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박현영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은 국내를 넘어 해외 항공업계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 글로벌 이슈 가운데 하나다. 2020년 11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본격 돌입하자 국내에선 세계 7위 규모의 초대형 항공사가 탄생할 것이란 기대감도 컸지만,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으로 초대형 항공사 출현을 반기지 않는 해외 경쟁당국에 쉽게 승인을 내주지 않아도 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항공산업은 연관산업을 포함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3.4%(54조원)을 차지하며, 연관 일자리만 해도 84만개에 달하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국내 항공산업도 유례없는 어려움에 빠졌고, 국내 인구와 경제 규모를 볼 때 국적 항공사를 2개이상 운영하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도 상당했다.
현재 2개 이상의 대형항공사를 운영하는 국가는 인구 1억명 이상이면서 국내선 항공시장 규모가 자국 항공시장의 50% 이상인 국가 또는 GDP 규모가 큰 국가들이다. 자국 내 항공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기본적 환경을 갖춘 경우에만 2개 이상의 국적항공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현재 대한민국은 국적 항공사 2개를 유지할만한 환경을 갖추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대한항공의 일부 노선의 독점이 우려되는 만큼 해당 노선을 다른 항공사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대한항공 항공기가 특정시간에 공항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인 ‘슬롯’을 반납하라는 것.
이러한 공정위 결정으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합병 시너지를 다소 잃었다는 평가와 함께 초대형 항공사 출현을 반기지 않는 해외 경쟁당국에서 아직까지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2020년 기업결합 결정 당시 국제선 여객 기준 대한항공은 18위, 아시아나항공은 32위 수준이었지만 합병할 경우 세계 7위 규모가 돼 독과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는 현재 국내를 비롯해 총 14개 국가 가운데 8개 국가의 승인을 받은 상태다. 심사가 진행 중인 6개 국가 가운데 필수 신고 국가는 미국, 중국, EU, 일본이며, 임의 신고 국가는 영국과 호주다. 해외 경쟁당국 가운데 한 곳이라도 불승인 결정을 내리면 대한항공의 인수는 불발된다.
가장 큰 난관은 EU의 기업결합 승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EU는 다른 경쟁당국과 비교해 독과점에 대해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EU는 최근 캐나다 1위 에어캐나다와 3위 에어트랜셋 항공사의 합병과 자국이나 다름없는 스페인 1위 항공사 IAG와 3위 에어유로파 합병을 무산시킨 바 있다.
미국 역시 2위 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이 대한항공 기업결합에 문제를 제기하며 견제에 들어갔다. 유나이티드항공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미주 노선과 동남아시아 경유 노선 등에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인 유나이티드 항공은 기업합병으로 인한 회원사 이탈에 불편해 하고 있다. 반면 대한항공과 같은 ‘스카이팀’인 미국 델타항공은 합병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 않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교수는 “해외 경쟁당국은 자국 항공사 피해를 막고 유리한 조건을 내걸기 위해 심사를 지연시키고 있다”면서 “경쟁당국 역시 자국 내에서 기업결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합병을 불허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이 교수는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 결정이 해외 경쟁당국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안타깝다”며 “우리 공정위가 대한항공 독과점을 견제한 만큼, 경쟁당국도 제재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 셈”이라고 우려했다.
소비자 권익을 보호해야 할 공정위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자국 기업의 국제적인 경쟁성도 감안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적이다.
현재 미국, EU, 영국, 호주 경쟁당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 전과 유사한 경쟁환경을 유지시킬 수 있도록 신규 항공사의 진입을 요구하고 있다. 초대형 항공사를 견제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한항공은 국내·외 항공사를 신규 항공사로 유치하기 위해 최고 경영진이 직접 해외 현지를 방문, 협력관계가 없던 경쟁사들에게까지 신규 진입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에 다수의 항공사들이 신규 시장 진입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으며, 이에 조만간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대한항공은 기대하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각국 경쟁당국의 심사 진행은 절차에 따라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은 각국 경쟁당국으로부터 조속한 기업결합 승인을 받기 위해 5개 팀 100여명으로 구성된 국가별 전담 전문가 그룹을 운영하며 맞춤형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로펌 등 기업결합 관련 전문 기관 및 기업 16개와 계약해 대응하고 있다. 지난 3월까지 기업결합심사 관련 자문사 선임비용만 350여억원 수준에 달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M&A에 대한 자국 우선주의 기조라는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조금 더디지만 여전히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혼신의 힘을 다 해 각국 경쟁당국의 요청에 적극 협조·승인을 이끌어내는 한편 굳건히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통합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국내 항공산업을 속히 정상화 시키고, 관련 일자리를 안정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며 "대형 항공사라는 이점은 신규 취항지 증가 및 화물터미널 통합으로 국내 항공물류 흐름까지 개선해 국민 편의까지 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