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하수 기자] 정부가 서울 등 도심 내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급‧세제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8.8 공급대책'을 내놨다.
서울권 그린벨트 해제, 정비사업 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주택 공급을 늘리고, 소형 비아파트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해 위축된 비아파트 수요와 공급 모두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으로 비아파트 시장이 살아나 단기간 내 주택 공급과 거래가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당장 최근의 집값 상승세를 꺾기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서울 그린벨트 12년 만에 해제…내년까지 8만가구 공급
8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까지 총 8만가구 규모의 수도권 신규택지 후보지를 발굴해 6년간 42만가구 이상의 주택을 공급할 방침이다.
우선 올해 서울과 서울 인근 지역 택지를 통해 5만가구, 내년에 서울 이외 수도권 택지를 통해 3만가구를 공급한다. 올해 공급되는 5만가구 중에서 2만가구는 신혼, 출산, 다자녀 가구에 최대 70% 공급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서울과 서울 인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한다. 서울 지역의 그린벨트를 해제한 것은 지난 2012년 이후 12년 만으로, 이명박 정부 당시 보금자리 주택 공급을 위해 147만㎡ 규모의 그린벨트를 해제한 바 있다.
정부는 투기수요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는 11월 신규택지 발표 시점까지 서울 그린벨트 전역과 서울 인접 수도권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한시 지정할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그린벨트 해제지역에는 주거 선호 지역이 상당 부분 포함될 것”이라며, “서울지역 그린벨트를 풀기 위해 서울시와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자곡·수서동 일대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신규 택지 이외에도 3기 신도시나 수도권 택지 이용 효율화를 통해 2만호 이상 주택을 추가 공급한다.
◆정비사업 절차 간소화…역세권 용적률 최대 390%
서울 도심의 아파트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규제 문턱도 대폭 낮춘다.
우선 재건축·재개발 촉진법(특례법)을 제정해 기존 정비 사업이 빠르게 추진되도록 '기본계획'과 '정비계획'의 동시 처리를 허용한다.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의 동시 수립도 허용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최대 3년의 시간이 단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비사업 절차도 간소화한다. 재건축 조합 설립시 동의요건을 완화(75→70%, 동별 1/2→1/3)하고, 사업 시행시 재해영향, 소방 성능설계 등 통합심의와 특별건축구역 지정, 장애인시설 협의 등 인허가 의제 대상을 최대한 확대하고, 사업시행기간 조정 등은 인가 없이 신고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관리처분인가 전에도 총회 의결로 타당성 검증 신청을 허용하고, 토지등소유자에 대한 분양공고 통지기한도 현행 120일에서 90일로 단축하는 개선책도 내놨다. 관리처분인가가 완료되기 전에 미리 HUG와 대출보증 협의를 진행해 착공 속도를 높이고, 이주 완료 전에 철거심의를 통해 이주·철거기간도 단축시킬 계획이다.
용적률의 경우 법적상한을 초과해 적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용적률 추가 허용 방안으로는 역세권의 경우 법적상한용적률의 130%까지 추가 허용한다. 현재는 법적상한의 120%까지 허용하고 있다.
일반 정비사업의 경우에는 현행 법적상한용적률까지 적용이 가능한 것을 110%까지 허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330%의 용적률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번 최대 용적률 추가 허용은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되며, 대책 발표일 이전에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신청한 곳은 제외된다.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 각종 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도 부여한다. 정비사업 초기 단계에서는 자금 확보가 어려운 만큼 사업비의 일부를 기금에서 융자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업계획 수립 용역비용과 총회 개최비용,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용역비 등으로 구역당 최대 50억원을 지원하고, 수요 등을 고려해 적정 수준을 지속적으로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또 연간 10~15조원 규모였던 정비사업 대출보증도 20조원으로 대폭 확대한다. 이를 통해 설계·계획수립 비용 등에 대한 최대 보증한도를 사업면적에 따라 현행 50억원에서 60억원으로 증액한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공사비 인상 등으로 추가 대출보증이 필요한 경우에는 총사업비의 50% 이내에서 추가 보증도 실시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기존 사업비의 60%를 보증 받은 후 사업비가 증가한 경우에는 증가비용의 60%까지 추가로 보증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건설사의 정비사업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시공사별 대출 보증한도도 상향할 예정이다.
재건축 조합과 1주택 조합원에게는 취득세를 감면하는 혜택도 추진된다. 규제지역 외에 지역에 한해 분양가격이 12억원 이하인 경우 지자체가 조례로 최대 40%까지 감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정비사업 분담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주택연금 개별인출 목적과 한도를 확대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주택연금을 교육비와 의료비 등의 목적으로 연금한도 50%까지 개발인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분담금 납부목적의 개별인출도 최대 70%까지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빌라 구입시 세제혜택·임대사업자 인센티브 ↑…비아파트 활성화
연립·다세대 등 '빌라'로 불리는 비아파트 시장을 살리기 위한 방안도 나왔다.
신축 소형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산정 시 이를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특례 적용 기간이 2025년 말에서 2027년 말까지로 2년 연장된다.
특례가 적용되는 소형 주택은 전용면적 60㎡ 이하이면서 수도권은 취득가격 6억원 이하, 지방은 3억원 이하인 다가구, 연립·다세대, 도시형 생활주택, 주거용 오피스텔 등이다.
신축이 아닌 기존 소형 주택을 구입해 등록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는 경우에도 세금 산정 시 주택 수에서 제외된다.
적용 대상은 올해 1월부터 2027년 12월까지 구입해 임대 등록한 전용면적 60㎡ 이하 비아파트(수도권 6억원 이하, 지방 3억원 이하)다.
생애 최초로 전용 60㎡ 이하 소형 비아파트(수도권 6억원 이하, 지방 3억원 이하)를 구입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취득세 감면 한도도 현재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늘어난다. 감면 적용 기간을 2025년에서 2027년까지로 2년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비아파트 구입자가 청약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청약 시 무주택으로 인정되는 비아파트 범위도 늘어난다.
현재 수도권은 공시가격 1억6000만원 이하, 지방은 1억원 이하인 전용 60㎡ 이하 비아파트가 적용 대상인데, 면적 기준은 85㎡ 이하로, 공시가격은 수도권 5억원 이하, 지방 3억원 이하로 대폭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단기 등록임대를 도입해 1가구만으로도 사업자 등록이 가능한 6년 단기 등록임대를 도입했다. 1주택자가 소형주택(아파트 제외) 구입 및 6년 단기임대 등록 시에는 1세대1주택 특례를 적용한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주택공급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 국민들이 안정적 주택공급을 확신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마련했다”며 “재건축‧재개발 패러다임을 규제에서 지원으로 전환하고, 3기신도시‧수도권 공공택지의 주택 공급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전방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비아파트 거래 숨통 트일 것…집값 잡기엔 역부족”
전문가들은 이번 공급 대책이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서울 집값을 잡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비아파트는 역전세, 전세 사기 문제로 구매 수요가 주춤하지만 여전히 서민주택 시장에서 내 집 마련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며 “임대차 수요가 많은 지역이나 서울 역세권 위주로 신축 매입 수요을 기대할 만하다”고 예상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신축 아파트 공급은 장기간 시간이 소요되지만 비아파트는 단기에 공급이 가능하다”면서 “비아파트를 활용한 신축 매입 공급은 아파트 쪽에 쏠려있는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번 대책이 급등하는 서울 집값을 잡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근 부동산 실수요가 모두 아파트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김효선 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서울 위주의 주택가격 상승과 장기적인 주거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방면 공급 정책이 담겨있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최근의 상승세를 주도한 강남권, 마용성 지역의 신축 위주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을 공급하는 대책과는 거리가 있어 해당 시장을 진정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서울 인근 주택공급 계획도 서울 전체 집값을 잡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규모 택지 개발이 가능한 그린벨트는 강남권일 텐데, 그 물량으로 강남 집값을 끌어내리고 더 나아가 서울 전역의 집값 안정으로 확대시킬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며 “굳이 그린벨트까지 해제할 필요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비사업 규제 완화 실현 가능성에도 의문이 따르고 있다. 관련 법안들은 모두 국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함 랩장은 “재건축·재개발 촉진법 제정과 도시정비법 개정안 및 시행령 개정 등 국회의 법 제·개정 속도가 정책 현실화에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