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과 부처 간 엇박자로 정책만 남발, “수익성 보장 못해”
“사업하고 싶어도 법제도 미비, 사업처 사라져 못해” 불만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원전, 태양광, ESS에 종사하는 한국 에너지 기업들이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원전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우 내수시장 축소와 난망한 수출로 판로를 잃고 있다. 또한 에너지 신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정쟁과 정부지원책과 제도 미비 등 정책 엇박자로 인해 본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 전환’의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후속조치가 속도감을 잃어 국내 에너지 기업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형국이다.
◇ 원전에서 에너지 신사업으로 갈아타기 만만치 않아
정쟁과 정책 엇박자에 발목 잡힌 대표적인 기업이 효성중공업이다.
효성중공업은 원자력발전소에 초고압 변압소를 납품해왔다. 다른 사업자와 치열한 경쟁 과정을 거쳤지만 효성중공업의 캐시카우 중 하나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신규 원전 사업이 하나둘 폐쇄되는 바람에 기대수익이 줄었다. 신한울 3,4호기, 영덕 천지 1,2호기, 삼척 원전 1,2호기 모두 효성중공업의 잠재 납품처였다.
기대했던 원전 수출도 여의치 않자 실망감만 증폭됐다. 2019년으로 최종 사업자 선정이 미뤄진 사우디 원전 사업이나 협상이 진행될 뿐 윤곽이 잡히지 않는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효성중공업이 진출한 전력사업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전압형 초고압직류송전(HVDC) 사업이나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전력제어기술은 기술연구소가 수년째 역점을 두고 개발 중이다.
특히, 해상풍력에 적용될 수 있는 전압형 HVDC 기술은 제주에서 20MW 실증에 성공해 나주에서 한국전력과 함께 200MW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들 사업은 대규모 장치사업이기 때문에 수출을 위해선 일정규모를 다년간 운영해 노하우를 획득하는 것이 필수다. 그런데 실증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국내 시장이 그만큼 협소하기 때문이다.
실증 없이 수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에서 실증데이터를 쌓을 수도 없다. 설상가상인 셈이다. 한전과 협업하는 나주 200MW급 사업을 활로를 찾고 있지만 혹서에 구슬땀을 흘리기는 마찬가지다.
효성중공업은 태양광 설계조달건설(EPC)사업과 에너지저장장치(ESS), 풍력사업에도 손대고 있다.과거 산업부와 함께 5WM급 풍력터빈을 개발한바 있지만 최근 전북 부안 위도 앞바다 해상에 건설 중인 서남해상풍력사업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움직임이 없다
두각을 나타내는 사업이 있다면 국내 시장 30% 가량을 점유해 시장 선도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ESS 사업과 태양광 EPC 사업이 있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ESS 사업은 이번 산업부 신재생 공급인증서 개정고시에서 유예기간이 지난 후 태양광-ESS 발전설비에 부과되는 가중치가 하향 조정될 전망이기 때문에 난관이다. 현재도 ESS에 삽입되는 전지 수급이 어려워 곤란을 겪고 있다.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ESS에 부과되는 공급인증서(REC)의 가중치가 5에서 4로 낮아지면 ESS 가격이 40% 가량 낮아져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ESS는 1MWh 당 시장가격이 5억원 가량이라고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추산했는데 3억원 가량돼야 사업성을 평가받게 된다.
◇ “LG화학, 삼성SDI, 코캄 전지만 인증하는 정부 정책이 전지 품귀현상 빚어“
전지가 품귀현상을 빚자 ESS를 태양광발전 설비와 결합해 태양광-ESS 마이크로그리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기업의 양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있다.
두산중공업, 신성ENG, LS산전 등은 태양광-ESS 마이크로그리드 사업을 위해 기술을 개발하거나 타당성 검토를 하고 있는데 자신감 있게 사업화에 나서고 있지 못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인증을 주는 전지를 삼성SDI, LG화학, 코캄 외 다른 전지로 확대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산 전지 가격 폭등으로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니 신재생에너지와 연결해 태양광과 풍력의 간헐성을 보정하는 용도의 ESS엔 CATL이나 BYD와 같은 외산 전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태양광 EPC는 사업을 하고 싶어도 사업할 땅을 구하기 어려워 개점휴업 위기에 몰렸다.
임야태양광에 대한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가중치가 1에서 0.7로 낮아지고 과거 태양광 설치가 가능했던 경사면에서 사업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태양광 EPC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산업부가 하반기 국회에서 대규모 태양광발전 사업이 가능한 계획입지 확보를 위한 법률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이미 지자체와 지역 토착 경제인 중심으로 사업이 기획되고 있어 기존 기업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 태양광 기업관계자의 호소다.
산업부가 임야태양광을 규제하고 태양광 설치 경사각도를 조정하는 이유는 환경부의 보이지 않는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환경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업계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원전과 석탄발전의 대안인데 환경부가 규제 일변도로 접근하고 있다고 볼멘 소리다.
실제로 환경부는 환경보호를 이유로 생태등급이 높은 지역에서의 풍력사업을 어렵게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최근엔 풍력 블레이드 회전시 생기는 저주파에 대한 규제에도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태양광기업 대표자는 "시민단체 출신이 장차관을 맡고 있는 환경부의 조치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재생에너지는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의 핵심인데 규제로 보급확산을 방해하는 일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태양광 모듈 사업도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
한화큐셀과 같은 기업은 미국 세이프가드 조치에 맞서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는 것으로 난관을 뚫고 있고 현대중공업 그린에너지는 현대그룹 계열사와 함께 태양광발전사업을 기획하며 체력을 비축하고 있지만 신성이엔지, LS산전, LG전자 등 대다수 기업들은 묘수가 없다.
산업부가 주택용 전기요금에도 계시별 요금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으나 2021년에야 세종시에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관련 사업을 시작하기 어렵다. 계절과 시간별로 전기요금을 달리하는 계시요금제가 주택용에도 적용되면 소규모 태양광-ESS발전사업은 물론 에너지효율화 기기를 생산하는 기업이 융성할 수 있다.
전기요금이 값싼 시간대에 전력을 ESS에 비축해뒀다가 비싼 시간대에 전기를 쓰면 경제적인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택용 계시요금제 시행일이 2021년으로 예정됐고 지역도 세종시로 한정돼 사업자들은 망연자실할 뿐이다.
에너톡으로 유명한 인코어드 테크놀로지의 최종웅 대표는 계약고가 많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인코어드 테크놀로지는 에너톡을 3만 가구에 설치하고 국민DR사업 등에 참여하는 등 에너지효율화 사업에 잔뼈가 굵은 기업이다.
최근엔 전력중개사업에도 참여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최 대표의 말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요란만할뿐 속빈 강정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충분히 갖게 만든다.
◇ 정쟁이 발목 잡은 전력중개사업, 올해 12월 법 시행되는데 9월부터 3년간 실증사업 시작
올해 12월 법이 시행될 소규모 전력중개사업도 기업인들의 원성을 사긴 마찬가지다.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은 당초 2016년 6월 당시 우태희 차관이 주도적으로 발의했으나 올해 5월 29일에야 전기차충전사업과 함께 국회를 통과했다. 발의에서 입법까지 2년 이상 걸린 셈이다.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은 주택이나 건물에 설치된 소규모 태양광발전설비가 생산한 전기를 중개사업자가 모아 전력거래소가 개설한 시장에 파는 사업이다.
태양광발전사업자는 한국전력에 생산한 전기를 팔거나 전력거래소의 전력시장에 판매할 수 있다. 한전에 팔 경우 한달 평균 가격을 받고 전력거래소 전력시장에 팔면 시간별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요즘같은 폭염에 낮동안 전력수요가 폭증해 전력예비율이 떨어질 때 전력거래소는 블랙아웃을 예방하기 위해 전력피크시간대에 발전원이 다양한 전기를 대량으로 비싸게 사들일 수 있다.
전력중개사업자는 이때 자신이 모인 자원이 생산한 전기를 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소규모 태양광발전사업자는 사업자 등록부터 전력판매까지 중개업자에게 맡길 수 있어 시간과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전력중개사업인만큼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법시행이 12월인데 산업부가 9월부터 3년부터 실증사업을 에너지기술평가원 과제로 실시하기 때문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전력중개사업 실증사업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대략 △전력중개사업에 참여할 자원을 모집해 자원들이 발전을 얼마나 할지 예측하거나 △소규모 전력중개업자를 통해 소규모 태양광발전사업자의 전력거래 입찰도 전력거래소에 하거나 △이 경우 시장에서 효과가 있는지 등을 실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실증사업이 마치면 효과에 따라 산업부가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에 인센티브 부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실증사업 없이도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이 진행될 수 있다. 등록만 하면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자가 될 수 있고 소규모 태양광발전사업자의 발전사업을 대행하거나 설비를 AS하는 일은 지금도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을 진행하는 사업자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 기초체력으 떨어졌다는 점이다.대기업 가운데 포스코에너지, 한화에너지, KT 등이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에 참여하고 중소기업 가운데는 인코어드 테크놀러지와 해줌 등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대기업은 자금력이 풍부하니 별 걱정없지만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특히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에 참여하는 사업자는 고가의 전용 지능형전력량계(AMI)를 사용해야 하는데 부담이 만만치 않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단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에 참여하는 중소기업 지원책을 모색하고 있으며 고가의 전용 AMI를 보완하기 위해 한전이 보급한 AMI에 별도의 장치를 부착해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에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전력중개사업에 참여 의사를 밝힌 사업자들은 이유가 정쟁 때문일지라도 산업부가 인센티브 부여없이 12월부터 전력중개사업을 시행한다는 것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고정돼 있는 마당에 효과적으로 자원을 모집하고 전용 AMI를 전력중개사업자가 스스로 부담해 설치해야하는 처지에서 정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것이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자들이 입장이다.
여전히 산업부 관계자는 사업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줘야하느냐고 되묻고 있어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자들과 커다란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지나간 시간이 고스란히 소규모 전력중개사업자의 부담으로 돌려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