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대웅·녹십자·한미 등 개발 잇달아
[데일리한국 최성수 기자] 제약사들이 희귀질환 파이프라인 확보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희귀질환은 말 그대로 환자수가 적어 그동안 제약사들이 등한시해오던 분야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러 국가에서 개발 시 독점권을 부여받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치료제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다.
20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지난 17일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PRS(Prolyl-tRNA Synthetase) 저해제 ‘DWN12088’이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2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특발성 폐섬유증은 과도하게 생성된 섬유 조직으로 인해 폐가 서서히 굳어지면서 기능을 상실하는 폐질환이다. 치료가 쉽지 않아 진단 후 5년 생존율이 40% 미만인 희귀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시판 중인 다국적 제약사의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는 질병 진행 자체를 완전히 멈추지 못하며 부작용으로 인한 중도 복용 포기율이 높아 여전히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상황이다.
DWN12088은 대웅제약이 자체 개발 중인 세계 최초 PRS 저해 항섬유화제 신약이다. PRS는 콜라겐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소로, DWN12088은 콜라겐 생성에 영향을 주는 PRS 단백질의 작용을 감소시켜 섬유증의 원인이 되는 콜라겐의 과도한 생성을 억제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다.
대웅제약은 오는 9월부터 관련 임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번 임상 2상은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다국가 임상 방식으로 진행되며, DWN12088의 안전성과 효능을 평가하게 된다.
DWN12088은 2019년 FDA로부터 특발성 폐섬유증에 대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희귀의약품 지정’은 희귀·난치성 질병 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의 치료제 개발 및 허가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미국시장 판매 독점권, 미국 내 임상시험 비용 지원 및 세금 감면, 개발 관련 사전 상담 지원 등 혜택이 제공된다.
LG화학도 유전성 비만 치료 신약 LB54640의 유전적 결함이 없는 건강한 과체중 성인을 대상으로 한 미국 임상 1상을 최근 완료했다. 연내 구체적인 임상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LB54640은 포만감에 관여하는 단백질인 MC4R(멜라노코르틴-4 수용체)의 작용 경로를 표적으로 한 1일 1회 먹는 치료제다.
보통 유전성 비만환자의 경우 포만감 신호를 주는 LEPR, POMC 유전자가 부족한 것으로 확인된다. LB54640은 ‘LEPR→ POMC → MC4R’로 이어지는 신호전달경로에서 MC4R에 직접 작용해 식욕을 조절하는 기전을 갖는다.
LG화학은 내년부터 LEPR 또는 POMC 결핍증 유전성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2·3상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 약물도 이달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GC녹십자는 일본에서 판매 중인 자사의 중증형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 ICV’의 국내 도입을 위한 임상 1상을 진행중이다.
헌터증후군은 IDS(Iduronate-2-sulfatase) 효소 결핍으로 골격 이상, 지능 저하 등이 발생하는 선천성 희귀질환이다. 일반적으로 남자 어린이 10만~15만명 중 1명 비율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중추신경손상을 보이는 중증 환자는 전체 헌터증후군 환자의 70%에 달한다.
헌터라제 ICV는 머리에 디바이스를 삽입해 약물을 뇌실에 직접 투여하는 치료법이다. 기존 정맥주사 제형의 약물이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하지 못해 ‘뇌실질 조직에 도달하지 못하는 점을 개선했다.
이 제형은 지난해 1월 일본에서 품목허가를 받았다.
종근당은 희귀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 ‘CKD-510’ 개발에 나서고 있다. 종근당은 지난달 국제 말초신경학회(PNS) 연례 학술대회에서 CKD-510 임상 1상과 비임상 시험 결과 안전성과 내약성 등을 유럽 임상 1상 시험에서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유전성 말초신경병증으로 유전자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다. 손과 발의 근육 위축과 모양 변형, 운동기능과 감각기능의 상실로 보행이나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질환으로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허가된 치료 약물이 없다.
종근당은 유럽 임상 1상 결과를 바탕으로 샤르코-마리-투스병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임상 2상을 준비중이다.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사 중 희귀의약품 지정 건수가 가장 많은 제약사다.
한미약품은 최근 유럽의약품청(EMA)이 삼중 작용 바이오신약 ‘랩스트리플아고니스트’를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를 위한 희귀의약품으로 추가 지정하면서 총 20건의 희귀의약품 지정 사례를 보유하게 됐다.
한미약품의 희귀의약품 파이프라인은 6개다. 적응증으로만 보면 10가지다. 기관별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9건, EMA 8건, 식품의약품안전처 3건 등이다.
이처럼 국내 제약사들이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뛰어드는 것은 개발에 성공했을 때 수익창출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약가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 마진율도 기존 약품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개발 과정에서 각 국가 정부가 패스트트랙 혜택 제공, 시장독점권 부여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후발주자와의 경쟁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관련 시장도 계속 커지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희귀의약품 시장은 2020년 1380억 달러(약 180조원)에서 2026년 약 두 배 성장한 2680억 달러(약 340조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희귀약 개발에 나서는 궁극적인 이유는 시장성”이라며 “또 희귀약을 개발하면서 얻는 임상 데이터와 개발비 감면 등도 제약사 입장에선 이점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