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1. ‘검은띠 마에스트로’ 안드리스 넬손스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Leipzig)의 카펠마이스터(음악감독 및 수석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는 라트비아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라트비아 최초로 고음악 앙상블을 결성했고, 친아버지는 첼리스트였고, 어릴 때 만난 새아버지는 아마추어 합창단 지휘자였다. 다섯 살 때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를 보러갔다. 탄호이저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 어린 넬손스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게 어릴 때의 가장 큰 사건이었죠.” 음악가의 길을 걷게 해준 결정적 순간이다.
열두 살 때부터 트럼펫을 불었다. 그보다 1년 전인 열한 살 때 한국인 사범을 만나 태권도를 배웠다. 빨간 띠까지 땄다. 그런데 열다섯 살 때 태권도를 하다가 앞니가 깨졌다. “트럼펫을 불어야 하는데 난감했다”고 회상했다. 그 일을 계기로 오랫동안 태권도를 스톱했다.
“태권도는 ‘수양’과 ‘집중’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었어요. 태권도가 가진 철학과 신비로움에 빠져들었고 ‘명상에 도움이 되는 음악’을 찾기 시작했죠. 그 경험이 지금 제가 지휘하는 음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넬손스의 태권도 사랑은 유명하다. 코로나 사태가 오래 지속되자 한참동안 입지 않았던 도복을 다시 꺼냈다. 지난해 보스턴(그는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도 맡고 있음)에서 드디어 검은 벨트를 땄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태극기를 배경으로 검은 띠를 두르고 멋지게 포즈를 취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세계 음악계에서 ‘검은띠의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지난달 15일과 1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내한공연을 열었다. 그의 첫 한국 방문이다. 16일 공연을 앞두고 열린 리허설에서 검정 반팔 티셔츠를 입고 포디움에 섰다. 등 뒤에 새겨진 ‘TAEKWONDO 태권도’라는 흰색 글씨가 선명했다. 바쁜 스케줄에도 이날 오전 강남구 역삼동의 태권도 국기원을 방문했다. 1시간 가량 머물면서 태권도 품새 세미나를 직접 참관하고 사범들과 만나 인사도 나눴다. 인근 태권도 용품점에서 점퍼 등도 구입했다. 그는 “거칠고 힘이 많이 들어가는 다른 격투기와 달리 태권도는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져 좋다”고 예찬했다.
넬손스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오는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을 연주한 뒤,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들려줬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1743년 창단 후 40여 년간 따로 전용 공연장이 없었다. 1781년 라이프치히의 직물상인들이 지은 ‘게반트하우스’(‘직물회관’이라는 뜻)를 개조해 콘서트장으로 사용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1884년 새로 공연장을 만들어 개관했으나 아쉽게도 2차 세계대전으로 소실됐다. 그리고 1981년 세 번째 공연장을 오픈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게반트하우스’라는 악단명에 걸맞게 보풀 하나 없이 완벽하게 소리를 만들어냈다.
#2. 무대 구석서 협연자 앙코르 들은 파비오 루이지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는 ‘벨벳 현’과 ‘황금 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극찬이다. 188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콘세르트헤바우(‘콘서트홀’이라는 의미)가 개관할 때 전속 오케스트라로 창립된 후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과 정상을 다투고 있다. ‘로열’이라는 칭호는 창단 100주년을 맞은 1988년에 공식 수여받았다.
지난달 1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RCO가 6년 만에 내한공연을 열었다. 포디움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파비오 루이지가 섰다. 이력이 독특하다. 투잡을 뛴다.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 직업도 가지고 있다. 직접 만든 향수를 몸에 뿌리고 판매도 한다. “음악을 만드는 것과 향기를 만드는 것은 비슷한 작업이다”고 말한다. 섬세하고도 세련된 지휘에 아름다운 향기가 풍기는 이유는 냄새 못지않게 귀를 사로잡는 선율을 만들어 내는 탁월한 조음(調音) 능력 덕분이리라.
독일 낭만파 오페라를 열어젖힌 베버의 ‘오베론’ 서곡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으로 콘서트장을 찢어놓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과의 협연이었다. 브론프만은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사한 뒤 앙코르 2곡을 들려줬다. 슈만 ‘아라베스크 C장조’와 쇼팽 ‘에튀드 12번 혁명’.
루이지는 브론프만이 연주하는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출입구 옆에 서서 2곡을 끝까지 들었다. 협연자에 대한 지휘자의 개인적 존경심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것이 RCO 내부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전통이라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RCO의 힘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연말을 맞아 일부 은행장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케이뱅크는 차기 행장으로 최우형 전 BNK금융지주 전무를 내정했다. 금융·IT·재무 전반에 다양한 경험을 갖춘 디지털금융 전문가를 내세워 국내 1호 인터넷은행의 도약을 이끌겠다는 포석이다. 다만 실적 향상과 IPO(기업공개) 성공이라는 ‘만만찮은 과제’가 부담이다.
능력을 인정받아 자리를 지킨 사람도 눈에 띈다. 국내외 경영 환경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난 2년간 우수한 성과를 달성한 이재근 국민은행장은 연임됐다. 1년을 더 보장받았다. 그는 서강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금융공학을 전공했다. 은행권에서 보기 드문 ‘이과형’ 리더의 활약이다. 이에 앞서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4연임에 성공했고,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도 다시 자리를 지켰다.
안드리스 넬손스와 파비오 루이지는 모두 상식을 깨뜨리는 지휘자다. 태권도 티셔츠를 입고 무대를 휘젓고, 협연자 앙코르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진심을 보여줬다. 감동이다. 새로 은행장 타이틀을 단 사람도, 계속 은행장 타이틀을 이어가게 된 사람도 상식을 깨뜨려야 감동을 줄 수 있다. 은행을 향한 정부의 압박이 더 거세지고 있다. 옛날과 똑같이 해서는 위기를 헤쳐 나가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