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무원 출신 최민호 작가의 심금을 울리는 동화 이야기
1.
그 왕국에는 왕국을 지키는 두 보물이 있었습니다.
보물 하나는 높은 종루 위에 매달려 있는 종이고, 또 다른 보물은 높은 성곽 위에 놓여진 북이었습니다.
종루 위에는 큰 종과 그 주위에 작은 종들이 매달려 있어, 큰 종과 작은 종들이 어울려 ‘땡그랑 땡그랑’ 울릴 때면, 아름다운 종소리가 왕국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날이 계속될 때면 매일 저녁 종루 위의 종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종소리가 울리면 왕국의 백성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경건하게 기도를 하거나 신의 축복을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종은 왕국의 평화를 지켜주는 수호자였습니다.
왕국의 성곽 위에는 큰 북과 작은 북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북들은 외적의 침입이 있으면 ‘둥둥둥둥’ 울려 적의 침입을 알려주었고, 백성들은 성위로 올라가 침범하는 적과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큰 북과 작은 북이 번갈아가며 울리면 용사들은 사기가 하늘 끝까지 올라갔습니다. 북은 왕국의 안전을 지켜주는 파수꾼이었습니다.
종루의 종과 성곽의 북은 동시에 울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종소리가 울릴 때는 북소리는 잠자코 있었고, 북소리가 울릴 때면, 종소리가 조용히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고 서로의 소리가 잘 들릴 수 있도록 배려하였던 것입니다. 종소리와 북소리는 어느 때 누가 울릴 때인지를 잘 알아 먼저 나서는 법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소리를 들을 때는 마음이 경건해졌고, 북소리를 들을 때는 팔과 다리에 힘이 나고 용기가 솟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왕국의 백성들은 풍요롭고도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모두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며 베풀며 살고 있었습니다. 왕국은 나날이 발전하면서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2.
이 왕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웃 왕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은 욕심이 많고, 신하들은 시기심이 많았습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왕과 신하가 먼저 차지하여 백성들은,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하기만 했습니다. 백성들은 잘사는 이웃 왕국을 부러워하여 기회만 있으면 도망쳐 이웃왕국으로 떠났습니다. 백성들이 이웃왕국으로 도망치는 것을 본 왕은 매우 못마땅하였습니다.
하루는 왕이 신하들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왜 우리 백성들이 이웃 왕국으로 도망쳐 가는가? 우리도 이웃왕국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라. 백성들이 이웃왕국으로 도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라고 분부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왕과 신하가 욕심이 많아, 백성들이 일을 하여도 자신들이 먼저 차지하는 나라에서 백성들이 잘 살 수는 없었습니다. 이때 말 잘하고, 재주가 뛰어난 신하가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사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 아니라, 이웃 왕국을 쳐들어가서 빼앗으면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지만 이웃 왕국에 북소리가 있으니, 어떻게 우리가 쳐들어가 이길 수 있단 말이냐?”
하고 왕이 물었습니다.
재주 좋은 신하는,
“저에게 말 잘하는 사람 4명만 골라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저 왕국을 쳐서 이길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왕은 믿어지지 않았지만, 신하의 말을 믿고 왕국에서 가장 말 잘 하는 사람 4명을 뽑아 신하에게 주었습니다. 머리 좋은 신하는 말 잘하는 사람 4명에게 각각 비밀스런 지령을 주고 훈련을 시켰습니다.
3.
훈련받은 4명의 말 잘하는 사람들은 몰래 이웃 왕국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한 명은 백성으로 위장하여 백성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한 명은 종치는 법을 배워 종루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한 명은 북치는 법을 배워 성곽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한 명은 신하로 위장하고 왕이 사는 왕궁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네 명의 말 잘하는 적국의 사람들은, 각각 숨어 들어간 곳에서 열심히 말을 만들어 퍼뜨렸습니다.
4.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되자, 왕국에서는 매일 저녁 종소리가 ‘땡그랑 땡그랑’ 울리며 사람들을 종루로 부르거나 기도의 시간으로 인도하였지만, 성곽의 북소리는 울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종이 울릴 때마다, 사람들은 종소리에 감사하며, 종루의 종을 칭찬했습니다. 종루에 올 때마다 감사의 선물을 놓고 가거나 종에 입을 맞추고 가곤 하였습니다.
반면에 북소리는 울리지 않으니, 성곽 위의 북을 찾아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북소리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치 북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북소리로 위장한 말 잘하는 사람이 작은 북들에게 속삭였습니다. 매일 같이 속삭였습니다.
어느 날 작은 북 하나가 큰 북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대장님. 우리가 너무 무시당하는 거 아닙니까? 종은 저렇게 매일 울려 사람들을 부르고 칭송을 받는데, 우리는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으니, 우리들이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기나 하겠습니까?”
큰 북이 말했습니다.
“잠자코 있게나. 앞을 똑바로 보고... 언젠가 우리를 알아줄 때가 있을 거야. 우리는 오직 앞만 보고 적이 쳐들어오는지만 보고 있으면 돼. 그런 것 신경쓰지 말게.”
하며 나무랬습니다.
작은 북은 큰 북의 말에 잠자코 있었지만, 내심 못마땅하였습니다. 작은 북은 다른 작은 북들에게 작은 소리로 불만을 말했습니다. 작은 북들은 처음에는 큰 북의 말을 들었지만, 매일 불만을 이야기하는 작은 북의 말에 몰래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군의 말에 속아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세월은 여전히 평화롭게 흘러갔습니다.
매일 종소리를 울리는 종은, 평화로운 세월이 길어질수록 종루를 찾는 사람들이 어느 때부터인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백성들 사이에, 아침 저녁으로 종루를 찾아갈 것이 아니고, 하루 한 번만 가면 될 것 아니냐는 말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루에 가서 종에게 감사를 드릴 일이 뭐가 있느냐는 말도 백성들 사이에 퍼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하였지 종이 무슨 일을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백성으로 위장한 적국의 말 잘하는 사람의 말이 백성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종소리에 감사기도를 하는 것이 귀찮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자기 일에만 몰두할 뿐, 예전처럼 경건히 기도를 드리거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작은 종이 큰 종에게 말했습니다.
“사부님. 우리가 이렇게 매일 헌신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요? 사람들을 보면 세상의 평화가, 기도와 감사의 예배 덕분인 줄 모르고, 그저 저절로 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이렇게 종루를 찾는 사람들이 줄다 보면 우리를 영영 잊지는 않을까요?”
큰 종이 말했습니다.
“그런 생각 말고... 은은히 종소리를 울리게. 우리는 변함없이 종소리를 울려 신께 은혜를 구하고 사람들을 겸허하게 하는 것 뿐이야. 깨닫는 사람들은 깨닫기 마련이네.“
라고 타일렀습니다.
작은 종은 큰 종의 말에 조용히 있었지만, 내심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종으로 위장한 말 잘하는 사람의 말에 귀가 솔깃해 한 것이었습니다. 작은 종은 다른 작은 종들에게 작은 소리로 불평을 말하고 다녔습니다.
세월은 강물같이 무심히 흘러갔습니다.
왕국의 똑똑하고 말 잘하기로 유명한 홍보대신이 하루는 왕을 찾아왔다.
“왕이시여. 왕이시여. 요즘 나라 안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니 이런 말이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종루의 종들은 매일매일 종소리를 울리는데 평화로운 이 시절에 매일 울리는 종소리가 시끄럽다는 것입니다. 저 종소리를 이틀에 한 번으로 줄이면 백성들이 더 평온하게 더 열심히 자기생활을 할 수 있겠다고 합니다. 왕께서 살펴주십시오“
홍보대신은 언제부터인지 말 잘하는 적군의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왕은 홍보대신의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사실 왕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종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는 것이 싫증나고 있었던 참이었습니다. 왕은 종루의 큰 종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종소리를 이틀에 한번으로 줄이고, 소리도 크기를 반으로 줄였으면 좋겠소.”
왕의 말을 들은 큰 종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되옵니다. 이 나라의 평화는 하늘의 은총 없이는 지켜질 수가 없습니다. 하루도 겸허하게 신의 축복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매일매일 종소리를 울리도록 해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난감해진 왕이 홍보대신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홍보대신은 백성들의 여론을 내세워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왕이시여. 그것은 종들의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소리를 줄이면 저들의 영향력이 줄고 저들을 찾아오는 백성들이 줄어들까봐 그러는 것입니다. 저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여론이 다 그렇습니다.”
하였습니다.
왕은 홍보대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결국 종소리는 반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왕국의 백성들은 조용히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왕과 홍보대신을 칭송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작은 북이 말하였습니다.
“저 종을 보아라. 매일같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결국 소리를 줄이게 되었구나. 사람들도 이제는 종루만 찾지 않고 우리 성곽의 북도 찾아 오겠지.”
하였습니다.
과연 사람들 중에는 종소리가 줄어드니, 성곽의 북에도 관심을 갖는 것도 같았습니다. 오랜기간 울리지 않고 있던 북을 새삼 발견한 것입니다.
어느 날 홍보대신이 왕을 찾아와 조용히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여론이 북이 아무 역할을 아니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도 가끔 둥둥 울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왕은 홍보대신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려 큰 북을 불러 말했습니다.
“가끔 북소리를 울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었으면 좋겠소. 그래야 백성들이 정신차리고 나라를 지킬 것 아니요?”
라고 했습니다.
왕의 말을 듣자 큰 북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북은 전쟁이 나지 않으면 절대로 울려서는 안됩니다. 북이 자주 울리면 백성들의 감각이 무뎌질 것입니다. 그럴 때가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아니 됩니다.”
라고 강력하게 말하였습니다.
큰 북의 말에 곤란해진 왕은 다시 홍보대신에게 물었습니다. 홍보대신은,
“왕이시여, 왕이시여. 저 북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저들은 지금 아무 일도 안하고 놀고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일하는 게 싫어서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여론이 그렇습니다.”
하였습니다.
왕은 홍보대신의 말을 들어 북들도 가끔 북소리를 울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어느 날 성안에 북소리가 둥둥 울렸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라 성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연습으로 울린 것이라 했습니다.
북이 등등 울리던 날, 종소리는 소리를 멈추어야 했습니다. 북소리가 나면 종소리는 동시에 울려서는 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날 또 북소리가 둥둥 울렸습니다. 종소리는 이번에도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며칠동안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 날이 생겼습니다.
작은 북이 어느 날 신이 난 듯 큰 북에게 말하였습니다.
“북소리가 나니까 종소리가 울리지 못하네요. 우리가 이제 중요한 줄 아는 모양이지요. 북소리를 더 크게 자주 울릴까요?”
이 말을 듣고 큰 북이 말했습니다.
“그런 못된 말을... 북소리는 나서도 안되고 종소리가 멈추어서도 안되는 법. 우리가 가만히 있고 종소리가 더 크게 울려야 하는 것인데...”
하면서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작은 종이 큰 종에게 말했습니다.
“북소리가 나도 그것은 진짜 전쟁이 아니니까 종소리를 멈추어서는 안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멈추고 있으니, 북소리가 자꾸 울리는 것 같아요.”
이 말을 듣고 큰 종이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종소리와 북소리가 동시에 울리면 큰 일이 나요. 북소리가 나서도 안되고 종소리가 멈추어서도 안되는 법인데... 북소리를 내지 말아야 종소리를 낼 수 있는데...“
하면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종소리는 북소리 눈치를 보랴, 북소리는 종소리 입장을 보랴, 사람들이 종소리도 북소리도 못 듣는 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아침에는 북소리를, 저녁에는 종소리를 듣는 일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는 성곽으로, 저녁에는 종루로 달려갔습니다. 어느 날은 같은 시간에 종소리와 북소리가 동시에 울렸습니다. 작은 종과 작은 북 사이에 서로 소통이 안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자, 종루의 작은 종이 큰 종에게 성곽의 북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성곽의 작은 북 또한 큰 북에게 종루의 종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큰 종과 큰 북도 차츰차츰 감정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왕국의 사람들은 점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5.
어느 날이었습니다.
큰 북이 둥둥둥둥 크게 울렸습니다. 이웃나라 왕국의 적이 침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큰 종이 종을 땡땡땡땡 더 크게 울렸습니다. 북소리에 지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큰 북은 더욱 큰 소리로 북을 둥둥둥둥 울렸습니다. 종루의 종소리도 땡그랑땡그랑 더욱 더 커졌습니다. 왕국의 백성들은 종루로 성곽으로, 뿔뿔이 이리저리 달려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적들이 성안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북을 찢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종루에 올라 종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왕은 홍보대신을 불렀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백성이 죽고, 어리석은 왕도 팔다리를 찢겨 죽었습니다. 왕국은 불타고 말았습니다.
왕국에서는 종소리도 북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 미노스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해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 차관급 고위직을 세번이나 거쳤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도쿄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교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공직 퇴임 후 고려대·공주대 객원교수, 배재대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홍익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30여년의 공직생활 퇴임후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새움출판사)'라는 단편소설과 동화가 있는 이야기책을 출간, 동화작가로 데뷔했다. 단순히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童話)'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남녀노소 모두를 아우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화(動話)'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