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신지하 기자] 정부의 유류세 인하에도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의 고공행진이 이어지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사 간 담합 등 불공정거래 여부 조사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도 고유가로 높은 수익을 거둔 정유사들을 상대로 이익을 환수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정유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28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위를 중심으로 합동점검반을 구성, 업계에서 담합 등 불공정행위가 이뤄지지 않는지를 점검하기로 했다. 당국은 주유업계에 대한 현장점검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번 조사는 내달 시행되는 유류세 추가 인화 효과 극대화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근 고유가 부담 완화를 위해 유류세를 30% 인하해 왔고, 다음 달 1일부터는 인하폭을 37%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 같은 유류세 인하 폭이 반영되면 휘발유 가격은 리터(L)당 57원, 경유는 38원, LPG 부탄은 12원이 추가로 낮아진다.
하지만 작년 11월 중순부터 시작된 유류세 인하 조치에도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판매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인하분이 충실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가 소비자단체 E컨슈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등으로부터 제기돼 왔다.
이날 오전 기준 전국 주유소의 기름값은 L당 2130원을 돌파한 상태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의 평균 판매가격은 L당 각각 2135.85원, 2156.35원으로 나타났다.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의 최고 가격은 각각 3096원, 3223원이다.
정유사들이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개별적으로 석유제품 가격을 올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경쟁사끼리, 단체로 합의를 거쳐 가격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에 해당한다.
정부의 이번 조사에 대해 정유사들은 겉으로 내색하고 있지는 않지만 담합 논란에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의 경우 투명하게 공개되는 데다 여러 곳에서 모니터링·감시가 이뤄지고 있어 가격 담합 자체가 어렵다"며 "오히려 가격을 낮추자고 논의하는 것 자체도 담합 행위가 될 수 있어 정유사들은 이런 논의를 늘 경계하고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 정부의 조사 진행 상황을 주의깊게 지겨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업계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정유사에 횡재세를 부과하자는 움직임에 대해 내색은 못하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횡재세는 세계적 에너지 대란 속에 정유사들의 초과 이윤을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것으로, 영국은 최근 정유사를 상대로 초과이윤세를 도입해 시행 중이고 미국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최근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으로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난 것은 맞지만 앞으로 유가가 다시 내려가면 재고 손실로 다시 반납해야 하는 '회계상의 이익'에 그쳐, 횡재세 도입 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정유사들의 최근 호실적은 유가가 오르면서 발생한 재고 이익, 자산평가상 이익일 뿐"이라며 "국제 제품가에 연동해 석유제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내수에도 판매하고 있는데 마치 정유사가 국내 기름값을 올리는 주범으로 몰리고 나홀로 이익을 독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횡재세를 부과하려는 이유는 유가 급등에 따라 석유사들이 우발적 수익을 거뒀지만 공급량은 그대로이고, 얻은 이익도 재투자하지 않아 야기될 수 있는 에너지 가격 불안정 문제를 방지하는 것"이라면서도 "과거 미국에서 관련 법안이 시행됐을 때 산업계 비용 증가, 물가 상승, 생산활동 위축, 자국의 해외수입 증가 등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유사로 한정해 횡재세를 적용하는 것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유사들은 2014년엔 유가 폭락으로,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각각 2조원대, 5조원대 대규모 적자를 냈다. 당시 정부의 손실 보전 등 정부 지원이 없었는데, 최근의 일시적으로 발생한 고수익에 대해 과세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또 횡재세 도입 시 정유사들이 수익성 악화를 겪으며 결국 친환경 사업 등 사업 다각화 추진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극복하고 모처럼 호실적을 거둔 것을 바탕으로 탄소중립, ESG 등 친환경을 중심으로 사업 다각화에 대한 투자를 많이 늘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정유부문에서 발생한 수익을 세금으로 거둬갈 경우 정유사들의 친환경 관련 사업 투자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