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이후 50여일째 공개석상 안나타나
전문가들 "제도적 보완 장치 마련해 소외계층 지원 등 영부인 역할 이어가야"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은 지 50여일이 지났다. 지난해 12월 중순 윤 대통령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뒤부터다. 대통령실 설 명절 인사 영상에서도 그 자리를 대통령실 참모들이 대신 채웠다. 윤석열 정부의 성패를 가를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데 따른 영향으로 읽힌다.
김 여사의 복귀 시점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제2부속실'과 같이 영부인을 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8일 대통령실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여사는 지난해 12월18일 윤 대통령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후 50여 일째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 여사의 이런 행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허위 이력으로 논란을 빚자 '조용한 내조'를 약속한 뒤, 윤 대통령 취임식인 2022년 5월10일까지 135일 동안 공개 석상에 자리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관람하거나 서울 마포구 유기견 거리, 단양 구인사 등을 찾기도 했으나 모두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비공개 일정이었다.
김 여사는 영부인이 된 뒤에도 각종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잠행'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그해 7월 참석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이원모 당시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배우자인 신모씨가 함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인 동행' 논란이 일자 김 여사는 28일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정조대왕함 진수식이 열린 2022년 7월28일에야 공개석상에 나섰다.
이어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과 관련한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김 여사는 그해 9월18일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위해 출국할 때까지 52일 동안 비공개 일정만 소화했다. 또한 야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문제 삼으며 특검 추진을 본격화한 지난해 2월에도 공개 행보를 자제했다. 김 여사는 그해 2월3일 한국수어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뒤 18일 만에 윤 대통령과 동행하지 않고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을 관람했다.
김 여사는 지난해 3월2일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이 무혐의로 종결되자 그 다음날 포항 죽도시장을 방문하면서 열흘 만에 공식 활동을 재개했다. 또한 '도이치모터스 내부정보 이용 혐의', '대학 강사 허위 경력 의혹', '허위 경력 해명 거짓말 의혹' 등도 무혐의 처분을 받자 김 여사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졌다.
김 여사는 지난해 13차례의 해외 순방 일정 가운데 지난 8월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의를 제외한 12차례의 순방에 동행했다.
동물 보호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개 식용 종식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장을 비공개 일정으로 깜짝 방문하는 등 입법화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소외계층을 위한 행보에도 발 벗고 나섰었다.
'조용한 내조' 방침을 유지하면서도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 등을 뒷받침했던 김 여사는 명품 가방 수수 논란 등 자신을 둘러싼 '잡음'이 커지자 또다시 종적을 감췄다. 설맞이 대국민 영상 메시지에서도 사라졌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명절 때마다 김 여사와 한복을 차려입고 "민생을 챙기겠다"는 취지의 명절 메시지를 남기곤 했다.
명품 가방 수수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자 결국 윤 대통령이 신년 대담을 통해 '정치 공작'이라고 규정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아직 여론은 냉담한 모양새다.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이 뉴스1 의뢰로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서울시·인천시·경기도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2435명에게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물어 이날 발표한 결과를 보면 '직접 입장을 표명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응답이 54%(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2.0%포인트)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입장 표명으로 충분하다'는 응답은 18%였고, '함정 취재의 피해자로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모름·응답 거절'은 12%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전문가들은 제2부속실과 같이 김 여사를 공식적으로 보좌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논란이 될 문제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2부속실은 영부인의 일정과 수행 업무 등을 담당하는 곳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 대통령실 슬림화 기조와 함께 영부인에 대한 과도한 의전을 줄이겠다면서 이를 폐지했다. 하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KBS 1TV에서 방영된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제2부속실과 같은 제도적 보완 장치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김 여사는 영부인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인 만큼, 제2부속실을 설치해 행보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김 여사의 일정, 메시지 등의 행보를 공식화하지 않으려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총선 정국에서 정부와 여당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비판 여론이 높은 데다 총선을 치르는 데 있어 정부와 여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잠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논란의 빌미는 김 여사가 제공했다"면서 "정치적 논란의 소지가 있는 행보는 최대한 자제하되, 민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을 돌보는 등 영부인으로서의 역할을 놓아선 안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