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무원 출신 최민호 작가의 심금을 울리는 동화 이야기
1.
아침이 되었지만 덕보는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눈물이 자꾸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덕보는 작은 소리로 불러 보았습니다. “엄마...” 그러지 않으려 해도 목소리에 자꾸 울음이 섞여 나왔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고, 엄마의 따뜻한 젖가슴 품이 얼굴에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엄마가 마구 보고 싶었습니다. “덕보야. 덕보야. 일어나야지. 오늘은 웬일로 늦잠을 자는구나. 해가 밝았어요.” 문밖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벌써 일어나서 호랑이와 사슴, 그리고 토끼들과 털을 부비며 인사를 나누어야 할 시간이 지났던 것입니다. “예. 나가요...” 대답은 하면서도 자리에서 냉큼 일어서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꿈이 생생했습니다. 엄마와 떨어진지가 벌써 얼마나 되었을까요. 떡 가게 앞에서 떡을 팔다가 가게주인에게 매를 맞고 그림의 떡 장수 선생님 손을 잡고 이곳까지 온지가 오래된 것만 같았습니다. “덕보야, 덕보야..” 선생님은 덕보의 방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예, 나가요...” 덕보가 주섬주섬 일어섰습니다. 선생님은 덕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 “덕보, 너 울었구나..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니?” 선생님은 덕보의 얼굴을 보자 금새 알아차리신 것 같았습니다. “엄마 꿈 꾸었구나. 그렇지?” 선생님은 덕보 곁에 다가왔습니다. “무슨 꿈을 꾸었니? 엄마가 덕보를 보고 싶다고 하던?” 덕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그럼?” “엄마가 저를 혼내는 꿈이었어요.” “덕보를 혼내? 왜?” “모르겠어요. 엄마가 떡을 썰면서 저를 나무라는 꿈이었어요. 저는 무서워서 엄마 품에 달려들었어요. 엄마한테 혼나면 엄마 품에 달려들어요. 그러면 안아주거든요...” “그래서?...” “그런데도 엄마는 계속 야단치는 것이었어요. 더욱 엄마에게 달려 들었어요. 그런데도 엄마는 저를 안아주지 않고 혼내는 꿈이었어요. 그래서 울다가 깨었어요.” “그래? 이상하구나. 엄마가 덕보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셨을까? 덕보가 잘못한 것이 무얼까?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엄마도 우시는 것이었어요. 엄마가 우니까 더 눈물이 나왔어요.” 선생님은 덕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아직도 덕보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엄마 품이 그리울 나이였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 그림의 떡 장수와 함께 있지만, 엄마의 보살핌이 아직 더 필요한 나이였습니다. “엄마가 뭐라 그러셨는지는 기억나느냐?...” “엄마는 떡을 썰고 계셨어요. 떡판위의 떨을 썰면서 야단치는 것이었어요.” “떡판에 떡을 썰면서?” “예. 엄마는 떡을 반듯하게 썰면서 저를 야단치시는 것이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엄마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혼내는 것 아닐까요? 엄마가 혼자서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니 더 눈물이 나와요.” 덕보는 또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선생님은 덕보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엄마가 떡 만드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혼내?” 선생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깊히 끄덕였습니다. “그렇구나, 덕보. 엄마가 왜 덕보를 혼냈는지 알겠다.” “예?”
선생님은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치면서 말했습니다. “덕보야. 엄마는 덕보를 혼낸 것이 아니란다. 이 선생님을 나무라신거야. 내가 잘못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그래 엄마가 걱정할 만도 하지. 엄마에게 미안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요?”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그림도구를 찾았습니다. 선생님은 종이 위에 붓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책상 위에 책과 붓과 종이가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림 속에서 그림을 꺼냈습니다. 그림 속의 책상과 책과 붓과 종이는 실물이 되어 덕보 앞에 놓여졌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져 쳐다보고 있는 덕보에게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덕보야. 오늘부터 공부를 시작하자. 생각해보니 네가 공부를 시작할 나이가 되었느니라. 내가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을 어머니가 꿈에서 깨우쳐 주신 것 같다.” “엄마가 왜요? 엄마는 떡만 썰고 계셨는데....” 선생님은 빙그레 웃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마... 옛날에 공부를 게을리 하는 아이가 있었단다. 그 아이 엄마도 덕보네처럼 떡을 만들어 장에다 파시는 분이었단다. 엄마가 떡을 만들어 장에 나가 팔다보니 아들을 돌볼 틈이 없으셨단다. 그러니 아들은 엄마가 없는 틈을 타 노는 데만 힘을 썼지. 하루는 엄마가 아들을 불러 글공부를 하였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엄마 없을 때 다 했노라고 했단다. 저녁이 되자 엄마가 아들을 불렀단다. 엄마는 떡을 썰면서 아들에게 낮에 공부한 글을 종이에 써보라고 하였지. 아들은 종이에 글을 써서 보여주셨단다. 엄마는 아들에게 엄마가 떡을 써는 것 보다 더 글을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아들은 그렇다고 큰소리를 쳤단다. 그러자 엄마는 호롱불을 끄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글을 써보라고 하셨어요. 불이 없으니 아들은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지. 삐뚤빼뚤 글을 쓰고 있는데 엄마는 옆에서 떡을 썰고 계셨어. 글을 다 쓴 뒤, 호롱불을 켜고 보니 아들이 종이에 쓴 글씨는 엉망진창이었만 엄마가 썬 떡은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이 반듯하고 고르게 썰어져 있었단다.”
선생님이 덕보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은 엄마가 썬 떡을 보고 큰 깨우침을 얻었단다. 나는 남이 보는데서만 글을 잘 쓰는구나. 엄마는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떡을 반듯하게 써는데 나는 공부가 멀었구나 라고 깨달았던 거지. 엄마는 그런 가르침을 아들에게 주신 거였어요. 바로 덕보의 꿈에 엄마가 나타나 떡을 써신 것은 공부를 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거란다. 덕보야, 알겠니?” 덕보는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그 아들은 나중에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이 되었지. 석봉스승이라고 하신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덕보에게 책상에 앉아 오늘부터 공부를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만 있던 덕보가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공부를 하는 거지요? 그리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거지요?”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덕보를 바라보았습니다. 덕보가 당연히 좋아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질문을 받은 나머지 약간 당황해하시는 표정이었습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물었느냐?” “예. 벼슬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건가요?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에 합격해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재산도 크게 만들어 떵떵거리고 살려고 공부를 하는 건가요?” “............” 덕보의 당돌한 물음에 선생님이 잠시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공부하지 않겠습니다.” 덕보의 뜻밖의 표정과 야무진 말에 선생님은 놀랐습니다. “왜 그러느냐?” “저는 벼슬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가 큰소리치며 못된 짓 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요.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서로 싸우고 헐뜯는 것도 싫어요. 돈을 더 벌겠다고 가난한 사람을 못 살게 하는 부자도 싫어요. 그냥 조용하지만 평안하게 살고 싶어요. 공부하지 않고 편히 살고 싶어요.” 덕보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의 떡 장수 선생님은 덕보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덕보가 이런 생각을 말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 모를 표정으로 덕보를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난감하면서도 당황해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덕보는 이런 선생님을 피해 그림 속에서 꺼낸 책상과 책과 종이와 붓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휭 하니 방문을 열고 나가 버렸습니다.
선생님은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공부 이야기에 덕보가 이토록 강한 반응을 보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린 것으로만 생각했던 덕보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보의 말에 새삼 놀라면서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곰곰이 덕보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니, 덕보는 나이는 어리지만 공부를 잘하여 훌륭하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슴에 분명히 새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2.
덕보는 선생님을 피해 밖으로 나오자 갈 길 없는 산 속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꿈속에 엄마가 떡을 썰면서 영문도 모르게 자신을 야단치는 모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랬습니다. 덕보는 엄마를 떠나 그림의 떡 장수 선생님을 만나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림 속의 신비한 숲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덕보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아침이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에 잠이 깨어 선생님이 숲속에서 따다 주신 이름도 모를 달고 시원한 과일을 먹고, 또 선생님이 어디선가 준비해주신 요리와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편히 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선생님과 함께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보는 언젠가는 선생님이 그림을 가르쳐주시겠지 하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 속에서 그림을 꺼내 신기한 일을 하면서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어머니가 나타나 자신을 야단치는 것이었습니다. 덕보는 엄마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야단치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꿈에 나타나 떡을 썰면서 덕보를 야단친 것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이상스럽게도 엄마는 나타날 때마다 덕보를 꼭 안아주면서도 품에서 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깨면 덕보는 그런 엄마가 더욱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선생님은 엄마가 공부를 하라고 야단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언젠가는 그림공부를 가르쳐 주시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책과 붓을 꺼내어 글공부를 하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공부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 해야 할지도 모를 지루하고 어려운 글공부가 하기도 싫었지만, 공부 잘하여 벼슬을 한 사람들을 장터에서 만나 겪어본 뒤로는 훌륭한 사람들에 대한 미움만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공부를 많이 하여 나라의 큰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덕보가 장터의 장꾼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전혀 반대였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자기의 힘과 재산을 불리는데만 힘을 쏟는가 하면, 자신이 공부한 것만이 최고라며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고집만 내세운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부모에게 더 효도하고, 이웃과 친구들에게 더 베풀어야 할 것임에도, 정작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배우지도 못한 자식이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보다 재산도 없는 사람이더라는 것을 장터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교만해져 남을 깔보며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덕보에게 선생님은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덕보는 차라리 농사짓고 장사를 하더라도 공부는 하지 않음으로써 그런 욕심많고 남을 괴롭히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공부를 하기 위해 일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책상과 씨름할 것을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졌습니다. 그래서 덕보는 선생님을 피해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앞길이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나에게 생각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그린대로 세상이 되는 공부. 그런 공부를 시켜주시지는 않을까...?’ 하지만 오늘 선생님의 모습은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글공부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덕보는 슬며시 불안해졌습니다. ‘글공부를 하기는 싫고,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덕보는 공부생각을 하자, 즐겁기만 했던 세상이 무섭게 생각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나를 숲속에서 나가라고 한다면?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될까?’ 덕보는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3.
이튿날이었습니다. “덕보야, 덕보야.” 아침에 선생님이 덕보를 불렀습니다. 덕보의 방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덕보의 방문을 열어보았지만, 덕보는 어디론가 없어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숲 속을 뒤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작은 공터에서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덕보를 발견하였습니다. “덕보. 여기서 뭐하는고?” “예. 선생님. 밭을 갈고 있습니다. 농사를 시작하려고요.” “농사를?” “예. 어제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질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배워 시작하려고 땅을 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덕보를 쳐다보았습니다. 덕보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도 영민한 소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덕보가 어제 한 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심성이 바르고 곧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덕보를 불러 나무 그루터기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덕보야. 선생님이 너에게 무슨 공부를 하라고 할 것 같으냐?” “글공부요.” “글공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훌륭한 사람들이 쓰신 책과 생각을 읽고 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게 어려운 일일 것 같으냐?”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쓸데없는 일일 것 같아요.” “왜 그러냐?” “그 분들의 생각과 말을 모른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많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똑같지 않습니까? 변한 것은 없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먹고 살길은 다른 데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장에 나가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합니다. 공부가 죄라고요. 식자우환(識者憂患) 이라고 하는 말을 다들 합니다. 제가 물었더니 공부하는 것은 화를 부르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덕보는 공부라는 것에 대해 이미 넌더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공부를 하지 않아도 훌륭한 사람들의 말과 글을 몰라도 저 새도 저 사슴도 평화롭고 지혜롭게 세상을 살고 있지 않나요? 저도 저 새들처럼, 저 바람처럼 자유롭게 평화롭게 살면 되었지, 굳이 선생님들의 글을 읽고 머리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은 덕보가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덕보에게 말했습니다. “덕보야. 네 말이 또 장터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된다. 그렇지. 저 새도, 사슴도 공부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평화롭게 잘 살고 있지. 사람도 공부를 하지 않는다 해서 편히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란다. 공부를 하지 않고도 훌륭한 사람도 있고, 성공하여 잘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못된 짓을 하더라는 그 말이 맞을 때도 있다. 그런데 선생님은 덕보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을까?” “............” 선생님은 덕보를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덕보의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덕보야, 네 가슴이 뛰고 있구나. 저 사슴의 가슴에 손을 얹어도 심장이 뛰고 있겠지. 그런데 네 가슴과 사슴의 가슴은 뭐가 다를까?” “......모르겠습니다.” “덕보야. 네 가슴 속에는 심장뿐 아니라 꿈도 뛰고 있어. 사슴의 가슴 속에도 꿈이 뛰고 있을까?” “............” “사람은 꿈이 있어 사람이란다. 꿈이 없는 사람은 살아있는 짐승일 뿐이야.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사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에겐 꿈이 있어. 공부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란다. 너에게도 꿈이 있지 않니? 공부를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것이란다.” “공부를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요 어떻게요?” “공부 속에 꿈을 이루는 길이 있지.” 그 말을 듣자, 덕보는 선생님의 눈을 피하며 물었습니다. “저의 꿈이 무엇인지 말해볼까요?” “무엇이냐?” “새가 되고 싶어요. 훨훨 날고 싶어요. 저 푸른 하늘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훨훨 날아 엄마에게 가고 싶어요. 훨훨 날아 세상을 거리낌 없이 살고 싶어요. 밤이면 별이 되어 밤하늘에 반짝거리고 싶어요. 공부를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요? 공부를 한다고 제가 하늘을 나는 새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별이 될 수 있겠어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는 덕보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허무함과 그리움에 가슴속이 비는지,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돈 많은 부자와 권세있는 사람들에게 힘없이 눌려 살았던 서러움이 그 말에 서려있는 것 같았습니다. 새가 되고 별이 되어 그런 사람들과 부딪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 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새가 되고 별이 되는 것은 공부를 한다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덕보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공부를 하여 이루라고 하는 꿈이 무엇인지, 어른들?생각하는 세속적인 꿈이 무엇인지 다 안다는 듯 선생님의 말씀을 꼬집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덕보의 말에 다시 빙그레 웃었습니다. “덕보야. 사람들이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지 아느냐?” “사람마다 다 다르지 않겠어요?” 덕보는 아직도 마음이 비틀려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야. 모든 사람들의 꿈은 똑같은 것이란다. 모두 한결같은 꿈을 꾸고 있지.” “그게 무엇인데요?” “자유.... 자유란다.” “자유? 자유가 뭔데요?” 덕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습니다. “자유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유지.”
덕보는 그 말은 이해가 갔지만, 자유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꿈이라는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꿈은 권세와 돈과 지위... 대부분 그런 것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유가 꿈이라고요?” “사람뿐이 아니란다. 모든 생명체의 꿈은 다 똑같은 것이란다. 자유. 저 새도 저 사슴도, 저 기어가는 벌레까지도...다 자유를 원한단다. 그러나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지.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자유란 없단다. 그래서 그런 꿈을 꾼단다. 자유의 꿈. ” “...........” “그렇지만 짐승이나 벌레는 그런 꿈조차 꾸지 못하지. 사람만이 꿈을 꾸고, 사람만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한다.” “‘자유의 꿈’을 요?” “그렇다. 덕보가 새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나는 꿈도, 별이 되어 밤하늘에 반짝이고 싶은 것도 다 자유롭게 이 세상을 살고 싶은 ‘자유의 꿈’ 아니겠느냐?” 덕보가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그렇다.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자유야. 배고픈 것에서부터의 자유. 무서움에서의 자유. 남에게 속박되지 않고 싶은 자유. 보고 싶은 사람 마음껏 보고 싶은 자유. 어디든 마음대로 가고 싶은 자유...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지. 그것이 자유를 향한 사람들의 꿈이란다. 그래서 돈을 벌고, 권력을 잡고, 명예를 얻고 싶어한다. 다 자유의 꿈이란다. 욕심이란 자유롭게 되고 싶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꿈을 말하는 것뿐이란다.”
덕보는 묵묵히 듣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자유. 내가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 생각대로 일을 하는 그림의 떡 장수. 선생님도 자유를 얻기 위해 그림을 그리시는 것일까? 어떻게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으실까? 그런 자유를 얻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것일까? 공부로 그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생겼습니다. 덕보는 선생님의 말을 기다렸습니다. 선생님은 덕보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덕보야. 새가 되고 싶다 했지? 그렇지만 공부를 한다고 어떻게 새가 될 수 있을까라고 말했지? 덕보야. 새가 되고 싶은 꿈을 꾼 사람은 덕보뿐이 아니란다. 누구든지 그런 꿈을 한 번쯤은 꾸었겠지. 그러나 아무도 그런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없었단다. 덕보 너처럼... 책상에서 공부한다고 어떻게 그런 꿈이 이루어지겠느냐? 그렇지만 공부를 하면 너도 새가 될 수 있단다.” “.............” 덕보는 눈을 껌벅이며 선생님을 쳐다보았습니다. . 그림의 떡 장수가 봇짐에서 붓과 종이를 꺼냈습니다.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알 수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큰 새가 그려져 있었는데 새의 눈 속에 사람이 들어 앉아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덕보는 신기한 기분으로 그림을 열심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림이 그려지자 그림의 떡 장수는 그림에 바람을 훅 불어넣었습니다. 그러자 그림 속의 사람이 살아 움직이면서 덕보에게 싱긋 웃음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무언가를 손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자 큰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덕보를 보고 손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구름 속을 들락거리며 큰 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덕보는 그 그림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이게 무엇인가요? 선생님?” 선생님은 그림을 반으로 접었습니다. 하늘을 날던 큰 새는 없어졌습니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신기하지? 믿기지 않지? 그러나 언젠가는 사람이 새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단다. 먼 미래에...사람들은 그 큰 새를 비행기라고 하지. 하늘을 나는 사람. 새가 되어 나는 것이란다. 먼 미래에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새가 되는 꿈을 이루어낸단다. 자유를 얻은 것이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선생님은 짧게 말했습니다. “공부. 공부를 해서 이룬 것이다.” “공부는 벼슬을 하기 위해 하는 것 아니었나요? 시험보기 위해?” 선생님은 고개를 작게 흔들었습니다. “벼슬도 생각해보면 자유를 얻기 위한 것이지. 자신과 가족의 자유. 그러기 위해 시험을 보고 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런 공부는 아주 작은 공부란다. 아주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는 공부지.” “벼슬하는 것이 작은 꿈이라뇨?” “벼슬이 꿈이 아니고, 벼슬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하는 것이 꿈이겠지. 남들 앞에서 떵떵거리고 살기 위해 벼슬하는 사람의 꿈은 아주 작은 꿈이라는 말이란다. 그 사람은 자기와 자기 가족의 자유를 위한 꿈을 이루고자 하는 거지. 너무도 작은 꿈이지.” “그럼 큰 꿈은 어떤 꿈인가요?” “보다 많은 사람의 자유를 위한 꿈. 그것이 더 큰 꿈이다. 자신보다 내 가족보다 내 이웃, 내 나라의 모든 사람의 자유를 위한 꿈.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자유를 위한 꿈은 어떻겠느냐? 그것이 큰 꿈이다.” “더 많은 사람의 자유?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자유?” 덕보는 선생님의 말씀이 어려웠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그림을 하나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덕보와 같은 또래의 한 소년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의 얼굴은 검었습니다. 눈이 크고 둥그랬습니다. 머리는 짧고 곱슬거렸습니다. 처음 보는 이상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런 소년이 여러 명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년들의 발은 굵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채찍을 든 어른 한 사람이 아이들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희고 머리와 수염이 노란 금빛이었습니다. 이상한 그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붓을 놓고 그림에 바람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덕보는 유심히 그림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림속의 검둥이 아이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흰 얼굴의 어른은 아이들을 향해 채찍을 내리 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불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덕보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어린 노예들이란다. 노예를 잡아 일을 시키면 큰 돈을 벌수 있지. 무엇이든 살 수 있고, 좋은 옷을 입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단다. 노예주인은 크고 좋은 집에서 많은 노예를 거느리며 부자가 되어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되었다. 그 사람은 꿈을 이룬 거야. 자신과 가족을 위한 아주 작은 꿈을...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부러워했단다. 그렇지만 노예들은 자유가 빼앗기고 말을 안 들으면 매를 맞고 굶어 죽기도 했단다.”
선생님은 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의 그림이었습니다. . 어떤 사람이 도끼를 들고 노예들의 쇠사슬을 풀어주는 그림이었습니다. 소년들은 쇠사슬이 풀리자 두 손을 들고 뛰면서 좋아했습니다. 쇠사슬을 다 풀어준 사람은 좋아하는 노예들을 바라보며 흡족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키가 큰 남자였습니다. 그때 노예주인이 달려 나왔습니다. 키 큰 어른은 노예주인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키 큰 어른이 이겼습니다. 노예들은 환호를 지르며 더욱 좋아했습니다. 그렇지만, 노예주인은 죽어가면서 키 큰 남자를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키 큰 남자가 총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얼굴에 검은 수염이 가득 자라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노예들이 달려와 슬퍼하며 그 키 큰 남자를 에워쌌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구름처럼 사람이 모였습니다. 모두들 키 큰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사람을 칭송했습니다. “이 키 큰 남자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 살았단다. 자기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살다 죽었단다. 그 사람은 죽었지만, 풀려난 노예들은 열심히 일을 하였단다. 자유를 얻은 모든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였단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들이 되었지. 그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자유를 누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되었지. 키 큰 사람은 큰 꿈을 이룬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자유의 꿈을 이루겠다는 큰 꿈 말이다. 알겠니, 덕보야?”
덕보는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꿈. 그것은 자유를 누리고 싶은 소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혼자만 누리는 자유의 꿈은 작은 꿈이요. 많은 사람이 누리게 되는 자유의 꿈은 큰 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꿈의 크기는 자유의 크기와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꿈이 아니라 욕심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덕보는 그림의 떡 장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장터의 사람들의 말을 상기해 보았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 밖에 몰라. 남에게 베풀기는커녕 배운 공부로 남의 것을 빼앗아가지. 나쁜 사람들....’ 장터의 장꾼들은 바로 욕심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한 사람들을 미워하여 하는 말이었습니다. 덕보는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선생님에게 함부로 했던 말들이 부끄러웠습니다. 덕보는 기어들어가는 작은 소리로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럼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 꿈을 이룰 수 없어요?” 선생님은 덕보가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이다. 덕보야. 자유롭게 먹고 입고 자는 작은 꿈만 이루겠다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러나 자유는 그런 자유만 있는 것이 아니란다. 세상에서 큰 자유중에는 이치를 깨달았을 때 얻는 기쁨의 자유라는 것이 있단다. 밤하늘의 별은 왜 저렇게 아름답게 반짝일까? 꽃들은 어떻게 저런 예쁜 꽃을 피울까? 바람도 없는 바다에 왜 파도는 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이런 이치를 터득한다면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단다.”
덕보는 눈을 깜박깜박했습니다. 선생님이 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림 속에서 엄마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떡을 만들고 썰고 있는 엄마를 그렸습니다. 선생님이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림속의 엄마가 살아 움직였습니다. 선생님이 덕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에게 말을 해 보거라.” “예? 그림속의 엄마에게요?” 믿어지지 않았지만 덕보는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 이때였습니다. 떡을 썰고 있던 엄마가 고개를 돌리더니 놀란 듯이 덕보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덕보야. 너 거기 있었구나. 어머 덕보야. 많이 컸구나.” 엄마는 덕보를 보고 반가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많이 보고 싶었다. 덕보야. 엄마는 밤낮으로 덕보 생각밖에 안한단다. 우리 예쁜 아들..” 덕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목에 메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가 그림 속에서 말을 하다니...덕보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림 속에 들어가 엄마 품에 꼭 안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덕보는 그렇게 엄마와 오랫동안 말을 나누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덕보와 엄마를 보고만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표정도 행복했습니다. 덕보와 엄마가 이야기를 다 나누자, 선생님은 그림을 접었습니다. 엄마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덕보야. 그림 속에서 엄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을 너는 믿을 수 없겠지. 그렇지만 이루어지게 된단다. 먼 훗날... 사람들은 그 이치를 깨닫게 되어 멀리 있는 사람과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단다...”
거짓말 같았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습니다. “정말이란다. 사람들이 공부를 하여 그렇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단다. 공부는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일을 이루는 것이란다.” “정말요?” “정말이고말고...언젠가는 그 엄마를 보는 것만이 아니고 품속에 들어가 만날 수 있을 거야. 공부를 하면..” 덕보는 신기한 생각에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거짓말을 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공부를 하면 그런 것들을 이룰 수 있나요?” “암암...꼭 이룰 수 있지.”
덕보는 선생님 곁에 바짝 다가들었습니다. “선생님. 어떤 공부를 하면 그런 것들을 이룰 수 있어요?” “글공부지...” “예? 그 글공부? 지루하고, 하기 싫은 글공부요?”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공부란 우리보다 먼저 생각하고 깨달은 것을 배우는 것이다. 수많은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여 깨달은 것을 글을 통하여 단번에 아는 것이다. 네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을 공부하면 금새 알게 되는 것이란다.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겠느냐? 덕보야. 너는 선생님이 그린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지 않느냐? 배우고 싶지 않느냐?”
덕보는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바로 덕보가 꿈에 그리던 것이었습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니 글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지금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어도 네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공부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선생님이 하는 말을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온단다. 그때는 너도 선생님의 그림을 배울 수 있어. 공부를 하여 그림을 배우고 나면 얼마나 자유롭겠느냐?...” 그 말을 듣자 덕보는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덕보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글공부를 하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덕보는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선생님은 덕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덕보야. 엄마는 밤낮으로 떡을 썰어 팔면서 덕보가 자유롭게 세상을 살도록 애쓰시고 계신다. 그러나 떡을 썰어서는 덕보가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계신 것이야. 그렇지만 공부를 하면 덕보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아신단다. 그래서 꿈속에서 너에게 야단을 치신 것이란다. 그런데 너는 공부를 하지 않고 땅을 파면서 자유롭게 살겠다고 하고 있구나. 그렇게 살겠느냐?” 덕보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엄마와 선생님의 깊은 뜻을 모르고 장터 사람들의 말만 들었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중에는 더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 수없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선생님께 잠시나마 교만한 모습으로 대들었던 것이 창피했습니다. 덕보는 고개를 숙이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선생님. 공부를 하게 해 주십시오. 글공부를 하게 해 주십시오. 저도 세상에 태어나 많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공부는 꿈을 이루게 하는 것이고, 꿈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자유롭게 세상을 살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공부를 하게 해주십시오.” 덕보는 진심으로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덕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또 그림을 그렸습니다. 책상과 책, 붓과 종이가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책상 앞에 공부를 하는 사람의 모습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덕보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림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잠자는 자는 꿈을 꾼다. 그러나 공부하는 자는 꿈을 이룬다.”
■ 미노스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해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 차관급 고위직을 세번이나 거쳤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도쿄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교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공직 퇴임 후 고려대·공주대 객원교수, 배재대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홍익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30여년의 공직생활 퇴임후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새움출판사)'라는 단편소설과 동화가 있는 이야기책을 출간, 동화작가로 데뷔했다. 단순히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童話)'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남녀노소 모두를 아우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화(動話)'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