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란 '진혼굿'...에세이스트 3-4월호
"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내가 신을 나 몰라라 하면 혹시 애들이 잘못될까, 그러면서 전전긍긍 살았어"
황혜란의 <진혼굿>은 이 선득한 고백으로 글을 연다. 모두 여섯 문장으로 이뤄진 연화보살의 말은 소설에서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으로 종종 활용되는 내적 독백이다. 황혜란은 이를 수필에 도입하여 연화보살의 독백을 전면에 배치,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압축해 보여준다.
본문은 3인칭 소설처럼 "그녀는"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십삼 년 전 추석 전날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이 음산한 문장은 현재 작은집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에 과거 어린 아들의 죽음이 오버랩되었음을 암시한다.
집안의 비명횡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자살했고, 아버지는 일찍 생을 마쳤으며, 큰오빠와 막내 남동생도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 이처럼 집안 남자들에게 내려오는 '뿌리 깊게 틀어박힌 죽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무당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그러니 그녀의 진혼굿은 '그런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 마음과 몸’을 담아낸 안간힘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굿을 할 수밖에 없는 사연과 준비과정을 세세히 서술한 후, '나'는 자신이 연화보살의 딸임을 밝힌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묘사 위주의 앞부분에서 '나'는 숨은 서술자로 기능하다가, 후반부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따라 초여름 깊은 산속에서의 굿의 정경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굿의 클라이막스는 연화보살이 "갑자기 굵은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이다. 친구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를 탔다가 사고 난 것이라며, "너무 미안해. 엄마"라고 말하는 그녀 앞에서 작은엄마와 아빠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이 운다. 끝으로 '나'에게 다가와 "누나, 나 이제 갈게" 인사를 건넸을 때, '나' 역시 울음이 터진다.
이로써 그동안 '떠나가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어떤 행동도 죽은 이와 소통이라는 생각'이 없던 '나'는 변화한다. 서술자이면서 엄마와 다른 캐릭터를 표상했던 '나'는 "애들이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면서 "빌고 또 빌"던 엄마와 달리, 굿의 장면이 "생경하기만" 했던 자이다. 이제 엄마의 비통함에 한층 가까워짐으로써, 죽음과 굿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파악해 왔던 것에서 벗어난다. "무엇이든 해야만" 견딜 수 있고 '뒤늦은 후회'와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인간의 무력함과 연약함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주 깊게 소리 내어 울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우두커니 서"있던 관찰자가 공감자로 변화하는 지점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 한혜경 주요 약력
△서울 출생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계간수필> 수필 등단(1998) △<한국문학평론> 평론 등단(2002) △평론집 <상상의 지도> <시선의 각도> △글쓰기 이론서 <말 글 삶> <생각 글 말-내 안의 가능성을 보다>△수필집 <아주 오랫동안> <시간의 걸음> <이상한 곳에서 행복을 만나다>(4인 공저) 등이 있다.
♣진혼굿-글/황혜란
[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내가 신을 나 몰라라 하면 혹시 애들이 잘못될까, 그러면서 전전긍긍 살았어. 우리 큰아들이 네 살 그 어린 나이에 허망하게 죽었는데 작은집 조카새끼가 스물다섯에 또 교통사고로 저세상을 간 거야. 우리 아들의 원혼은 못 달래줬지만 조카새끼도 내 아들 아닌가. 그 녀석을 잘 달래서 보내주면, 지노귀굿을 해서 잘 보내주면, 다시는 우리 집안에 이런 비명횡사는 일어나지 않겠지, 그런 마음으로 굿을 했어. 코딱지만 한 어린 자식을 보내도 그리 아픈데, 다 키워 죽인 자식 정을 떼는 그 아픔은 또 얼마나 클 것이야.] -연화보살
그녀는 십삼 년 전 추석 전날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 연화보살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의 막내아들과 꼭 동갑인 작은집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는 비보였다. 얼마나 크게 소리쳐 울었는지 모른다. 어찌 양쪽 집안에서 자식을 교통사고로 똑같이 잃을 수가 있단 말인가.
전화를 받고 오열하는 그녀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창백한 사촌동생이 누워있던 새벽의 응급실에서도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죽은 사촌동생이 화장터의 이글거리는 불 속에서 타들어갈 때도 다리에 말뚝이 박힌 듯 버티고만 있었다. 죽은 이를 보내는 행위 앞에 나는 빈틈없이 무기력한 인간이었다.
그녀는 녀석의 부모보다 더 비통하게 울어주었다. 부모가 어찌 스물다섯 해나 키우며 쌓은 정을 단번에 끊어낼 수 있으랴, 자식을 잃어본 어미의 마음을 나 아니면 누가 알랴, 서럽게도 울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그녀는 죽은 아들을 위한 것인 양 조카자식을 위한 진혼굿에 심혈을 기울였다. 가장 좋은 날을 잡고, 망자를 위한 상차림도 더할 나위 없이 거하게 차렸다. 통돼지 한 마리를 배를 갈라 속을 비워 준비했다. 큼직한 소갈비 한 짝도 주문해두었다. 도매시장에 나가서 갖가지 과일을 직접 골라왔다. 모둠전도 종일 쪼그려 앉아 부치고 또 부쳐댔다. 삼색 나물을 관절이 시큰하도록 꼭 짜서 무쳐두고 생선과 해물 등도 깔끔히 손질해두었다.
넉넉한 사람들이라면 굳이 억울하게 죽지 않아도 넋을 달래기 위한 굿을 한다. 모두가 사람의 혼을 이리 정성스레 보내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도 젊은이가 사고로 죽거나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다면 필시 원혼을 위해 굿을 해줘야 한다고 그녀는 늘 말해왔다.
스물다섯. 꽃이 피기도 전에 져버렸으니 망자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 것인가. 그녀는 자신의 큰아들과 꼭 같이 교통사고로 생을 달리한 조카자식이 하염없이 가엾었다. 집안에 드리운 비명횡사의 대물림을 꼭 끊어내고 싶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녀의 할머니도 무당이었다. 그녀의 뿌리, 대물림의 시초였다. 할머니의 남편인 할아버지는 집 뒤편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아버지는 일본 노무대에 끌려갔다가 병을 얻어 돌아와 일찍 생을 마쳤다. 그녀의 큰오빠와 막내 남동생도 어린 나이에 병으로 모두 죽었다. 이 집안에 뿌리 깊게 틀어박힌 죽음의 고리를 무엇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빌고 또 빌어야만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노라 되뇌었다.
유독 집안의 남자들에게 불운이 반복되었다. 죽음의 신이 그녀의 조막만 했던 아들에게도, 조카자식에게도 내려앉았다. 그런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혼굿에 그녀는 온 마음과 몸을 담았다.
진혼굿이 벌어지던 날 밤에도 나는 그곳에 머물렀다. 우리는 무언가를 했지만 또 아무것도 하지 않음과 같았다. 떠나가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어떤 행동도 죽은 이와 소통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나는 홀로 완벽하게 외로웠다.
어스름한 저녁, 굿당으로 모두가 출발했다. 트렁크 가득 실린 갖가지 음식을 내려 너른 교자상 세 개를 쪼르르 붙여서 제단을 차렸다. 그녀의 법당에서 장구며, 징, 방울이 외출하는 날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신속히 가져다주며 분주했다. 그녀도 챙겨 입을 옷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머리를 한 번 더 단정히 빗었다. 방에 딸린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네 명의 무당이 굿판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망자를 위한 화려한 치장이었다. 선홍빛의 립스틱을 칠하고 분도 두텁게 두드려 발랐다. 한 구절마다 갈아입을 옷의 색은 노랑, 빨강, 파랑, 초록으로 눈이 쨍하게 밝고 호화스러웠다.
굿 비용이 비싼 이유가 있다. 엄청난 노동의 대가이고 정갈한 마음으로 지극한 정성을 바쳐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려질 음식을 돈 주고 사면 좋지만 그러면 정성은 반감된다. 하나하나 조심조심 지극하게 마음을 기울여 음식을 마련한다. 그녀는 수일 전부터 시장을 들락거리고 음식을 마련하느라 입술이 부르틀 지경이었다.
초여름의 산속은 한기가 돌았다. 나무들 사이로 구슬픈 풍악이 울려 퍼졌다. 굿당은 보통 깊은 산속에 위치한다. 망자를 위해 소리치고 울어도 전혀 방해받지 않을 만큼 세상과 동떨어져 있어야 한다. 무당들은 자신이 맡은 부분에 최선을 다하며 악사의 가락에 몸을 맡겼다. 굿이 벌어진 방의 열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춤을 추며, 부채를 들었다가 칼을 휘두르는 무당의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연신 뿜어져 나왔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얼굴은 땀으로 번질거렸고, 한복 겨드랑이가 흥건히 젖어버렸다.
아들을 잃은 작은엄마 작은아빠는 벽에 붙어 서서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동생들과 그 옆에 함께 서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작은엄마는 눈물이 없었다. 사촌동생이 누워있던 응급실에서도 멍하니 서 있기만 했었다. 머리가 다 하얗게 세어버린 작은아빠는 고개를 뚝 떨군 채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연화보살, 나의 엄마는 목에 핏대가 서도록 악사의 피리에 맞춰 소리를 뽑아내었다. 당신의 잃어버린 아들을 위한 노래인지도 몰랐다. 서럽게 울며 작은엄마의 손을 잡았다가 작은아빠의 어깨를 쓰다듬기도 했다. 그들은 그제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아들의 온기라도 느껴지는 것일까.
그녀는 서글피 노래를 하다가 갑자기 굵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그날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건데 미안해. 엄마도 알지? 나 오토바이 한 번도 몰아본 적 없는 거. 아, 글쎄 그날따라 친구 녀석이 그렇게 같이 타고 가자고 나를 끌어대는 바람에 내가 어쩔 수 없이 타게 된 거야. 너무 미안해. 엄마. 내가 엄마한테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이렇게 떠나서 미안해..."
작은엄마는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오냐, 오냐. 안다. 알아..."
다리에 힘이 풀린 작은아빠는 주저앉으며 울기 시작했다. 굿판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 방에 있는 숨 쉬는 존재들은 모두가 함께 울고 있었다. 무당은 춤사위로, 악사는 피리로, 나는 온몸으로 통곡했던 밤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뜨거운 손이 나를 감쌌지만 나는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인지 누군지 모를 존재가 내게 말했다.
"누나, 나 이제 갈게"
귀가 멍멍하고 말문이 막혔다. 나를 잘 따르던 사촌동생이 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인가. 지켜보며 눈물을 가까스로 삼켰던 나는 급기야 울음소리가 터졌다.
나는 신내림 굿과 진혼굿을 자주 보아온 무당의 딸이다. 엄마가 그 속에 있지만 우리 엄마가 아닌 듯 늘 장면 장면은 생경하기만 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도록 거하게 차려진 음식. 죽은 이를 보내는 과정은 이처럼 화려하고 돈이 많이 든다. 이렇듯 많은 노력과 정성에 금전까지 들여가며 굿을 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 연유를 죽음의 하찮음, 헛헛함에서 찾았다. 사람이 죽는 장면이나 상황은 어이없이, 예고 없이 일어나곤 한다. 특히 준비되지 못한 죽음 앞에서 남은 이들의 선택은 강제된 무기력뿐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끔찍한 사고 앞에선 경직되고, 병들어 죽어가는 이 앞에선 눈물이나 떨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보낸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맺힌 설움이라도 터져 나올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의미 앞에서 남은 사람들은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가슴 속 깊은 보석까지 꺼내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떠났지만, 지금이라도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라면서.
어제까지도 곁에 있었던 심드렁한 일상이 오늘은 너무 값진 소원이 되어버릴 것이다. 매우 늦었지만, 그 일상의 소중함을 잊은 대가로 진혼굿을 하는지 모른다. 나는 무당 엄마에게서, 사촌동생을 날려 보낸 작은엄마에게서 뒤늦은 후회를 엿보았다. 속절없이 보낸 죽음의 대물림이 제발 이번 대에서 끝났기를. 집안 여인들의 곡소리가 울렸던 깊은 밤, 산속의 굿당에서 나는 역시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아주 깊게 소리 내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