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적 논쟁은 이제 그만… 우리기술로 만들어낸 CG 놀라워
'내러티브의 고급화' 숙제 풀면 심형래 감독의 미래는 밝다

모처럼 극장에 다녀왔다. 최근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고 개봉 11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한 심형래 감독의 SF영화 ‘디 워’를 보기 위해서다.

사실 괴수 SF영화를 좋아하지 않아 개봉 전부터 이 영화가 화제인 것은 알았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우연하게 MBC TV의 시사 프로그램 <100분 토론>을 보게 되면서 생각이 변했다. 패널들의 논쟁이 뜨거워 슬금슬금 다가오던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일단 왜 이렇게 패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지 궁금했고 프로그램 게시판에 올라오는 2만개가 넘는 네티즌의 댓글 또한 범상치 않았다.

한 편의 영화 ‘디 워’가 스크린을 넘어 사회문화적 충돌을 빚게 할 만큼 새로운 문화흐름을 만들고 있다. 사실 <100분 토론>은 이 논쟁의 시작이 아닌 하이라이트다.

그동안 ‘디 워’에 대해 혹평을 남긴 평론가들과 기자들은 네티즌들의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문제는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보단 ‘디지털 테러’로 우려되는 무차별 인신공격이다. “그동안 심형래 감독에게 배타적이던 충무로가 ‘심형래 죽이기’에 나섰다”는 음모론까지 불거져 나왔다.

일부이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맹목적 지지, 반대 입장에 선 사람들에 대한 살벌한 공격도 점입가경이다. 심 감독에게 쏟아진 찬사와 비판 모두가 걱정스러운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영화를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영화를 본 결론은? ‘그렇게까지 혹평할 영화인가?’이다.

‘디 워’는 100% 독창적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지루하진 않았다. 솔직히 전문가그룹의 혹평세례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 않았다. 그저 수준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더 컸는데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그 중심에는 한국적인 정서의 소재 차용과 수준급의 컴퓨터 그래픽이 한몫 단단히 했다. 우선 우리 기술로 이 정도의 컴퓨터그래픽을 이루어 냈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을 보고 그 자연스럽고 고급스런 컴퓨터그래픽을 뽐내는 화면에 압도되어 참 부러웠는데 앞으로 ‘내러티브의 고급화’라는 숙제만 해결한다면 심형래 감독의 장래는 아주 밝다는 느낌이 왔다.

소재자체가 우리나라의 전설적 대상인 ‘용’, ‘이무기’인지라 정서적인 교감도 용이했다. 하지만 혹 일부 지식인에게는 흔하고 허무맹랑한 전설적 대상을 주인공으로 적용한 자체가 유치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익숙한 소재에 관객 대부분은 친숙하고 호의적인 분위기였다. 어쩌면 할리우드를 능가할만한 CG의 기술에다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와 소재를 도입한 ‘디 워’의 구성은 비난과 혹평의 대상이 되기엔 억울한 표정들이었다.

심형래 감독은 앞으로 세계적 주류 장르인 CG 분야에서 우리 영화가 경쟁력이 있음을 알리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 같아 가벼운 흥분까지 느껴졌다. 방학 중이라 초등학생 관객들이 참 많았다. 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너무 재미있어요’, ‘짱이에요’ 칭찬 일색이다.

그렇담 어른들은? ‘자부심이 느껴지는 볼만한 영화’였고 ‘정말 입장료 7천원이 아깝지 않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많이들 악평했던 엔딩부분의 아리랑 음악 삽입이 억지스럽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실제 영화는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일부 관객들은 박수까지 쳤다.

‘눈물이 찔끔 났다’고 하는 관객도 있었다. 이건 팔이 안으로 굽는 면이 없지 않지만 누구의 말처럼 짜증날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다만 엔딩 장면에서 심형래 감독의 등장과 이어진 글은 사족 같이 느껴져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무시당하고 좌절한 세월 속에 쌓인 피맺힌 한을 그렇게라도 풀고 싶었구나 이해하니 그리 거북스럽지 않았다. 실제로 관객 모두는 그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 엔딩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양극적인 논쟁의 진짜 문제는 내용보단 태도에 있다. 토론이라 하면 서로의 의견개진과 주장을 들어주는 미덕이 기본인데 지금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가 다분하다.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여론몰이가 횡행하고 획일적인 그 논리와 감성에 어긋나면 가차 없이 비판이 가해지는 폭력이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존재한다.

다양성이 부족해서다. 대중은 주목받는 주류 장르로의 편중이 심한 편이다. 비단 영화뿐일까? 뭐가 좀 잘 된다 싶으면 무슨 분야건 죄다 우루루 한꺼번에 몰리는 것이 사실 아닌가. 우리 사회도 이젠 각양각색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누구나 자신의 블로그나 소속된 카페의 게시판에 영화나 공연에 대한 리뷰 혹은 후기를 올리는 것이 일반화되어있다. 이제 몇몇 평론가들의 평론에 대중이 좌지우지되는 세상은 더 이상 아니다.

이미 일반인들도 반 평론가란 이야기다. 사실 영화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정도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또한 장르의 호불호는 각자의 기호인데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라는 식은 논조는 곤란하지 않을까! 수 백 만 명이 관람한 흥행영화는 완성도를 떠나 동시대 대중이 공감하는 정서적인 무엇이 있음도 인정해야 된다.

이제 소모적인 논쟁보단 이 열기가 위기론까지 대두되는 한국영화 소생의 불씨가 되어야 한다.

14일 ‘디 워’는 미국전역에서 개봉되었다. 미국흥행여부가 세계 배급여부에 중요 기준이라니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가능성도 많다. 우리 자본, 우리 기술로 이룩한 영화 ‘디 워’는 미국 땅에서 성공할 요인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막을 극도로 싫어하는 미국인들에게 대사의 상당부분이 영어인 점도 그렇고 부족하지만 주인공 남녀의 사랑도 있다. 무엇보다 박진감 넘치는 컴퓨터 그래픽 액션장면이 넘쳐나고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국인이 좋아할 요소를 빠짐없이 준비한 종합 선물세트 같은 영화다. 이 점에선 심형래 감독이 미국시장을 겨냥해 철저하게 연구하고 준비한 것 같다.

과연 이전 한국영화 중 이 정도의 컴퓨터 그래픽 괴수영화가 있었던가? 없었다. 관객 대다수가 왜 ‘심형래 감독은 한국영화의 희망’이라 했는지 영화를 보고 나니 알 것 같다.

심 감독은 “14살 정도 된 교포 아이가 ‘아저씨 파이팅’하며 자기 미국 친구 3명을 데리고 영화를 보겠다고 하는 소리를 했을 때 눈물이 나왔다”며 “‘디 워’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남미에 나가있는 교포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단 심형래의 감성 홍보 마케팅이 다소 오버스럽긴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힘겨운 세월을 딛고 세계적 수준의 SF영화를 구현한 그에게 영화에 대한 해부보단 우선 박수부터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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