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출한 한국 반도체 기업 지원책 줄어들수도
자국우선주의 강화로 중국 첨단 반도체 견제 심해져
AI 반도체 분야서 미국과 한국 공조 강화 기대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데일리한국 김언한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 매치'가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한국 반도체 업체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보다 더 강경한 자국 우선주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후폭풍이 클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다소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상황이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까지 전국 단위 여론조사 591개를 평균한 결과, 가상 대결 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평균 45.6%, 바이든 대통령은 43.5%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을 자국 기업 중심으로 내주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할 경우, 현지에 공장을 지을 예정인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책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바이든 정부에서의 자국우선주의가 한층 강화돼 반도체 보조금이 미국 기업에 더 집중될 전망"이라며 "외국기업을 미국으로 불러들여 공급망을 강화하는 게 바이든의 정책이었다면 트럼프는 자국 기업 우선으로 공급망 강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법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법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제공

미국 상무부는 지금까지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와 글로벌파운드리즈 등을 발표했다. 인텔에도 100억달러(13조원) 가량의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으로 전해진다. 모두 미국 기업이다.

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기업은 보조금과 관련해 미국과 현재 협의 단계다.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23조원)를 들여 텍사스주 테일러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도 15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패키징 공장을 짓기 위해 인디애나주 등 부지를 검토 중이다. 만약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해외 반도체 기업에 주는 세금 감면 인센티브 등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인텔과 같은 미국 기업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인텔은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인텔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를 개최하고 앞으로 파운드리 2위가 될 것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인텔이 1.8나노 반도체 공정의 고객사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라고 밝힌 점이다. 트럼프 정부 2기가 출범한다면 미국의 반도체 제조 기업과 수요 기업 간 공조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인텔의 부상은 삼성전자에 악재다. 업계에선 가까운 미래에 인텔이 미국 퀄컴의 주문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텔은 오는 2030년 외부 고객 매출로 파운드리 업계 2위를 차지한다는 목표다. 현재 전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 2위는 삼성전자다.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IFS(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인텔 제공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IFS(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인텔 제공

반면 트럼프 정부가 재출범하면 대(對)중국 견제가 더 강화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데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있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은 미국의 수출 규제에 동참해 중국에 대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출 제한뿐 아니라 최근에는 신형 심자외선(DUV) 장비도 수출을 금지한 상황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선봉장인 SMIC가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SMIC는 지난해 DUV 장비로 7나노 반도체를 양산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기업이다. 현재 이 회사는 5나노 반도체를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박재근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 SMIC에 대한 견제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AI 반도체 분야에선 미국과의 공조가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국 기업 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이라면 바이든 대통령보다 한국에 더 강력하게 요청할 것이란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은 현재까지 경쟁사가 딱히 없고 고성능 AI 가속기에 필수로 탑재된다. AI 가속기는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제공
사진=SK하이닉스 제공

특히 삼성전자는 인간 지능에 가깝거나 이를 능가하는 범용인공지능(AGI) 전용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AGI컴퓨팅랩'을 신설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기업과 협력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재근 학회장은 "미국이 AI 분야를 주도하기 위해선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과의 공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한국과 미국이 반도체 기술에서 경쟁하는 관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겹치는 분야에서는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전자산업은 빨간불이 켜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5월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를 미국 수출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처럼 다른 중국 기업도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경우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는 중국 내 새로운 협력사를 찾아야한다.

박 학회장은 "우리 정부는 트럼프 집권 2기에 포함될 예상 인물과 미리 접촉해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생길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한 사전 준비를 속히 해야한다"며 "미국이 자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힘을 싣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은 기술 초격차 유지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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