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평등의 핵심, 다양성·관점…여성과 남성 차이 인정해야

"관점에 따라 나무꾼이 선녀를 납치한 성폭행범으로 보일수도"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아무리 법과 제도가 잘 갖춰진 사회라 하더라도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법과 제도 그리고 현실 사이에 괴리가 큰 이유로, 우리 사회 속에서 성평등 의식 문화 확산과 담론이 형성돼야 하는 이유다”

성평등 정책의 기본 틀을 담은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이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힌 가운데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1일 여가부의 성평등 정책에는 성에 따른 사회적 역할, 고정관념에 따라 기회가 제약되는 것을 방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강조해 주목된다. 정 장관은 특히 모든 사회영역에서 성(性)평등이 뿌리 내려 실행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원장 민무숙) 주최로 열린 2017년 제4차 포럼 본(forum BORN·제45회)에서 ‘학문, 시민사회 그리고 성평등 정치’ 제하의 특강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 장관에 따르면 성평등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성평등 정책은 여성과 남성이 모두 인간의 존엄성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권리·책임·의무를 공평하게 나누는 정책이다.

여가부를 비롯, UN(국제연합)과 EU(유럽연합) 등 다수의 국가에서는 성(性)에 대한 영문표시를 섹스(sex) 대신 젠더(gender)로 표기하고 있다. 섹스가 생물학적으로 남녀 차별을 나타내는 것과 달리 젠더는 대등한 남녀 사이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어 평등에 있어 모든 사회적인 동등함을 실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이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2017년 제4차 포럼 본(forum BORN·제45회)에 참석해 ‘학문, 시민사회 그리고 성평등 정치’를 주제로 한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정 장관은 젠더를 내포한 성평등 정책이 우리 사회에 도입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지식, 윤리, 법, 상식처럼 보편적·중립적·객관적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관점에 따라 형성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 선녀는 남편을 두고 아이들과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비정한 아내로 비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무꾼 남편은 납치범이자 성폭행범으로도 볼수 있다는 것이 정 장관의 새로운 해석이다. 젠더 관점에서 보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시각으로 사건을 보느냐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 장관은 "어릴적에는 선녀와 나무꾼 동화를 접하면서 나무꾼을 놔두고 하늘로 올라간 선녀가 매정하고 나무꾼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나무꾼이 선녀를 납치한 셈이어서 납치범도 될 수 있고, 성폭행범이라는 주장도 펼 수 있을 것"고 관점의 차이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회가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제28대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그같은 경우라는 것이 정 장관의 설명이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언, 세계의 지도자로서 미국의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한 윌슨 대통령은 그동안 강한 남성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그의 자서전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최근 ‘윌슨 대통령의 이미지가 남성적인 시각에서 왜곡·각색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고 정장관은 설명했다. 실제 그는 문제 발생시 주로 아내를 비롯해 여러 사람과 주요 사안을 의논하며 풀어내는 등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이 더 강하게 드러났으나, ‘강한 남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에게 남성적인 이미지를 덧씌었다고 정 장관은 풀이했다.

이에 정 장관은 젠더의 핵심인 다양성과 관점을 강조, 성평등 사회를 활짝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문재인 정부 첫 내각 여성 비율이 31.6%에 이르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지금 한국 사회는 ‘성평등 전환기’”라면서도 “문제의식을 넘어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하며, 상당한 구조적 변화도 요구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장관은 또한 “성평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민주사회를 실현하려면 향후 5년간의 정책 비전을 올해 안에 만들어야 한다”며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 계획’ 수립과 함께 공공부문 여성 고위직을 늘리는 등 성평등 제고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 장관은 또 저출산 문제의 시급한 해소를 강조하면서 "정부세종2청사가 자리잡은 세종시와 한국전력 등 주요 공기관이 입주해있는 나주시가 국내에서 출산율이 높은 대표적인 모범도시"라면서 고용이 출산율과 관계가 있음을 역설하기도 했다.

한편 정 장관의 성평등 사회 구현 강의가 이뤄진 포럼 본은 남녀인사들의 축적된 역량성과 공유로 여성 인력의 지속 성장을 지향하고 있으며,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원장 민무숙)이 주관하고 있다.

이날 본 포럼에는 이번 행사를 주최한 민무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을 비롯해 손연기 한국지역정보개발원장,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변혜정 한국 여성인권진흥원장, 조애진 육아방송 이사장, 최순자 인하대학교 총장, 한무경 효림그룹 회장(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 류은경 자인메디병원 이사장,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김교식 아시아신탁 회장, 송병국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오종남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김홍기 UN-NGO 대표 등 각계 유명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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