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세계철강협회 회장이자 한국철강협회 회장인 철강왕도 ‘관치’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포스코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이사장이 최정우 회장의 3연임 반대로 해석되는 목소리를 낸 지 일주일 만에 최 회장이 후보군에서 배제됐다.
3연임 도전에 나설 것 같은 인상을 줬던 최 회장이 재임 완주에만 만족하게 됐다는 소식을 확인하고 다소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포스코의 역대 회장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사퇴’로 끝을 맺었으니 무사히 임기를 완료하는 것에 그나마 축하 인사를 건네야 할까.
윤석열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최 회장을 겨냥해 포스코 수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놨다. 해외 경제사절단과 경제계 행사 때마다 빠짐없이 불러 모았던 다른 총수들과 달리 최 회장은 철저하게 외면했던 윤 대통령이다.
작년 12월 부산 전통시장에서 가진 총수들과의 분식집 회동에서도 최 회장은 없을 것 같다는 나름의 추리는 정권이 출범한 1년7개월 동안 윤 대통령이 꾸준히 그를 따돌려온 일관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니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코드에 맞춘 국민연금의 행태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비단 포스코에만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최 회장을 생각하면 역시 작년에 국민연금이 연임 도전을 공개 반대해 결국 낙마한 구현모 전 KT 대표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이쯤 되면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 중심과 민간 주도로 경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는 윤 대통령이 과연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행정부 수반으로 국민들에게 제대로 인식될지 걱정스럽다. 정책 이정표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의 언어가 일회용이어선 곤란하다.
왜 하필 포스코와 KT의 수장 교체 시점이 정권교체와 맞물리는지도 정말 미스터리다.
국민연금이라고 쓰고 윤석열 정권이라고 부른다. 국민연금의 포스코 회장 선임 개입 명분은 무엇인가. 박태준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권오준 등 검찰과 국세청에 약점을 잡혀 중도 퇴진했던 포스코 역대 회장들과 달리 최 회장은 임기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국민연금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포스코는 ‘주인 없는 회사’라는 시장의 평가를 반대로 생각해보라고도 권유하고 싶다.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6.71%에 불과할 정도로 포스코는 ‘주인 많은 회사’다. 다시 말해 지켜보는 눈이 많다.
차기 회장이 선임되는 주주총회가 열리는 2개월 뒤, 차차기 회장의 임기가 시작되는 3년 뒤에도 또다시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가 포스코 수장으로 선임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지 국민연금의 배후는 의심받고, 의도는 견제받을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스스로 자초한 불편이다.
회장 자리가 정권의 전리품인 양 취급되는 포스코 세상에서 원조 철강왕 박태준 명예회장의 창업 이념인 제철보국(製鐵報國)의 가치를 이어가려면 투명하고 공정한 CEO 승계시스템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 첩경은 정권이 민간기업 인사에 개입하는 관치의 청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