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재계 주요 기업들이 사명을 변경하는 사례가 늘었다. 방법도 갖가지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일부 글자를 떼어내는가 하면, 영문을 도입하기도 한다. 지향하는 가치를 담아내기 위해 간판을 통째로 바꾸는 경우도 적잖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의 사명 변경은 사업의 개념을 확장한 경우가 다수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사명을 HD현대그룹으로 바꾼 것도 ‘중공업’을 떼어내 ‘조선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한 목적이 컸다.
HD현대의 조선 부문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이끄는 정기선 사장은 지난해 CES에서 “세계 1위 조선사 십빌더(Shipbuilder·조선회사)를 넘어 혁신기술로 미래 가치를 만드는 퓨처 빌더(Future Builder·미래 개척자)가 되겠다”는 그룹 방향성을 밝힌 바 있다.
지난 2021년 기아(KIA)로 사명을 변경한 기아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시장이 모빌리티 산업으로 재규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차량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국한된 역할을 넘어 혁신적인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고(故) 스티브 잡스 CEO로 대표되는 애플도 비슷한 사례다. 2007년 1월9일 당시 잡스는 아이폰을 공개하면서 애플컴퓨터의 이름을 애플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30년 역사의 컴퓨터 제조 업체가 단번에 혁신적인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한 순간이다.
SK그룹 계열사들의 사명에는 ‘친환경’ 철학을 담아내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도사’로 불리는 그룹 수장 최태원 회장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경영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친환경이다. SK종합화학이 SK지오센트릭으로 바뀐 것을 비롯해 SK이노베이션의 베터리사업 부문은 SK온, 석유화학 부문은 SK어스온으로 각각 변경됐다.
최 회장은 “기업 이름에 에너지, 화학 등이 들어가면 근본적인 변화(Deep Change‧딥 체인지)를 꾀하기 힘들고, 환경에 피해를 주는 기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GM이 지난 10여 년 간 사용해온 사명 대신 ‘GM한국사업장’, ‘제너럴모터스’(GM) 등으로 바꿔 소개하고 있는 것은 이미지 쇄신 차원이다. 로베르토 렘펠 한국GM 사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며 GM 브랜드를 ‘정통 아메리칸 브랜드’로 다시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깔린 짙은 ‘국산차’ 이미지를 온전히 지우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한국GM은 과거 대우자동차가 GM에 인수돼 설립된 ‘GM대우’가 전신이다.
KG그룹 품에 안긴 쌍용자동차도 ‘KG모빌리티’로 새롭게 태어난다. 무려 35년 만이다. 판매량이 급감해 ‘안 팔리는 차’로 고착화된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서다. 기아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제조 기업을 벗어나기 위해 아예 ‘모빌리티’를 사명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포스코그룹은 일부 계열사의 사명을 바꾼다. 포스코그룹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9일 특허청에 ‘POSCO DX’라는 상표명을 특허 출원했다. POSCO DX는 정보기술(IT)·엔지니어링 부문 계열사인 포스코ICT의 새 사명 후보 중 하나다. DX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의미한다.
포스코ICT가 산업용 로봇 엔지니어링 등 DX사업을 토대로 지난해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9년 만에 매출 1조원 클럽에 복귀하자 아예 DX를 사명으로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새로운 비전을 설정한 포스코그룹은 기존 사명이 계열사별로 추진하고 있는 신사업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포스코ICT 외에도 일부 계열사들의 사명을 올해 변경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기존 산업만으로는 발전을 거듭하기 어려운 시대”라면서 “산업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한 사명 변경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다만 “그동안 축적돼 온 회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