌송(바이올린), 키안 솔타니(첼로)와 함께한 앨범은 그라모폰으로부터 “세 음악가는 풍부한 아이디어를 통해 대화하고 드라마의 감각을 유지한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샤니의 스승 아리에 바르디에게 배웠던 피아니스트 예핌 브로프만은 샤니를 “피아노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음악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로테르담 필과 함께 팬데믹의 터널을 통과할 때도, 2020년 발매한 음반(워너 클래식)에서 직접 지휘와 협연을 맡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과 교향곡 7번을 선보였다.
2020/21 시즌부터 음악감독직을 맡은 이후 지난 4월 이스라엘 필과의 첫 음반(아반티 레이블)에도 아르헤리치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담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연주 행보로 비춰 보아 샤니는 오늘날 아슈케나지(1937~), 바렌보임(1942~), 플레트네프(1957~) 이후 주목받는 지휘자·피아니스트의 계보를 잇는 음악가로 많은 음악팬들에게 기대와 설렘을 주고 있다.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티켓가격은 R석 22만원, S석 18만원, A석 14만원, B석 10만원, C석 6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