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요즘 어떤 감정들과 살고 있나요
'불안'의 화가, 뭉크. 무엇에 대한 불안인지는 알 수 없다. 추측만으로 그 말을 얼버무리기에는 벽이 너무 높다. 어쩌면 낮을지도 모른다. 이 언어에는 그 뿌리 끝에 '두려움'이 묻어 있는 것 같아서, 그 언덕을 오르면 발밑이 슬픔의 구름으로 뭉글거리는 게 느껴질 뿐이다.
지난여름에 본 <뭉크 전시회>가 생각난다. 뭉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전시 공간에 비해 사람이 넘쳐났다. 좁구나. 물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MOMA 미술관에서도 관람객이 많아 놀랐지만, 다행히 공간이 넓어 답답하지는 않았는데...
몇 시에 오면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하고 안내자에게 물어보니 관람객 시간제한 웨이팅에 대한 불평이 넘쳐서 모두 입장을 시켰다는 말에, 오늘은 대충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는 시간도 그림 감상의 하나인데, 기다리면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것도 그림을 사랑하는 모습이련만, 기다리지 않는구나. 모두들 바빠서 그렇겠지 하면서도 씁쓸했다.
어차피 그런 상황이니 오늘은 열 점만 제대로 보자! 그 중 세 점이라도 그 분이 오셨으면 하고 바랐다. 재미있는 건 오슬로의 '뭉크 갤러리'에서도 못 본 '절규'를 여기에서 보았다는 사실이다. 늘 세계로 돌아다니느라 바쁜 이 존재와 <우울>에 관한 일련의 작품들을 접견한 것만으로도 됐다.
이 두 작품의 배경이 붉은 선으로 그려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울 안에는 저런 '붉은 피'가, 뜨거운 흐름이 있구나. 가슴 안으로 머릿속으로 무작정, 마구 침입하는 폭발적 감정들이 터지고 있구나. 그러다 소리가 되었구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외침이.
<생클루의 밤>의 창문처럼 작품들 속 '창문'은 그의 우울의 경계를 표현한 장면인가. 그의 예민한 촉수는 창문 너머의 세상으로까지 닿느라 지친 것 같다. 공기 안에 불안이 흘러 다니고, 그 밤은 불면이 대신 서 있다. 예술가의 품안에 달라붙어 있는 숙명적인 말, 불안. 내가 불안을 손잡고 있을 때, 불안은 등 뒤에서 내 그림자를 만진다.
집으로 돌아와 <나를 안아주는 그림 나를 치유하는 미술>을 꺼냈다. 내가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힘들었을 때 도움을 준 책이다. 사람에게서 못 받은 위로를 이 책에서 받았다. 세상에나 책에 그런 힘이 있다니... 새삼 다시 깨달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뭐라고 썼었나. 다양한 그림을 심리적으로 설명한 책으로, 마음이 지친 이들을 위한 미술처방전이라는 주제를 안고 있다. 작가가 묻는다.
"당신은 요즘 어떤 감정들과 살고 있나요?"
행복하다, 화난다, 무기력하다, 지친다, 정신없다, 허무하다, 우울하다, 슬프다...
무슨 감정을 손에 쥐었든 간에 가슴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는 말에 나는 '뭉크의 우울'을 집어 든다. 비명까지는 아닌. 그 멜랑콜리하고 화사한 우울을.
차가운 쇼비뇽 블랑에, 초록의 정원을 바라보며 헨델의 'Passagalia'를 듣는 책.
◆이경은 주요 약력
△서울 출생 △계간수필(1998) 등단 △수필집 '내 안의 길' '가만히 기린을 바라보았다' '주름' 외 8권. △그 중 수필 작법집 '이경은의 글쓰기 강의노트', 포토에세이 '그림자도 이야기를 한다', 독서 에세이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 △디카 에세이집 '푸른 방의 추억들' △수필극 '튕' △제43회 조연현문학상(한국문협 주관), 한국문학백년상(한국문협 주관), 율목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숙명문학상 등 수상 △현재 방송작가, 클래식 음악 극작가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