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기덕 쿵 쿵~기덕 따'
민요장구 장단을 들어보셨는지요. 굴곡진 삶처럼 묵직한 리듬은 달관한 촌부의 흐드러진 어깨춤 같지요. '덩~'하고 끝난 듯 무심하다가, 순식간에 ‘기덕’으로 잡아채는 민요 장단은 꼭 살풀이춤을 보는 느낌입니다. 허공을 흐르는 애환의 음률을 당겼다 풀었다 하는 장구재비를 보면 장구채가 마치 연을 조절하는 얼레 같지요.
민요장구 장단은 노래하는 이를 위해 헌신적입니다. 노래가 느리면 느림에 맞춰 주고, 빠르면 또 빠른 대로 흥을 살려 신나게 해주는, 늦다가 빠르다가 제 멋대로라도 노래를 위해 정성을 다하지요. 채를 잡고 그런 장단 속에 빠져 들다 보면, 순한 영혼들의 춤사위인 양 내 몸마저 떠오를 듯 가벼워집니다. 그러나 그 맛을 느끼기까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장구가 그케 만만해 보이나요? 당신이 장구를 무시하면, 장구는 당신을 백 배 무시합니다"
선생님은 신중했지만, 한낱 나무통 일뿐인 장구가 사람을 무시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언젠가는 될 것이니 뭐 그리 안달복달할 일도 아니라고 하면서요.
"아이구 또 너무 급해, 제발 박을 다 채우고 가요"
오 년째 똑같은 소리를 들을 땐 참말로 환장할 노릇이었어요. 분명 맞게 친 것 같은데 계속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도 몰라 고마 힘이 쭉 빠졌지요. 반복된 선생님의 지적에 어느 날은 순간적으로 장구채가 갈라지도록 장구를 세게 두들겨 패 버렸어요. 뭣 하려고 이 골치 아픈 걸 배우느라 아까운 시간에 돈까지 들이나 싶었지요.
하기야 처음에는 그까짓 거 두어 달만 배우면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교만이 철철 넘쳤지요.
"이 고비가 중요해요. 장구 좀 친다고 칭찬하면 잘 치는 줄 알고 고마 배우러 안 와요. 그러면 들장구에다 벌장구, 결국엔 막장구가 돼버려요. 장구 망신시킬까 봐 옳게 가르치려 잔소리하는 것이니 언짢게 생각마소"
선생님은 단호했어요. 잔소리 듣는 게 싫으면 재미있게 놀아주는 국악원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후비 파며 가르쳐도 옳게 할지 말지인데 취미로 온 사람들에게 진을 빼며 가르쳐 봤자 선생만 헛수고래요. ‘우짜꼬!! 고마 치아뿌까. 계속하자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태산 같고, 그만두자니 투자한 그동안의 돈과 시간이 아깝고'
오기가 생겼지요. 이왕 시작한 거 갈 데까지 가보자 싶었어요. 뼈에 새겨 넣는 일이라니 그건 죽어라고 연습하는 것밖에 없었어요. 시간 나면 시골 친정 빈집에 앉아 장구를 두드렸지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라며 머리가 얼얼해지도록 연습했어요. 그러다 어지러워 앉은 채 뒤로 넘어지기도 하면서요.
'장구님! 두들겨 패서 죄송합니다. 진정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제부터 정성껏 모실 것입니다'
허리 잘록한 장구를 볼 때마다 노리개 정도로 하대했던 것을 반성했어요. 그동안 '이까짓 것 연습 좀 하면 할 수 있겠지'라며 아주 시답잖게 대했지요. 그럴 때마다 장구는 ‘그래? 니가 나를 그렇게 만만하게 봤것다. 해 볼 테면 해봐’라며 나를 째려봤을 겁니다.
십수 년 전, 우연히 민요책을 넘겨보다가 민요가사의 감정표현에 마음을 뺏겼지요. 수소문해 바로 국악원으로 갔습니다. 첫 수업 날, 민요장구 장단이 어찌나 듣기 좋던지 장구도 같이 가르치는 곳으로 다시 옮겼어요. 하지만 막상 가락장단이 내게 오기까지는 태산을 넘고 또 넘는 일이었어요.
"좀 안다고 교만 떨면 장구가 당신을 무시해요. 쓴맛단맛, 신맛, 떫은맛 다 경험한 후에라야 제대로 장구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 주니까요. 장구나 세상살이나 그냥 얻어지는 게 없습니다" 선생님의 말은 언제나 서늘하고 엄격했습니다.
장구 앞에 앉으면 이제 교감부터 하지요. 몸통의 나뭇결에서 숲 속의 바람을 느껴요. 북편과 채편의 가죽에게도 말을 걸어봅니다. 민요장구 배우기란 다름 아닌 근원의 영역으로 스며드는 일이었어요. 장구채를 들면 개나 양, 소 또는 말의 심장박동이 장단의 고저로 흘러요. 마음이 마른 날이면 나는 그렇게 순한 영혼들과 호흡하며 무한한 풍요를 즐기곤 합니다.
‘덩~기덕 쿵 쿵~기덕 따’
◆김귀선 주요 약력
△경주 출생 △계간 '문장' 수필 등단(2008) △계간 '창작에세이' 평론 등단(2014) △대구수필가협회 부회장 △계간 '문장' 편집국장 △수필집 '푸른 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