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내린 날, 자하문로 서촌 길을 걷고 있었다. 대낮인데도 쏟아지는 눈발에 가리어 북악의 영봉이 보이지 않는다. 눈 속으로 눈이 떨어져서 녹는다. 차가웠다. 휘휘 흩날리는 눈송이가 오래된 이 동네에 살다가 떠난 이들의 혼백처럼 문득 느껴졌다. 참말로 그럴지도 모르지. 기이한 기시감에 상기된 채로 길을 걸었다.
서촌은 해가 넘어가는 지대. 옛사람들이 서산西山이라 부른 인왕산 밑 마을이다. 주산인 북악 아래 조선왕조의 법궁이 있는 경복궁 서쪽의 동네. 효자동과 청운동, 체부동을 비롯하여 통인, 궁정, 누하동 등 십여 개나 되는 동들이 맞물려 있어 어느 골목은 들어갈 때와 나왔을 때 동 이름이 달라져서 어리둥절했었다.
권부인 청와대로 하여 개발권에서 멀어져 아직도 미로처럼 엉킨 골목들에는 옛 잔재가 소복하다. 물정이 상전벽해 되었는데도 돌변한 세상을 등지기라도 한 듯이 상흔처럼 박혀 있는 작고 허름한 세월의 파편들.
이 동네를 걸을 때면 오토메이션이 작동되어 내 발걸음은 비좁은 골목길로 빨려 들어가 배회하곤 했다. 예전에 여기 살았었던 사람처럼 짙은 향수에 이끌리어 허물어져 가는 기와집을 넋을 놓고 쳐다보기도 하고, 또 구한말 선교사가 세운 낡은 교회당의 담벼락에다 얼굴을 갖다 대보기도 했다. 아아, 이 정도의 골목길이면 가마가 드나들 수 있었겠군, 그렇게 회억 속 상념의 나래를 펼쳐보면서.
궁궐 담과 경계를 나눈 이 동네는 건국 초, 중기까지만 해도 왕족이 살은 궁가와 권문세가의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이 즐비한 세거지였다. 태조 이성계 아들들, 특히 다섯째 태종 이방원의 솟을대문 집이 이 근방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저만치에 석판 표지판이 있는 걸 보면.
피울음 같은 상흔을 새기고 막이 내린 2024년의 상심을 밀어놓은 채 다시금 열린 새해. 작년에 세상을 뜬 이들은 더는 볼 수가 없는 새해의 태양이 떠올랐다, 하건만 눈보라에 가린 부연 시야처럼 시대의 현실은 암울하다. 삶은 연습이 불허된 일회성의 실존일진대 현실의 무대가 하 이리도 수상하니.
바깥세상은 대명천지건만 나는 종종 이 현란한 거리에서 길을 잃는다. 닳아빠진 내 안의 회로가 미로로 빨려들기 때문이다. 거죽이 벗겨져 나간 자리에 돋은 생살을 만지기가 때로 두려웠다. 빛을 잃은 시대, 온기가 사그라든 막장의 암흑 속, 내 안의 무명이 내 두 눈과 심장을 얼어붙게 한다.
산수 수려한 인왕산 수성계곡은 도성 안의 빼어난 명승지였다. 송석원, 청풍계, 필운대를 품은 서촌에는 왕손들의 궁방이 즐비했고, 유유자적한 무릉도원이었으며 궁에서 폐출된 늙은 궁인의 거처가 속속 박혀 있었다, 제아무리 큰 총애를 받았을지언정 임금이 승하하면 궐을 나와 죄인 팔자로 살아가야만 했던 후궁들이 머물디 떠난 절간과 처소가 있었고.
조선조 중기쯤부턴 풍류에 눈을 뜬 중인 그룹이 풍광을 찾아서 모여들어 예술의 꽃을 피운 위항문학의 근거지기도 하다. 민족의 빛이 사멸한 20세기 암울했던 식민지 치하의 경성시대. 이른바 일그러진 유토피아 패러다임을 추구한 아티스트들이 속속 여기 서촌에다 둥지를 틀었다.
총독부 관사와 친일파 저택이 줄지어 위용을 뽐내었던 서촌. 두고두고 매국노의 대명사가 된 윤덕영은 인왕산 밑 옥인동에 2만 평의 아방궁을 지었다. 황금과 대리석, 옥을 처바른 으리으리한 이 양옥은 속칭 벽수산장이라 불리었다. 이백 평이나 되는 연못을 파놓고 희희낙락 뱃놀이하며 매국의 대가인 세도와 부귀영화를 그는 아마도 여한 없이 누렸을 것이다. 비단 윤덕영뿐이겠는가. 풍광 수려한 옥인동 일대는 거의 이완용이 사들인 개인 영지나 다름없었다니 말이다.
서촌의 골목길 구석구석엔 노천명을 비롯하여 나혜석, 염상섭, 현진건 등의 작가가 살은 기록과 아방가르드 문학의 대표주자였던 시인 이상의 집터 일부분이 아직도 잔재한다. 이광수, 천경자, 이중섭, 박노수 등 거장들의 흔적이 이 거리, 저 구석 등지에 묻어 있다.
도가적 화풍과 미감을 선보이며 생전의 박노수 화백이 사십 년간이나 살았고 회화 작품을 남긴 옥인동 박노수 미술관도 실은 윤덕영이 시집간 딸을 위해 지어준 집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대표적인 절충식 문화주택으로 벽수산장 터 일부였다는 이 가옥에서 손수 정원을 다듬고 흙냄새를 맡으며 박노수는 작품 구상에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왕가로부터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예술에 눈 밝은 여항인과 20세기 이후의 현대 작가들을 아울러준 인왕산 자락. 그 정기를 품은 서촌은 가히 서울 문학과 예술의 1번지라 할 만하다.
역사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 거리에 눈이 휘몰아친다. 충녕대군이었던 세종대왕이 걸어가고, 이완용이 걸었으며 이중섭이 물감을 감싸 안고 걸어갔던 길. 역사의 가쁜 호흡처럼 눈보라 흩날리는 이 오래된 노상에 내 작은 발자국이 찍힌다. 가없는 신화가 부연 눈발 되어 흩날리는 날, 난무한 빛에 시름을 앓다 백태가 낀 세상의 이 길을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다. 오늘도 광화문에선 난세의 데자뷰 같은 함성이 울려온다. 환청처럼 아득히. 혼돈 그 너머에는 무엇이 우릴 또 기다리고 있는가.
◆안윤자 주요 약력
△충남 공주 출생 △1991년 <월간문학> 등단 △수필집 '벨라뎃다의 노래' '사대문 밖 마을', 시집 '무명 시인에게', 역사 장편소설 '구름재의 집' △가톨릭평화방송 평화신문공모 대상(2020)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