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 관람을 즐길 수 있는 날이 다시 왔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상영관 내 취식제한 조치가 지난 25일부터 해제된 덕분이다.
달콤 짭짜름한 팝콘은 언제부터 이처럼 영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일까? 그 인연은 고전 할리우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는 1905년부터 입장료가 5센트(니클)인 '니클로디언'이라는 영화 전용 극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작고 조악한 극장들은 중산층뿐 아니라 노동계층과 빈곤층까지 영화 관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지만 1910년대에 등장한 '영화궁전(movie palace)'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영화궁전은 극장인 동시에 최고의 여가시설이었다. 미국인들이 영화궁전에서 여가를 보내게 되면서 영화는 미국인에게 최고의 오락이자 일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영화궁전은 분위기 있는 실내 장식, 깍듯한 안내원, 무료 탁아서비스와 오르간 연주가 흐르는 로비로 무장한 채 궁전 같은 화려함과 우아함을 뽐냈다.
하지만 이곳의 주된 수요층은 상류층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궁전은 미국 대중들이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호사스러운 여가생활의 즐거움을 동등하게 누리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6000석에 달하는 좌석수만 보더라도 영화궁전이 소수의 상류층이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공간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영화궁전에서의 대중적 체험이 곧 미국 영화를 국민 오락으로 만들었으며 고전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영화궁전은 원래 관객들이 팝콘 같은 외부 음식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금했다. 화려한 실내에 팝콘이 떨어지거나 냄새가 배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 영화관은 내부에 팝콘 판매대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1950년대에는 대부분의 영화관에 팝콘 냄새가 퍼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화관들은 티켓 가격을 낮추어 관객들을 끌어 모은 다음 팝콘 판매로 보다 많은 수익을 내는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영화는 팝콘과 함께’라는 공식은 이때 이미 성립된 것이다.
혹시 영화궁전을 직접 확인해보길 원하는 이가 있다면 1952년에 만들어진 ‘사랑은 비를 타고’를 권하고 싶다. 영화는 주인공 진 켈리가 극중 출연한 무성영화의 시사회장에서 시작되는데 그곳이 바로 유명한 영화궁전인 차이니즈 시어터이다. 이 작품은 고전 할리우드 장르 시스템의 대명사인 뮤지컬 영화이면서 내용적으로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격변의 1920년대 할리우드를 그린 자기반영적 작품이다. 이에 영화궁전으로 대표되는 상영 시스템 뿐만 아니라 고전 할리우드의 제작 시스템의 일면까지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우리나라 극장에서도 팝콘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한때 극장에서는 관객들에게 매점에서 산 팝콘만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외부 음식의 취식은 금하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이러한 극장의 행위가 공정거래법에 반하는 불공정행위라고 보아 시정권고를 내린 바 있다. 그 덕에 극장 내 외부 음식의 반입이 폭넓게 허용됐지만 이렇게 달라진 방침이 일반 관객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랜만에 영화관 취식이 허용된 만큼 모처럼 팝콘 한통을 들고서 영화 관람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고전 할리우드에서나 지금 이곳 한국에서나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이란 여전히 최고의 여가생활 중 하나이며, 팝콘은 그 여정에 최고의 동반자임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