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 300곳 참여…엔진부터 발사대 시스템까지 국내 기술로
[데일리한국 김정우 기자] 민간 기업 기술을 활용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5일 3차 발사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7번째로 1t급 이상의 실용 위성을 스스로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누리호의 비상과 함께 민간 주도의 우주산업 강국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2010년 3월 시작된 누리호 개발 프로젝트는 국내 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인력, 인프라 등을 적극 활용하는 민·관 협력 방식으로 진행됐다. 설계부터 제작, 시험, 발사까지 전 과정이 순수 국내 기술로 진행된 누리호에는 국내 민간 기업 300여곳의 기술과 노력이 녹아들어갔다.
누리호 프로젝트에 참여한 민간 기업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긴밀히 협력하며 엔진과 발사대 제작, 체계 조립 등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번 누리호 발사 준비, 임무 통제 등을 총괄하는 체계종합기업 역할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맡았다. 지난해 10월 누리호 고도화 사업 발사체 총괄 주관 제작 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12월 본계약을 체결하고 민간 체계종합기업 자격으로 본격 뛰어들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사업을 통해 항우연이 보유한 누리호 체계종합 기술과 발사 운용 노하우를 순차적으로 전수받았다. 체계종합기업으로 합류하면서 단조립 이후 제작 단계부터 에비오닉스·추진기관·추력벡터제어계 기능시험, 전기체 시험 등 발사체 시험평가 업무까지 기술이전과 병행 수행했다.
누리호의 ‘심장’인 엔진 제작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맡았다. 우주발사체 엔진 기술은 미국, 러시아 등 우주 선진국들이 극비로 취급하기 때문에 국가 간 기술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해 모든 기술은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했다.
누리호는 독자적 우주 수송능력 확보를 위해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 상공 600~800km 저궤도에 추진할 수 있는3단형 한국형 발사체다. 1단에 75t급 액체엔진 4기, 2단에 75t급 1기, 3단에 7t급 1기까지 총 6개의 엔진이 탑재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들 6기의 엔진을 조립·납품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엔진 부품인 터보펌프, 밸브류 제작과 엔진 전체의 조립까지 담당했다. 우리나라 독자 기술로 개발된 누리호의 75t급 엔진은 영하 180도에 달하는 극저온의 액체 산소와 연소 시 발생하는 3300도의 초고온을 모두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됐다.
2027년 6차 발사까지 총 4차례에 걸친 누리호 발사를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기술 검증, 지상 관측 등 다양한 미션을 수행할 실용위성을 궤도에 올릴 계획이다. 민간 우주 수송 사업 상업화도 추진하며 그룹 내 계열사들과의 시너지를 통해 향후 우주탐사 기술까지 확보, ‘우주산업 토탈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300여개 기업이 납품한 수많은 제품 조립을 총괄하는 체계총조립 임무를 맡았으며 1단 추진제탱크·엔진 4기의 일체화 작업인 클러스터링 조립 등 역할을 수행해냈다. 특히 1단에 장착된 75t급 엔진 4개가 하나의 300t 엔진처럼 작동하게 하는 클러스터링은 고도로 정밀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KAI는 2014년부터 누리호 개발모델, 인증모델, 1~3차 비행모델의 총조립을 담당하며 발사체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했다. 또한 이번 발사를 준비하는 동시에 누리호 4호기용 1단 추진제탱크 제작에도 착수한 상태다. 4차 발사에는 민간 주도 위성개발로 KAI가 설계·시험·제작을 전체 총괄한 차세대중형위성 3호가 실릴 예정이다.
KAI는 4·5·6호의 성공적인 발사에도 만전을 기할 방침이며 그동안 쌓은 우주사업 개발 경험과 기존 항공기 체계종합 역량을 접목해 향후 추진될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HD현대중공업은 누리호 3차 발사에서 발사대 시스템 전반을 총괄하는 운용지원 업무를 맡았다. 누리호 발사대 시스템은 HD현대중공업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약 4년 6개월에 걸쳐 독자적으로 구축한 것으로 앞서 2013년 ‘나로호(KSLV-Ⅰ)’ 발사대를 구축 경험이 토대가 됐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은 발사대 기반 시설 공사부터 발사대 지상기계설비(MGSE), 발사대 추진제공급설비(FGSE), 발사대 발사관제설비(EGSE) 등 발사대 시스템 전반을 독자기술로 설계·제작·설치, 공정 기술 국산화율을 100%로 끌어올렸다.
현대로템은 누리호 발사 모든 과정에서의 추진계통 성능과 연소성능을 시험하는 시스템 시험설비를 구축했다. 설비 개발을 위해 해외 기술을 도입하는 대신 협력사들과 함께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에 성공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우주 산업은 2019년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는 등 민간 기업의 적극적 참여와 함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글로벌 우주 산업 규모는 2018년 3500억달러에서 민간기업 주도 하에 2040년까지 1조100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정부는 앞으로 2027년까지 누리호를 3차례 반복 발사함과 동시에 누리호보다 성능이 향상된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추진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것”이라며 “기업과 연구기관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