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흉상에서 오른쪽), 조현민 (주)한진 사장(왼쪽)과 개막식에 참석한 외부 인사들이 흉상 제막 행사 후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한진그룹 제공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흉상에서 오른쪽), 조현민 (주)한진 사장(왼쪽)과 개막식에 참석한 외부 인사들이 흉상 제막 행사 후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한진그룹 제공

[데일리한국 주현태 기자] “평창 유치단은 이번 경쟁에서 여유가 있나 보다”

지난 2019년 4월 하늘로 떠난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사진 사랑은 각별했다. 국내외 출장을 떠나는 조 선대회장의 손에는 반드시 카메라가 들려있었고, 이같은 각별했던 사진 사랑은 때론 흥미로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19년 10월 당시, 세르비아 우리나라의 평창은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유럽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가 치열하게 3자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결전의 프리젠테이션 전날 당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었던 조 선대회장이 평소대로 주변의 풍광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외출을 했다.

프리젠테이션을 목전에 두고 머리를 맞대며 고심하던 경쟁국 위원들에게 조 선대회장의 여유로움은 부러움을 자아냈다는 후문이다.

7일 서울시 중구 서소문 소재 대한항공 빌딩 내 일우 스페이스에서 이러한 조 선대회장을 추모하는 ‘故 일우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이 열렸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특히 조 선대회장은 카메라 앵글을 바꾸면 똑같은 사물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고 믿었다. 관점을 변화로 기업의 혁신을 추구하는 ‘앵글경영론’이 그의 대표적 경영철학으로 자리잡은 이유다.

故 일우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 사진=주현태 기자
故 일우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 사진=주현태 기자

◇ 전문 사진작가 이상의 안목과 실력 갖춰

조 선대회장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 부친인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로 받은 것이 계기다. 조 선대회장은 부친과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부친이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사진 촬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진 촬영에 대한 꿈을 키웠다. 조 선대회장은 “부친이 선물해주신 카메라를 메고 세계를 여행하며 렌즈 속에 담아왔던 추억들이 아직도 가슴속에 선연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메라와 함께하는 조 선대회장의 여행은 업무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조 선대회장은 신규 시장 개척을 위해 미 취항지를 중심으로 해외의 많은 곳을 찾아 여행에 적합한 곳인지, 또 새로운 노선을 개설할만한 곳인지를 직접 확인했다.

故 일우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 프랑스 파리 '길'. 사진=주현태 기자
故 일우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 프랑스 파리 '길'. 사진=주현태 기자

조 선대회장은 2002년 10월 중국 양쯔강을 탐험하면서 쌴샤댐과 거대한 양쯔강 물줄기, 주변의 도시들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소회했다. 2002년 당시는 대한항공이 지난, 옌타이, 샤먼 등 중국 대륙에 공격적인 진출이 이뤄지는 시기였다. 조 선대회장은 당시 양쯔강에서 중국의 잠재력을 보았고, 어떤 방법으로 중국에 접근해야 할지도 깨달았다.

조 선대회장은 새로운 여행지를 좋아했다. 마음에 든다고 해서 한 곳을 여러 번 방문하기보다는 안 가본 곳,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 그래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여행지를 선호했다. 베트남의 하롱베이나 터키의 이스탄불, 중국의 황산 등은 여행을 통해 그 시장 잠재력을 간파하고 항공노선으로 개발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조 선대회장은 2011년 달력 첫 장에 “요즘 손자들을 보며 세상 사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나의 선친이 내 아들과 그랬듯이 나도 손자들과 함께 세상 구경 나설 날이 기다려집니다. 그때 카메라를 통해 보는 세상이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을 진정 알게 되겠지요”라고 적었다. 사진에 담긴 조 선대회장의 진심이 잘 담겨 있는 문구라는 평가다.

故 일우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 사진=주현태 기자
故 일우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 사진=주현태 기자

◇ 사진집까지 출간한 사진전문가

조 선대회장은 2009년 국내 및 해외 각지를 다니면서 틈틈이 촬영한 사진 중 대표작 124점과 이에 대한 해설을 260여 페이지에 담아낸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사진집에는 하늘에서 지상의 풍경을 담아낸 다양한 사진을 비롯해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 창공을 날아가는 새, 광활한 대지에 뻗은 길 등 글로벌 종합 물류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사진이 빼곡히 수록돼 있다.

특히 스위스 출장 중 알프스의 이국적인 겨울 풍경을 담아낸 ‘제네바에서 체르마트를 가는 길’을 비롯해 이집트 지혜와 미의 여신인 이니스를 모시는 아스완 필래(Philae) 신전의 회랑의 모습을 찍은 사진, 중앙아시아 위대한 정복자였던 티무르 왕조의 영묘인 누르 에미르의 모습을 광각렌즈로 담아낸 사진, 세계적인 화가 르누아르가 마지막 생애를 살았던 집 정원의 올리브 나무 숲을 평화로운 모습을 렌즈로 담아낸 작품에서는 사진에 대한 조 선대회장의 열정과 애착을 느낄 수 있다.

故 일우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 사진=주현태 기자
故 일우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 사진=주현태 기자

조 선대회장은 2009년 8월 사진에 대해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가진 재목이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유망한 사진가들의 든든한 후원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호를 딴 ‘일우(一宇) 사진상’을 제정하기도 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2010년 4월에는 서울 서소문 사옥 1층에 시민들을 위한 문화전시공간인 ‘일우 스페이스’를 개관했다. 이는 다양한 사진 및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서울 도심 속의 문화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작은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생전 조 선대회장은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한 손에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진을 단순한 취미활동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일로 바라보고 바쁜 업무속에서도 틈틈이 사진에 대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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