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멋진 공연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감동의 크기는 줄어들겠지만, 가끔 그 순간을 꺼내보면 다시 훈훈해진다. 완벽한 테크닉을 뛰어넘는 세월의 아름다움이 흐르는 공연이다. 얼마 전 그런 무대를 감상했다. 그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살아가는 에너지를 준다. ‘아 이게 바로 음악의 힘이구나!’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대를 쥐락펴락한 75세의 바이올리니스트(1948년생)는 ‘지휘 거장’ 반열에 오른 70세 남동생(1953년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포옹하는 등 10대 때의 모습을 보여줬다. 정겨웠다. 뒤로 물러서는 동생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줬다. 연신 쑥스러운 표정을 짓자 누나는 과감하게 볼에 뽀뽀를 하고는 쓱쓱 립스틱 자국을 지워주는 애정표현도 아끼지 않았다.
지난 5일 정경화와 정명훈이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11년 만에 이뤄진 ‘정트리오 콘서트’였다. 은퇴한 첼리스트 정명화(79)가 빠져 아쉽게도 완전체는 아니었지만, 가족처럼 남매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중국 첼리스트 지안왕(55)이 빈자리를 메웠다. 남매의 듀오 연주는 1993년 이후 30년 만이다. 2011년 어머니 이원숙 여사를 기리는 트리오 무대에는 정명화까지 함께 섰다. 정경화가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카네기홀 무대에 섰을 때 피아노 연주를 맡았던 정명훈은 15세 소년이었다. 그리고 50여년의 시간 동안 남매는 각자의 영역에서 톱에 올랐다.
이들이 프로그램 마지막에 연주한 곡이 눈길을 끌었다.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1)의 ‘피아노 트리오 a단조(Op.50)’다. 차이콥스키는 1880년대로 접어들면서 작곡가로서 확고한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영감이 메말라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이때 차이콥스키가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 곡이 바로 피아노 삼중주 a단조다.
안톤 루빈시테인(1829~1894)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러시아 역사상 첫 음악원의 문을 열었고, 차이콥스키는 바로 이 학교의 1회 졸업생이었다. 안톤의 동생 니콜라이 루빈시테인(1835~1881)이 모스크바에 새로 음악원을 오픈한 뒤, 차이콥스키를 교수로 임용했다. 차이콥스키는 니콜라이 원장 집에 방 하나를 빌려 살았다. 위대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니콜라이는 차이콥스키의 여러 작품을 초연하며 ‘작곡가 차이콥스키’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좋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갈등도 있었다. 니콜라이가 1874년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를 거절하면서 불화를 겪은 게 대표적 사례다.
1881년 3월, 니콜라이는 파리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침 파리에 있던 차이콥스키는 장례식에 참여했고 모스크바로 운구하는 기차도 전송했다. 은인의 죽음에 차이콥스키는 크게 흔들렸다. 그해 말부터 니콜라이를 추모하는 피아노 트리오를 쓰기 시작해 이듬해인 1882년 1월에 완성했다. 차이콥스키는 본질적으로 관현악 작곡가였다. 열렬한 후원자이자 정신적 연인이었던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이 피아노 트리오를 써달라고 요청했을 때 거절했을 정도로 이 형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니콜라이를 추모하는 작품을 계획하면서 이 장르에 주목했다.
피아니스트를 위한 작품답게 전편에 걸쳐 피아노가 음악을 주도한다. 베토벤 후기 소나타의 선례를 본받아 소나타와 변주곡을 결합했다. 그 결과 ‘세 개의 악기를 위해 만든 관현악곡’이라고 표현할 만큼 웅장한 작품이 탄생했다. 차이콥스키의 이 작품 이후 러시아 작곡가들은 친구와 동료를 추모하기 위한 피아노 트리오를 쓰는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정경화·정명훈·지안왕 콘서트에 앞서 지난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트리오인(Trio In)’ 공연에서도 존경하는 사람을 기리는 작품이 연주됐다. 트리오인은 2019년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첼리스트 송영훈,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결성한 피아노 3중주단이다. 항상 ‘음악 안에’ ‘청중 안에’ ‘우정 안에’ 있겠다는 다짐을 팀명에 담았다.
트리오인은 안톤 아렌스키(1861~1906)의 피아노 트리오 1번 d단조(Op.32)를 연주했다. 러시아 실내악 작품 가운데 ‘숨은 명품’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곡이다. 이 곡은 러시아 최고의 첼리스트였던 칼 다비도프(1838~1889)를 기리기 위해 헌정됐다.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인 아렌스키의 작품답게 피아노가 전곡을 이끌어 나가지만, 러시아인 특유의 어둑하면서 풍성한 양감이 느껴지는 두 현악기의 선율미와 뉘앙스 역시 훌륭하다.
트리오인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피아노 트리오 1번 g단조 ‘애가’와 2번 d단조 ‘애가(Op.9)’도 연주했다. 특히 d단조 애가는 차이콥스키에 대한 리스펙트에서 출발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스무 살 때인 1893년 10월 기차역에서 차이콥스키를 우연히 만났다. 그곳에서 작곡에 대한 조언과 함께 자신의 모스크바 음악원 졸업 작품인 오페라 ‘알레코’에 대한 격려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차이콥스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라흐마니노프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그래서 마침 곡을 쓰기 시작했던 자신의 두 번째 피아노 트리오를 차이콥스키에게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작품의 분위기와 구성을 차이콥스키가 니콜라이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피아노 삼중주 a단조와 비슷하게 맞췄다. 또한 자신의 피아노 트리오 1번과 마찬가지로 ‘애가풍의 트리오(Trio élégiaque)’라는 제목을 붙였고, ‘위대한 예술가를 추억하며’라는 부제가 달았다.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이 앞다퉈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6일 우리금융 1만주를 매입했다. 3월 취임 후 첫 자사주 매입이다. 이번에 사들인 주식은 1억1800만원 규모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주요 금융그룹 회장 중 가장 많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KB금융 2만1000주를 가지고 있다. 지난 5일 종가 기준 11억300만원어치다. 2014년 취임 후 모두 14차례 자사주를 매입했다. 이어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이 신한금융 1만8937주를 보유해 2위를 기록했다. 6억7300만원 규모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도 하나금융 1만132주를 손에 쥐고 있다. 주식 평가액은 4억 정도다.
금융 경영진이 자사주 매수에 나서는 것은 주가 부양에 대한 자신감과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데다 배당 매력이 높은 만큼 저평가된 주가가 오를 여지가 높다고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서처럼 4대 금융 회장들도 ‘어느 위대한 은행가를 추억하며’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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