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정우 기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사실상 은퇴를 선언하면서 ‘금호가 3세’ 박준경 사장 중심 체제가 도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석유화학 사업 경쟁력 제고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9일 금호석유화학그룹에 따르면 박 회장은 최근 경영진에게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고 무보수 명예회장직을 수행하기로 했다.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4남으로 1976년 한국합성고무(현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해 47년간 석유화학 업계에 몸담았다.
업계에서는 박 회장이 고부가가치 화학제품 개발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금호석유화학을 글로벌 석유화학·소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호석유화학은 의료용 장갑 원료인 NB라텍스 분야 세계 1위(점유율 30%)다.
2009년에는 형인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대우건설 인수 과정에서 갈등을 빚으며 이른바 ‘형제의 난’을 겪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유동성 위기로 2009년 말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2010년 지금의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갈라섰다.
금호석유화학은 2012년 채권은행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졸업했고 2016년 8월 아시아나항공 이사진과 박삼구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을 모두 취하, 7년 간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
박 회장은 2021년 조카인 박철완 상무와 경영권을 두고 내홍을 겪기도 했다. 이후 금호석유화학은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 보상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해 사외이사 중심의 독립적 운영에 돌입했다. 박 회장은 대표이사와 등기이사에서 물러났고 전문경영인 백종훈 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박 회장이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서 장남인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사장의 ‘3세 경영’에 이목이 쏠린다.
전문경영인 체제인 금호석유화학은 공식적으로는 박 회장 용퇴가 본격적인 체제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재계에서는 경영 일선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 사장으로 자연스럽게 무게중심이 옮겨갈 것이라는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1978년생 박 사장은 200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2010년 금호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겨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21년 6월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1년 반 만인 지난해 말 사장으로 승진했다. 사장 승진에 이어 같은 해 사내이사에 선임되면서 경영권 기반을 온전히 확보했다. 지난해 말 기준 박 사장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율은 7.45%로 박 회장(6.96%)보다 많다.
박 사장 앞에 놓인 첫 과제는 신사업 육성이다. 기존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 구조에 따라 최근의 업황 악화가 실적 부진으로 이어지는 만큼 신사업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 1조7213억원, 영업이익 1302억원의 잠정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1.7%, 영업이익은 71.0% 감소한 실적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이어지는 업황 악화에 따라 경쟁사들의 석유화학 부문이 적자를 기록한 데 비하면 선방했다는 평가지만 신사업 발굴 필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이 지난해 3월 발표한 중장기성장전략에 따르면 신사업 포트폴리오는 크게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자동차 솔루션, 바이오·친환경 소재, 고부가·스페셜티 사업으로 구분된다. 인수합병(M&A)을 통한 경쟁력 있는 사업 확보와 자체 사업 육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가운데 바이오·친환경과 고부가·스페셜티 사업은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오지 않았지만 타이어 등에 쓰이는 고기능성 합성고무 솔루션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SSBR)와 배터리·친환경 소재 탄소나노튜브(CNT) 등 소재 사업의 성장성이 전기차 시장 성장과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현재 탄소나노튜브 연간 생산능력 120t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내년까지 360t으로 3배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SSBR 생산시설 증설도 마무리하고 판매 확대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