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석 부경대 교수 사고당시 이야기 출간
“똑같은 실수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썼다”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생때같은 가족을 잃은 유가족뿐만 아니라, 사고 상황을 듣고 앞다퉈 물속으로 뛰어든 민간 잠수사들도, 자원봉사를 하겠다며 한걸음에 달려온 사람들도, 매일 TV를 보며 “제발 살아 돌아와 달라”고 기도했던 국민들도 여전히 아프다.
고명석 부경대학교 수산과학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해경에서 22년간 근무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대변인을 맡아 구조 상황을 파악하고 언론에 전달했다. 비통과 절망으로 가득한 팽목항에서 그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했다. 현장의 팩트관계는 물론 희생자 가족, 바다 전문가, 일반 국민, 그리고 언론의 의문에 답해야 하는 직책이었다. 그렇게 희생자 구조와 수습 상황을 매일 브리핑했다.
이후 2017년 4월 세월호가 뭍에 올라왔을 때도 육상 수색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함께 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직책이었다. 육상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수색을 총괄했다. 뼈 조각 하나에 모든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던 때였다.
그렇게 그 배와 그 바다와 함께 했던 한 사람으로서 가슴속에 묻혀있던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팽목의 거센 물살처럼 속에서 맴돌고 맴돌았다. 그래서 당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분석한 것들을 묶어 최근 책을 출간했다. 바로 ‘팽목일기’(지식과감성·284쪽·1만9000원)다.
고 교수는 “개인별로 견해가 다를 수 있고 그때를 되돌아보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들추어 들여다보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다”라며 “제2의 세월호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썼다”고 밝혔다.
‘팽목일기’는 △세월호, 그 아픔의 장소(1부) △블랙 스완이 나타났다(2부) △길고 잔인했던 그해 봄(3부) △두 번째 인연(4부) 등의 4부로 구성됐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생생한 현장 사진도 실었다. 에필로그에는 미래의 바다안전에 관한 고 교수의 견해를 담았다.
당시 국민들을 희망고문에 빠뜨렸던 에어포켓에 관한 내용을 읽다보면 대형참사 앞에서는 감정에 휩싸이기보다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그 배가 완전히 침몰한 것은 4월 18일 12시 57분 경이었다. 4월 16일 전복된 배는 뱃머리만 남긴 채 3일간 떠 있었다. 그 안에 아이들이 살아있을 수 있었다. 기적을 바라는 시간이었고,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에어포켓(Air Pocket)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에어포켓이란 선박이 뒤집혔을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공기가 선내 일부에 남아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에어포켓이라는 말 자체가 ‘희망·생존’을 곧바로 연상시켰다. 만약 침몰한 선체 내부에 배출되지 않은 공기층이 형성되었다면, 이곳에서는 생존자가 호흡이 가능할 것이었다. 사람들은 들뜨기 시작했고, 점점 에어포켓의 존재와 생존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분위기였다.
4월 17일부터 선체 내부에 공기 주입을 시도했다. 공기 주입은 선체를 조금이라도 가라앉지 않게 하고, 생존자에게 공기를 공급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합동구조팀은 조류가 멈추는 정조 시간에 맞춰 공기 주입을 시도했다. 세월호 선체 일부가 떠 있고, 공기를 주입에 성공하면서 에어포켓 존재 여부는 큰 이슈로 떠올랐다. ‘에어포켓 존재 = 선내 생존 = 구조’라는 공식이 사람들 머리 속을 채웠다. 희망 고문이 시작되었다.
사실 에어포켓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곳에 생존자가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곳에 생존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구조될 확률은 낮았다. 즉, 위 공식처럼 연결될 확률이 현실에서는 극히 낮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온 국민이 에어포켓의 존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전문가가 연일 방송에 나와 에어포켓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세월호는 급속하게 전복됨으로 인해 상당한 공기를 안고 침몰했다.” “세월호 선수가 물 위에 떠 있는 이유는 당연히 공기로 인한 부력 때문이다.” “선체 내 공간마다 여러 개의 에어포켓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경험 있는 해양 전문가 사이에 선체에 에어포켓이 생기기 어렵다는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세월호는 수밀성을 보장할 수 없는 배였다. 에어포켓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수밀성이 보장되어야 했다. 수밀문이나 격벽은 충돌이나 침몰 시에 한꺼번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거나 시간을 늦출 수 있다.
수밀성을 잘 갖추어진 배일수록 공기층을 가두어 에어포켓이 형성되기 쉽다. 수밀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선체 여러 곳에 물이 차서 에어포켓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세월호는 소위 ‘로로선’이면서 여객선이었다. 로로선은 화물이나 사람의 통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수밀문이나 격벽을 엄격하게 갖추지 않는다. 수많은 여객이 선내에서 통행하는 복도나 화물칸은 수밀성이 거의 없었다. 수밀문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전복이나 침몰 시 문을 닫지 않으면 수밀 유지는 어렵다.
세월호에 과연 에어포켓이 있었을까? 에어포켓의 존재는 희망 고문이었고 집단적 바람이었다. 바람과 희망은 사실처럼 굳어져갔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현실과 관계없이 실종자 가족이나 국민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떠올렸다.
세월호는 6000톤이 넘는 여객선이었다. 침몰한 거대한 여객선에 에어포켓이 형성되는 것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운 좋게 에어포켓이 형성되었더라도, 선박 내에서 생존자가 에어포켓을 찾아가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천운이 있어 생존자가 에어포켓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 있게 되더라도, 구조대가 미로를 따라 그곳을 찾을 확률은 희박했다. 더구나 생존자를 구조해서 다시 미로를 빠져나와 수면 위로 올라온다는 것은 기적이 함께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희망 고문으로 끝날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그 배는 ‘에어포켓 존재 = 선내 생존 = 구조’라는 공식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를 예상할 수 있었던 여러 해양 전문가들도 입을 닫았다.
에어포켓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등장하면서 객관이나 과학은 낄 자리를 잃었다. 현실을 말하기에는 ‘희망’과 ‘기대’가 너무 커져 버린 까닭이었다. 그렇게 현실과 무관하게 희망 고문은 계속됐다.>
‘팽목일기’에는 전 국민안전처 박인용 장관과 고려대 김인현 교수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박 장관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군 3함대사령관과 작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차장 등을 역임한 뒤 세월호 사고 이후 출범한 국민안전처 초대 장관을 역임했다. 김 교수는 해양대를 졸업하고 화물선 선장을 했으며 해상법을 전공한 뒤 오랫동안 고려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고 교수는 ‘팽목일기’를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팽목일기’는 세월호 사고 원인이나 진상 규명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지난 일에 대한 변명이나 회한도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에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다. 이를 통해 바다는 있는 그대로,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현실과 바람을 구분하지 못했던 우리. 아니 구분하지 않았던 우리. 그때처럼 바람과 희망만이 화두가 되고, 당위성만이 주제가 되어서는 안되기에. 앞으로는 사람이 어쩔 수 없는 바다를 바다로 받아들이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