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얼마 전 한 언론 매체에서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2021년도 판결 7건을 선정해 발표했다. 그 가운데서도 시·청각 장애인 4명이 2016년 2월 멀티플렉스 극장을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소송의 항소심 판결이 눈길을 끈다.
이 소송은 피고 멀티플렉스들이 영화를 상영하면서 시각, 청각 장애인인 원고들에게 화면해설이나 자막 또는 그 수신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았고 영화 관련 정보를 신체적 여건과 관계 없이 접근성이 보장되는 웹사이트에서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차별행위를 했으므로 이를 시정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비장애인과 동등한 영화 관람권을 보장받기 위한 법정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1심은 멀티플렉스가 원고들을 형식상 불리하게 대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영화관람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봐야 하고,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간접차별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피고들이 항소했고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은 멀티플렉스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원고들에게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한 수준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영화의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함에도 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1항 제3호의 '정당한 편의제공의 거부' 및 같은 법 제4조 제1항 제2호의 '간접차별'에 해당한다고 봤다.
폐쇄형 상영방식으로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필요한 화면해설 수신기기, 자막 수신기기,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송출해주는 서버 등의 장비를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는데도 이를 제공하지 않는 것 또한 ‘정당한 편의제공의 거부'에 해당하므로, 상영 중인 영화를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화면해설이나 자막 또는 그 수신기기 등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좌석 수가 300석 이상이거나 멀티플렉스 지점의 모든 상영관 총 좌석 수가 300석이 넘는 경우 1개 이상의 상영관에서 총 상영 횟수의 3%에 해당하는 횟수만큼 개방형 또는 폐쇄형을 선택해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것으로 그 실행 범위에 제한을 두었다. 이에 대해 원고, 피고 양측이 상고하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판결문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난 달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삼관왕을 차지한 영화 <코다>가 떠올랐다. 영화 제목인 코다(children of deaf adult)란,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장애 없는 자녀를 뜻하는 용어로 주인공 루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루비는 가족 중 유일하게 귀가 들리기에 가족들과 더불어 조금은 다른 세상을 살아가던 중 자신의 꿈에 눈을 뜨게 된다. 청각장애인 가족 역할에는 실제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캐스팅되었는데, 아버지 역의 트로이 코처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할 만큼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당시 아카데미의 시상자로 나선 윤여정 배우가 수어로 트로이 코처에게 축하를 건네며 영화만큼이나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영화가 주는 감동의 폭은 넓고 그 결은 다양하다.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그린영화 ‘코다’를 영화관에서 관람할 수 없다면 어떠할까? 무엇보다 법은 명문으로 장애인이 문화ㆍ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들에게 영화 관람을 위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곧 법률상 의무라는 사실이 대법원에서도 확인되기를 바라본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