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인사 발령이었다. 종무식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남편은 도중에 부하직원의 전화를 받고 일터로 되돌아갔다. 통상적으로 최소한 1년은 지나야 이동 대상이 되고, 2년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5개월 13일밖에 안 되어서 이동하게 되었으니, 직원들이 놀랄만했다.
집에서 출근하게 되어 영전이긴 하지만, 섭섭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관장은 호흡 맞춰서 일 잘하고 있는 사람, 이렇게 빨리 데려가는 법이 어디 있느냐, 00부는 인사를 어떻게 하는 거냐며 평소의 그분답지 않게 흥분했다.
"최소한 나한테 힌트는 줬어야지, 그래야 마음의 준비를 하지. 내년에도 함께 잘해보자 해놓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전임자는 2년 6개월 만에 떠났단다. 그는 "공무원이 종이 한 장에 오고 가는 거 아닙니까. 저도 몰랐습니다" 그 말밖엔 할 말이 없었다.
엉겁결에 부산까지 이삿짐 싸러 갈 준비를 했다. 짐이라야 옷이 대부분이다. 여행용 가방을 있는 대로 다 꺼내었다. 누가 보면 연휴에 해외 나들이라도 떠나는 줄 알겠다.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 서녘 하늘엔 어느새 고운 저녁놀이 번졌다. 시가지를 벗어나기도 전에 커다란 불덩이는 꼴깍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갈 길은 멀지만, 운전대를 잡고도 눈길은 자꾸만 하늘을 힐끔거렸다. 가끔 봤던 해넘이건만 섣달그믐에 보는 일몰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저녁 강가에서 스러져가는 마지막 빛살에 벅차던 가슴이 아릿해졌다.
'새해엔 휴식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좋은 시절 다 가버리다니' 순간 지난해의 기억들이 섬광처럼 스쳤다.
우린 그해 하반기부터 주말부부였다. 남편이 승진하면서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발령을 앞두고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마누라 잔소리 듣지 않고, 남편 눈치 보지 않고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한 번쯤 낯선 곳에 가서 이방인처럼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일에 발목이 잡혀 선뜻 따라갈 수도 없었다.
막상 바라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남편은 격리 불안을 느끼는 아이처럼 외로움을 탔다. 평소엔 특별한 용건이 없으면 전화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상한 연인으로 돌변했다. 잠이 안 온다며 새벽같이 운동장을 돌면서 밤새 안부를 확인했다. 아침밥은 먹었냐, 오늘 넥타이는 어떤 걸 맬까, 일일이 물었다.
퇴근하면 또 테니스 치고 왔다, 저녁밥 먹었다, 산책 중이다, 수시로 경과보고를 했다. 가끔은 "마님, 돌쇠이옵니다" 하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회식 후, 밤늦은 시간에도 그날 있었던 일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휴대전화에 온기가 느껴졌다.
내륙에서만 살았던 그가 눈만 뜨면 바닷가를 산책하고, 날마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구내식당에서 식사한다니 부러웠다. 밥값보다 자릿값을 더 내야 할 것 같다던 그곳, 운명이 비껴가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 내가 앉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은근히 약이 올랐다.
한 달쯤 지나자, 남편의 전화 횟수가 차츰 줄어들었다. 그래도 금요일 저녁엔 어김없이 집으로 달려왔다. 주말이면 그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설렘도 괜찮았다. 그에게선 바다 내음이 나는 듯했다. 살짝 그은 피부는 건강미가 넘쳤다. 모든 걸 다 받아주는 바다를 매일 봐서인지 마음도 한결 넉넉해 보였다.
"자기가 없는 것 빼고는 다 좋다" 라는 그의 말이 그곳 생활을 대변해 주었다. 일요일 오후면 다시 열차에서 읽을 책을 챙겨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나는 늘 분주했다. 일상적인 업무 외에 새로운 일이 생겨 그의 부재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다만 시간 맞춰 아침 식사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했다. 굶지는 못하는 체질이라 끼니는 챙겼지만, 뭘 먹어도 달지 않았다. 밤늦도록 불침번을 서는 날이 잦았다.
찬 바람이 불면서 잠자리에 들 때면 따뜻한 등이 그리웠다. 떨어진 거리만큼 그리움이 쌓이던 시간도, 현지인처럼 누려보고 싶었던 부산살이도 그렇게 끝나버렸다.
복귀하는 직장에서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전에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은 인터넷에 뜬 인사 발령을 보고 잘 됐다고 환호하는가 하면, 몇몇은 아직 돌아올 시기가 안 되었으니 동명이인일지 모른다고 했다.
연휴 내내 그는 축하 전화 받느라 바빴다. 다들 비결이 뭐냐고 물어왔다. 졸지에 그는 대단한 로비스트거나 막강한 백이 있는 걸로 통했다.
새 임지로 첫 출근 하던 날이었다. 남편의 귀향을 축하하면서 저녁 식탁에 와인도 준비했다. "혹시 나 몰래 로비한 거 아니야?" "하긴 했지. 몇 달 전, 중앙부처 인사담당자가 내려와서 간담회 할 때 정식으로 건의했지. 가급적 근거리 발령을 원칙으로 해달라고. 주말마다 집에 가려면 무려 네 시간이 넘게 걸리니까 얼마나 비효율적이냐고"
그때 동기들은 눈치를 주었단다. 그저 본부에서 잘한다고 찬양해야지, 그런 얘기는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소신파인 그는 망설이지 않고 할 말을 다 했던 모양이다. 그의 애로사항이 참작되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이동하는 바람에 어부지리 격으로 옮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편법을 동원하거나 무리수를 두지 않고 순리대로 살려고 하는 그의 승리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아침마다 늦잠 자는 걸 보면 집이 편하긴 한가 보다.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 서미숙 주요 약력
△경북 안동 출생 △계간 '문장'(2015) 등단 △수필집 '남의 눈에 꽃이 되게' 기행수필집 '종점 기행'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 △프리랜서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