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교수 "엘리트주의, 약육강식 논리, 국가주의적 속성 등 엿보여"
"민주주의 이끌었던 이들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결과일수도" 분석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조롱하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게시글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주목을 끌고 있다.(사진은 일베를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희화화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내 게시글 10만여개를 수집해 일베 이용자들의 논의 구조를 분석한 결과가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9일 5·18 기념재단이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 제34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에서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이버 공론장에서의 5·18 담론과 그 변화: 일베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란 논문을 발표했다.

정 교수는 201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일베 정치게시판에 오른 게시물 10만1,116건을 수집해 단어를 분석했다. 정 교수는 각 게시글에 포함된 어휘의 연관 빈도를 계산해 객관적 수치로 표현하는 연구 기법을 택했고, 이 중 가장 많은 추천과 댓글을 받은 게시물을 선정해 그 내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일베에서 5·18은 광주 시민으로 이뤄진 시위대가 총기 무장해 국가를 대리한 계엄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폭동으로 이해됐다. 정 교수는 일베 이용자들이 공감의 대상을 희생자가 아닌 진압 주체(공수부대)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또 추천 수가 많은 게시물을 살펴보면 이들은 5·18 유공자에 대한 보상을 문제 삼는 등 특유의 '정의감'을 보이고 있는데 일베 이용자들은 설사 5·18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더라도 1980, 199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끝나 도덕적 부채의 시효가 끝났다는 논리를 펼쳤다.

일베 이용자들은 광주를 적으로 명시하고 외국으로 취급하는 등 전라도에 대한 깊은 혐오와 냉소를 보이고, 5·18 옹호론자를 진보 진영으로 규정하고, '5·18 북한개입설'을 지지한다. 그리고 본인들은 잘못된 현대사를 바로잡는 '민주투사'로 격상한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민중은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는 엘리트주의와 20대의 내면화된 약육강식 논리, 국가주의적 속성 등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를 일베만의 현상으로 치부하는 시각은 경계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모든 이들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며 "일베를 '루저들의 집합'이나 '정신병자들'로 비하하며 타자화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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