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망 주민수용성·기술문제에 '발목'...무탄소 전원 전략 '빨간불'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올해 1월15일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전력수급 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을 송전할 예정인 동해안~신가평 HVDC 선로 확충이 난관에 부딪친 데다 북당진~고덕 HVDC에서도 운용상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16일 파악됐다.
이들 송전 선로는 동해안 신한울 1, 2호기와 서해안의 해상풍력발전과 연계돼 있다.
한국전력이 주도하는 동해안~신가평 HVDC 사업의 경우 국회에서 관련 입법 미비와 현지의 주민수용성 부족으로 인해 실현이 요원한 상태다.
여당은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법’을 발의했지만 야당의 동의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국회에서 다수의 의석수를 바탕으로 정국을 주도하는 야당은 영호남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을 수도권으로 송전하는데 더 관심을 갖고 있다.
여기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또다른 축인 북당진~고덕 HVDC 선로 유지에도 문제가 생겼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시공사인 GE파워에서 A/S인력을 파견할 때까지 고장난 선로를 고치지 못하고 있다”며 “HVDC 유지보수 기술을 국산화 하지 않는 이상 이 같은 일은 반복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8일 LNG발전소 건설을 허가하자 '무탄소 전원'을 이용하겠다는 당초 계획이 틀어지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중부발전과 SK E&S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집단에너지 사업’을 인가받았는데 집단에너지는 천연가스를 사용한다. 천연가스는 CO2 발생이 석탄의 절반 가량에 불과하지만 화석연료로 분류된다.
산업부는 고준위 방폐장법을 통과시켜 원전을 유럽 기준의 친환경 에너지로 포장하고, 반도체 등을 제조함으로써 RE100,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라는 장벽을 뛰어넘을 계획이었다. 친환경 에너지로 생산했기 때문에 친환경 제품이라는 논리다.
EU 환경기준(EU-taxonomy)에 따르면 고준위 방폐장 설립계획을 확보하면 원전이 친환경에너지로 대접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전제가 되는 고준위 방폐장법이 국회 문턱을 여전히 넘지 못하면서 산업부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충을 등한시한 나머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을 제대로 키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EEFA)는 “한국 정부가 풍력, 태양광, 수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를 확충해야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산업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지난 14일 냈다.
이 보고서는 글로벌 반도체 구매자들이 탄소 발자국을 적극적으로 줄이는 업체를 찾고 있는데, 한국 정부의 더딘 재생에너지 정책이 한국의 반도체와 AI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의 저자인 김채원 연구원에 따르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입주한 SK하이닉스가 발표한 대로 열만 구입해 사용한다면 부분적으로 RE100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여전히 CBAM과 지속가능공시제도인 IFRS SCOPE 1, 2, 3의 규제를 피하기 어렵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이 송전망 때문에 난관에 빠진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