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국내 조선 3사(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가 새로운 경쟁 구도에 직면했다. 지난 26일 재계순위 7위인 한화그룹을 이끄는 김승연 회장이 대우조선 인수를 공식화했다. 김 회장은 대우조선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2조원을 베팅했다.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 시도는 이번이 처음 아니다. 지난 2008년 김 회장은 6조3000억원을 대우조선 인수 금액으로 써낸 뒤 “인생의 가장 큰 승부수를 걸고 있다”며 그룹의 주력인 방산 사업을 글로벌 메이저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듬해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자금경색 등으로 ‘빅딜’은 아쉽게 무산됐다.

28일 한화에 따르면 김 회장이 이번에 또다시 대우조선을 인수하려는 목적은 14년 전의 인수전과 다름없다.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간다. 단순히 방산 부문 경쟁력 강화를 넘어 육상‧해양‧항공 통합 시스템을 갖추는 ‘세계최고’ 의도가 다분하다.

한화는 최근 방산과 항공우주를 신성장 사업으로 지목한 상태다. 그룹 내 흩어진 방위산업 부문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 곳으로 통합하는 사업구조 개편을 진행 중이다. ㈜한화가 유도무기‧탄약,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기·항공엔진을 각각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대우조선 인수는 해양 방산 역량을 확보해 육·해·공 황금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다.

◇ 왜 대우조선인가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과 함께 국내에서 군함을 건조하는 방산업체 여덟 곳 중 하나다. 전차부터 시스템까지 방산 체계 전반의 벨류체인을 확보하고 있는 한화는 대우조선 인수를 통해 육·해·공 가운데 공백인 해양 분야를 채우려 한다.

이는 지난 8월 발표한 ‘2030년 글로벌 방산 톱10’ 목표 달성을 위한 본격적인 시동을 거는 움직임이다. 미국 국방전문 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계 부동의 1위인 한화의 현재 방산 규모는 매출 47억8700만달러로 전 세계 30위권이다. 한화가 롤모델로 삼는 미국 록히드마틴(644억5800만달러)과 비교하면 7.5%에 불과한 수준이다. 지난해 대우조선의 매출은 4조4844억원(31억5469만달러)이다.

고민거리는 방산 외 분야다. 조선업과 거리가 먼 한화로선 대우조선 경영은 사실상 신사업에 손을 대는 행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당초 한화가 방산부문 인수만을 원했으나 현 주인인 산업은행이 거부했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수는 그룹의 사업적 시너지 극대화뿐만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라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으로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화가 사업보국을 언급한 까닭은 대우조선을 통째로 사들이려는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만일 상선 부문 매입을 포기하면 해당 슬롯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조선업계가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워 건조 선종을 확대 중이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업계가 자리를 뺏기는 최악의 상황은 한화가 대우조선을 완전체로 인수하면 사라지게 된다.

◇ 인수 걸림돌은?

먼저 대우조선의 낮은 재무 건전성이 인수 걸림돌로 지적된다. 대우조선의 자산총액 12조224억원 중 부채는 10조4741억원이다. 자기자본은 1조5483억원 수준이다. 부채비율이 676.5%에 달한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올해 상반기 누적 적자만 5696억원에 달한다.

한화는 부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자본금을 우선 수혈, 급한 불을 끌 것으로 보인다. 2조원의 인수금이 고스란히 자본금으로 남을 가능성은 적지만, 부채 비율을 낮추면서 재무 건전성 회복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노조의 반발도 뚫어야 할 관문 중 하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는 “속도전보다 검증이 우선”이라며 왜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해야 하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또 “노조가 배제된 졸속 매각”이라며 매각 협상에 노동자도 참여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로 읽힌다.

하지만 이번 매각 추진은 일각에서 관측한 방산 부문 ‘부분 매각’이 아닌 ‘통매각’이어서 노조의 반발은 설득력이 부족하단 지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의 수주량을 볼 때 인력비율을 하향 조정할 가능성은 적다”고 봤다. 대우조선은 현재 연간 수주목표의 97% 수준인 86억달러어치 일감을 수주한 상태다.

주목되는 과제는 기업결합심사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건을 무산시켰던 바로 그 문제다. 다만 당시 EU 등 주요국가의 경쟁당국은 독과점 등을 이유로 합병을 불허했지만, 업계에선 이번엔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한화가 조선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아 조선업체 간의 기업결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의 합병과 달리 양사가 겹치는 사업 분야가 없어서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여지는 없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 조선 빅3, 지각변동?

조선업계에선 대기업 집단인 한화의 등장으로 시장 분위기가 쇄신될 것으로 본다.

특히 조선 빅3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공정 경쟁’에 대한 기대감이 나온다. 민간 대주주 전환에 따라 대우조선이 오너십을 기반으로 책임경영에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했다면 ‘빅2’ 체제로 조선업계의 수주 경쟁이 줄어들면서 수주 선가가 높아질 가능성이 컸다. 빅3 체제의 유지는 수주 선가 인하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향후 저가 수주 경쟁에 대한 우려가 원천 해소될지도 주목된다.

다만 과잉 공급으로 인한 ‘과당 경쟁’ 우려는 여전하다. 완전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변화는 없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단 한화의 인수 이후 사업에 대한 김 회장의 의지나 방향이 구체화돼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