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겸임교수)
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겸임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화창한 4월, 전국 각지의 벚꽃 명소가 인파로 들썩였다. 코로나로 무려 3년만에 재개장돼서인지 올해 벚꽃놀이의 열기는 유난히 뜨거운 듯하다.

많은 명소들 가운데 유독 붐비는 곳을 꼽자면 단연 서울 잠실 석촌호수 인근이 꼽힐 것이다. 하지만 올해 잠실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며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은 비단 벚꽃만이 아니었다. 롯데월드타워 월드파크 잔디관장에 전시되어 있는 15미터에 달하는 특대형 핑크색 곰인형 ‘벨리곰’이 인기몰이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전시 오픈 이후 열흘 동안 벨리곰을 찾은 방문객이 무려 165만명에 이를 정도다.  

벨리곰은 이미 수년 전에 롯데홈쇼핑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기업 캐릭터로 이번 공공전시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상업적인 색채를 내세우기보다는 스토리 있는 캐릭터 구현에 공을 들인 것이 성공 요인으로 분석된다.

롯데그룹은 우리나라 캐릭터 소송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할 만큼 캐릭터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롯데월드의 유명 캐릭터 '롯티'가 그 역사적 분쟁의 주인공이다.

롯데월드는 1988년 개장에 앞서 동물을 주제로 한 캐릭터 제작을 기획했다. 캐릭터 공모에 응모한 10명 가운데 너구리를 주제로 한 롯티 캐릭터를 제작한 작가가 당선된다. 이와 관련해 롯티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 등 모든 권리가 롯데월드에 양도되고, 롯데월드는 작가에게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수정·요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캐릭터 제작 계약이 체결됐다.

그런데 수차례의 수정 후에도 롯데월드가 너구리의 특징이 더 잘 나타나도록 롯티 얼굴을 수정해달라고 하자 작가는 이를 거절했다. 이후 롯데월드는 제3자를 통해 캐릭터 디자인을 변경해 최종적으로 지금의 롯티 캐릭터를 확정했다.  작가는 이에 대해 롯데월드가 자신의 롯티 디자인을 무단으로 변경함으로써 작가의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였다며 법원에 저작물사용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작가의 가처분신청은 받아들여져 롯데월드는 롯티 캐릭터를 잠정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가처분신청에 대한 이의소송이 제기돼 대법원까지 가기에 이르렀다.

대법원은 캐릭터와 같은 응용미술작품 역시 저작권이 존중돼야 하며, 그중 저작인격권은 계약에 의해서도 양도될 수 없음을 분명히했다. 롯티의 저작인격권이 롯데월드가 아니라 작가에게 있다는 뜻이다. 다만 롯티 캐릭터는 순수미술작품과 달리 기업활동을 위해 변경될 필요성이 있고, 계약에 의해 롯데월드에게 캐릭터 변경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작가가 더 이상의 수정을 거절한 사실이 있음을 이유로 동일성유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봐 롯티의 디자인 변경이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대법원 92다31309 판결). 이로써 롯티는 지금까지 무탈하게 롯데월드의 캐릭터로 맹활약해오고 있다.

다시 벨리곰으로 돌아와서, 거대한 핑크 곰 이전에는 벚꽃 시즌을 대표하는 곰돌이 주자는 따로 있었다. 일본의 캐릭터 회사 산엑스의 캐릭터 ‘리락쿠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넷플릭스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리락쿠마와 가오루씨'를 오리지널 시리즈로 내놓았다. 평범한 회사원 가오루와 그녀의 룸메이트가 된 리락쿠마 일당의 잔잔한 일상을 담은 '리락쿠마와 가오루씨'는 그 첫 화에서 벚꽃을 아예 전면에 내세운다.

올봄 미처 벚꽃명소를 찾지 못해 아쉬운 이가 있다면  '리락쿠마와 가오루씨'를 만나보길 바란다. 리락쿠마와 함께라면 못다한 벚꽃놀이의 기쁨을 지금이라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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