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DB
서미숙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DB

아름다운 섬에 다녀왔다. 그곳은 책 읽는 사람이 환대받는다. 종이책이 설 자리를 잃어간다고 하지만, 팬데믹 이후 다시 점포 수를 늘려가는 서점이 있다. 서점이란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30년 넘게 책과 책이 아닌 것 사이에서 인간미, 예술, 창의성, 삶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Eslite 성품서점이다. 게다가 24시간 문을 여는 서점이라니. 

중국의 동남부에 위치한 타이완(대만)은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을 뜻하는 포르모사(Formosa)이다.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2024 대만 심포지엄이 국립대만문학관에서 열렸다. 3박 4일간 짧은 여정이었지만 심포지엄 전후로 명소탐방도 곁들였다. 

무엇보다 성품서점 송연점이 인상적이었다.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거점이라 할 수 있는 송산문창(문화창작)원구에 자리한다. 대북문창(臺北文創) 건물은 외관부터 심상치 않았다. 어릴 적 밀짚으로 만들던 여치 집을 연상케 했다. 일본 건축 대가 이토 도요오가 설계하여 2013년에 설립했다. 성품서점 송연점이 입점한 후 타이베이 디자인 산업의 지표로 탈바꿈하였고, 문화예술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화산 1914 문창단지와 함께 타이베이 양대 문화예술 근거지 역할을 한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쳤지만,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뿐이라 아쉬웠다. 엘리베이터로 곧장 서점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엔 서점 외에도 LP 음반, 테이프 등을 취급하는 성품음악, 아동용품, 쿠킹 스튜디오, 카페 등이 들어섰다. 기둥도 거의 없이 툭 터진 실내가 더 넓게 보였다, 초대형 서적이 이색적이었고, 한국어자격시험을 위한 교재도 여럿 나와 한류열풍을 짐작케 했다. 일요일 오후여서인지 서점에 이용자가 꽤 많았다. 

서가 사이 곳곳에 쉼터를 마련해 독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창가에는 긴 나무 벤치를 설치해 놓았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열독하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젊은이들이 대부분이고 어린이와 같이 온 젊은 엄마, 청소년과 나온 가족도 보였다. 

에코백을 겨드랑이에 끼고 우아한 스탠드 옆 의자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진 할머니가 돋보였다. 머리엔 서리가 내리고 칠부 바지와 반소매 셔츠 차림에 샌들을 신었다. 마실 가듯 편안한 차림으로 서점에 들러 책 읽는 모습이 일상인 듯했다.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 여쭈어보니 소설책이었다. 

서점 앞쪽으로는 통유리창을 설치했다. 사방이 벽이나 서가로 막혀 답답한 우리네 대형서점과는 사뭇 다른 구조이다. 책을 읽다가 눈이 피로하면 창 너머로 초록 세상과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어 숨통이 트였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소나기가 한줄기 지나갔다.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듯 촉촉이 젖어있는 바닥과 빗줄기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망중한을 즐겼다. ‘날이 개면 밭을 갈고 비가 오면 글을 읽는다.’라는 제갈량의 청경우독(淸耕雨讀)이 유효한 순간이었다.

'책을 펴고 밤을 새워 매주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세계의 조화로운 문화 해답을 찾다'라는 야간 공독 포스터도 보였다. 연경출판과 성품 서점 특별기획으로 인문학 영역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서다. 물론 국내서점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차이가 있다면 이곳은 독자를 지하로 모시지 않는다. 좋은 위치에 서점을 배치하여 플랫폼 구실을 한다. 

생활용품, 레스토랑, 카페, 공연장, 영화관, 갤러리, 호텔 등 모든 것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지는 Eslite성품은 트랜드를 선도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1989년, 최초의 인문학 예술 서점에서 출발했다. 인본주의적인 배려와 문화적 창의성을 핵심으로 독서를 장려하는 리더의 기업 철학이 바탕에 깔려있다. "청핀(誠品. Eslite)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정착하는 공간이자 장소입니다." 라고한 설립자 우칭유(Wu Qingyou)의 말을 새겨볼 만하다.

현충일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들러보았다. 입구부터 북적였다. 바깥 데크 계단에도 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제법이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대부분 휴대전화 삼매경에 빠졌다. 서점 안에도 책과 문구를 둘러보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서점 내 카페에도 손님이 가득했다. 그중에 책 읽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서점에서 차를 마시면 책을 펼쳐 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지 않을까. 

이제 서점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 트랜드가 시작되는 곳이다. 리더(Reader)가 지도자(Leader) 된다. 우리도 책과 독자를 좀 더 배려했으면 싶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타박하지 말고 백화점이나 쇼핑몰에도 서점을 가장 좋은 위치에 배치해 보자. 서가 사이에 의자 하나쯤 놓아 줄 수 있는 아량도 베풀었으면. 멀리 보면 우리의 미래에 투자하는 게 아닐까.

◆ 서미숙 주요 약력

△경북 안동 출생 △계간 '문장'(2015) 등단 △수필집 '남의 눈에 꽃이 되게' 기행수필집 '종점 기행'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 △프리랜서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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