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최근 문화재청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집 '청구영언'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우리나라 노래’라는 뜻의 제목에 걸맞게 청구영언에는 고려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전승된 노랫말 580수가 체계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30일 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청구영언을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보물의 지정은 문화재보호법을 근거로 한다.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를 말한다(법 제2조 제1항). 문화재청장은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물과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 

국보나 보물이 국가지정문화재라면 이에 해당되지 않지만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한 문화재는 국가등록문화재로 보호하고 있다.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서 역사, 문화, 예술, 사회, 경제, 종교, 생활 등 각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또는 교육적 가치가 있는 것,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으며, 그 가치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 기술 발전 또는 예술적 사조 등 그 시대를 반영하거나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등록기준을 따른다(시행규칙 제34조 제1항).

그렇다면 문화재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영화 작품도 문화재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현재 국가등록문화재에는 우리 고전 영화 8편이 등록되어 있다. 2005년 발굴된 미몽(1936)을 필두로, 자유만세(1946), 검사와 여선생(1948), 마음의 고향(1949), 피아골(1955), 자유부인(1956), 시집가는 날(일명: 맹진사댁 경사)(1956) 이상 7편이 영화로서는 최초로 등록문화재에 일괄 그 이름을 올렸다. 이후 무성영화인 1934년작 ‘청춘의 십자로’가 추가 발굴되면서 뒤이어 국가등록문화재가 됐다.

이들 영화가 문화재로 등록된 사유는 작품의 영화사적 가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서울의 옛모습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희귀자료로서의 가치를 아울러 인정받은 결과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성영화 ‘미몽(죽음의 자장가)’이 보여주는 1930년대 서울은 예상과는 사뭇 달라 충격마저 느껴진다. 첫 장면에서 마당의 화초를 비추던 카메라는 새가 들어있는 조롱을 향한다. 곧이어 등장한 주인공 애순은 남편에게 자신은 ‘조롱 안에 든 새’가 아니라고 외친다. 가출 끝에 외간 남자와 동거를 감행하는 애순의 모습은 막연히 그려온 1930년대 어머니상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의 결말은 조롱을 벗어나버린 애순을 응징한다. 애순을 태우고 가던 택시가 그녀의 딸을 치게 되고 이에 애순은 괴로움에 자살을 택하는 것이다. 영화는 가정을 버린 여성을 결코 용서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 결말 전까지 여성은 욕망의 주체로서 활보한다. 그 파격의 정도는 20년 후 교수 부인의 바람을 그려내 큰 화제를 일으킨 ‘자유부인’을 가히 뛰어넘는다.  

영화 '미몽'은 영화사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학술적 가치가 남다른 '텍스트'임이 분명하다. 또한 90년 전 서울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진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매력을 가진 미몽의 전편을 실제 만나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만남은 분명히 기존과는 전혀 다른 낯선 영화적 체험이 될 것인 동시에 우리 영화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를 관객이 직접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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