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가격인상에 정부 자제 요청까지
SPL·농심·hy 공장 안전사고로 '곤혹'
흡수합병·지배구조 변경 사업 재정비
[데일리한국 김보라 기자] 올해 식품업계는 가격인상을 빼놓을 수 없다. 고환율과 원부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또 공장 내 사고로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식품기업들은 대응책을 모색했고, 인수합병과 조직개편, 사업 다각화, 해외시장 진출 등을 통해 돌파구 찾기에 나섰다.
◇ 식품업계, 연초부터 연말까지 '가격 인상' 카드 꺼내
식품업계는 연초부터 제품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렸다. 각종 원부자재 가격이 상승한데다 고환율과 에너지 가격 상승 등 각종 경영비용의 상승이 원가에 반영됐다. 라면부터 우유, 과자 음료 등 모든 식품의 가격이 인상됐다.
hy와 동원F&B는 1월 1일부터 편의점에서 팔리는 유제품과 커피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hy는 야쿠르트 그랜드 280ml와 야쿠르트 그랜드 라이트 등을 기존 1300원에서 1400원으로 7.7% 올리며 가격 인상 신호탄을 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조사 대상인 가공식품 73개 품목 중 70개 품목이 지난해 대비 상승했다. 전년 동월 대비 10% 이상 오른 품목은 31개(42.5%)였다.
제품가격이 1년 전보다 10% 넘게 오른 품목은 1월 13개에서 4월 20개, 7월 25개, 10월 28개로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식용유가 전년 대비 43.3% 오르며 상승 폭이 가장 컸고, 밀가루(36.1%), 치즈(35.9%), 시리얼(29.1%) 등 10여개 항목이 물가상승률 20%를 웃돌았다.
이에 정부는 부당한 가격 인상에 대해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김정희 식품산업정책실장 주재로 주요 식품업체 대상 물가안정 간담회를 열고 일부 업체 가격 인상 움직임에 우려의 뜻을 표했다.
정부가 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한 횟수만 8차례에 달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곡물가격이나 환율 등은 다소 안정세를 찾아 내년에는 올해보다 가격인상 이슈는 덜 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환율이 영향을 주는 시차가 다소 다르기 때문에 내년 초까지 영향을 받는 업체들도 일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편…신사업·해외 진출 '신성장동력' 발굴
올해 식품업계는 인수합병과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자 경영 효율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직 재정비에 나선 것이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는 지난 7월 합병을 완료했다. 롯데제과가 존속 법인으로서 롯데푸드를 흡수합병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통합법인 '롯데제과 주식회사'는 식품업계 2위 규모로 올라서게 됐다.
롯데제과는 합병 직후 가장 먼저 중복 사업이었던 빙과 조직을 통합했다. 경영상 중복된 요소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롯데제과는 빙과 조직을 통합하며 빙과 시장 선두를 탈환했다. 또한 내수 중심이었던 롯데푸드는 롯데제과의 8개 글로벌 현지 법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해외 진출이 용이해졌다.
CJ제일제당은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지난달 FNT(Food&Nutrition Tech, 식품·영양 기술) 사업부문을 신설했다.
FNT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식품 분야에서 고부가가치 미래 사업으로 꼽히는 대체·배양 단백과 미래 식품 소재 등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현재 약 1조원 매출을 2025년 2조원 이상으로 키운다는 방침이이다.
동원산업은 동원엔터프라이즈와 합병을 마무리하고 동원그룹의 지주회사가 됐다. 이번 합병을 통해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자회사였던 동원F&B, 동원시스템즈를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동원산업은 앞으로 계열사별로 추진하는 신사업의 연착륙을 위해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고 과감한 투자를 실행해 시장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식품 유통 외에 2차 전지 등 계열사별 신사업 투자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오뚜기는 지난 10월 오뚜기라면지주와 오뚜기물류서비스지주를 흡수합병함으로서 상장회사인 조흥을 제외한 모든 관계회사를 100% 자회사로 재편해 지배구조 선진화 작업을 완료했다. 합병 완료를 통해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오뚜기를 지배하는 단순하고 명확한 지배구조 체제를 갖추게 됐다.
오뚜기의 기업지배구조 선진화 작업은 2017년에 오뚜기에스에프, 상미식품, 풍림피앤피의 물적분할과 2018년 상미식품지주, 풍림피엔피지주 흡수합병으로 시작됐다. 2021년에는 오뚜기라면를 물적분할하고, 올해 오뚜기라면지주와 오뚜기물류서비스지주의 흡수합병으로 완료됐다.
대상은 지난 10월 김치 브랜드 종가집을 종가(JONGGA)로 통합했다. 그동안 대상은 국내에서 김치 브랜드를 종가집으로 해외에서는 종가로 사용해왔다. 김치 브랜드를 통합해 국내외 시장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상은 MZ세대에서 김치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고 MZ세대를 신규 고객층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속도를 낼 방침이다.
◇제조 공장 안전사고에 사업종료·부분파업까지
식품기업의 잡음도 여느 해보다 많았다. 특히 제조공장에서의 사고로 안전관리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10월 15일 SPC그룹 계열사 SPL 평택 제빵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샌드위치 만드는 기계에 끼여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6일 후 허영인 SPC 그룹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열어 고개를 숙였다.
SPC는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즉각적인 산업안전보건진단 실시와 함께 향후 3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해 그룹 전반의 안전경영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했다.
식품 공장의 끼임 사고는 계속됐다. 지난 11월 2일엔 농심 부산 공장에서 야간 작업 중이던 20대 노동자가 라면 포장 전 냉각을 하는 리테이너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같은달 6일에는 hy의 유제품을 만드는 비락 대구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우유 박스를 세척실로 옮기는 리프트 설비에 끼여 사망했다.
고용노동부는 SPL 제빵 공장 사망사고를 계기로 지난 10월 24일부터 지난달 13일까지 식품제조업체 등 13만5000여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유해·위험 기계·기구의 자율점검 및 개선을 추진하기도 했다.
유업계는 푸르밀의 영업종료 사태 등 경영난을 비롯해 원유 가격 인상, 노사 문제 등 이슈가 잇따랐다.
푸르밀은 지난 10월 수년간 이어진 적자를 감내하지 못할 상황이라며 전사 메일을 통해 사업 종료와 정리 해고 통지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노사가 구조조정을 골자로 한 상생 방안에 협의하면서 사업종료 발표를 철회하고 가까스로 사업을 유지하기로 했다.
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면서 부분 파업에 돌입했던 서울우유협동조합 노조는 지난 12일 사측과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서울우유 노사는 부분파업에 들어간지 6일 만에 임금인상 등의 내용을 담은 잠정합의안을 내며 일단락됐다.
◇캐릭터빵·식물성 트렌드 맞춤 제품 출시
산업계 전반에 걸쳐 ‘레트로(retro)’ 붐이 일면서, 식품업계도 추억의 캐릭터를 소환하는 마케팅이 큰 인기를 끌었다.
SPC삼립이 지난 2월 선보인 '포켓몬빵'이 대표적이다. 포켓몬빵은 지난 1998년 SPC그룹 샤니가 출시했던 빵으로 2006년 단종된 후 16년 만에 재출시 돼 오픈런(매장이 열리자마자 입장하기 위해 오픈 전부터 줄을 서는 것) 현상을 동반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포켓몬빵 열풍에 여러 업체가 앞 다퉈 캐릭터 띠부띠부씰(스티커)가 동봉된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GS25는 6월 게임 캐릭터 스티커가 동봉된 '메이플스토리빵'을 선보였고, 롯데제과도 지난 8월 디지몬빵 4종을 내놨다. 디지몬빵은 출시 한 달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개를 돌파하기도 했다.
또 식품 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 건강과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트렌드에 맞춰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를 출시하고,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낙점했다.
CJ제일제당은 비건 식품 전문 브랜드 '플랜테이블'를 통해 '비건 왕교자', '비건 김치' 등을 출시했고, 오뚜기도 비건브랜드 '헬로베지'를 런칭해 '채소가득 카레·짜짱', '채황', '건강한 솥밥' 등 신제품을 선보였다.
풀무원은 비건 브랜드 '식물성 지구식단'을 론칭했다. 만두를 비롯해 떡볶이, 볶음밥, 짜장면, 파스타 등 대체육을 활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신세계푸드는 대안육 브랜드 '베러미트'를 론칭하고 B2B(기업 간 거래) 제품을 선보였으며,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분야로 시장을 확대, 100% 식물성 원료로 만든 '베러미트 식물성 런천캔햄'을 공개했다.
◇ '해외시장'으로 눈돌리거나, 'M&A' 매물 신세 전락
외식업계는 고물가로 소비가 얼어붙자 해외시장 진출을 통한 판로 확보에 나서거나, 수익성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 바람이 불었다.
교촌에프앤비는 지난 7일 ‘세계인의 맛을 디자인하는 글로벌 식품라이프스타일 기업’이라는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글로벌 전략으로 미주와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 전략 시장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교촌에프앤비는 현재 6개국에 7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올해 상반기 말레이시아 2개점, 중동 두바이에 5호점을 오픈했다. 특히 하와이에 미국 첫 가맹점을 열기도 했다. 하와이를 시작으로 향후에는 미국 본토에서도 가맹사업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제너시스BBQ도 해외 출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BBQ는 2003년 중국 진출 이후 미국, 캐나다, 일본, 대만 등에서 가맹점을 늘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6년 진출한 이후 뉴욕, 뉴저지, 캘리포이나, 텍사스 등 20개주에서 15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캐나다에서도 100개 매장을 가동하고 있다.
BBQ는 단기적으로 전 세계 57개국에서 500여개 가맹점 운영이 목표다.
bhc는 지난달 말레이시아 몽키아라 지역 내 쇼핑 센터인 리테일 파크에 bhc치킨 말레이시아를 오픈하며 동남아 시장 공략에 나섰다.
bhc그룹은 내년 상반기 싱가포르에 bhc치킨 1호점 오픈을 준비 중이다. 이후 미국 등 해외 매장 추가 오픈을 검토 중이다.
올해는 M&A 시장에 외식업 프랜차이즈 매물이 쏟아졌다. 국내 햄버거 프랜차이즈 빅5 중 롯데리아를 제외한 맥도날드, 버거킹, 맘스터치, KFC 등 4개 업체는 물론 미스터피자, 투썸플레이스, 컴포즈커피 등 업체들도 M&A 매물로 나왔다.
코로나19 장기화는 물론 가맹본부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인건비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가맹사업 환경이 크게 악화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