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인사(人事)의 계절, 연말이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苦’ 문제를 풀어나갈 단초가 될 주요 그룹들의 인사 묘수에 관심이 쏠린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그룹의 정기인사가 이달부터 진행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그룹은 삼성이다. 이재용 회장이 취임 후 첫 인사를 단행한다는 점에서다. 특히 이 회장이 기치를 내건 ‘뉴삼성’ 로드맵에 걸맞은 인사가 발표될 지 주목된다. 다만 큰 틀의 변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그룹 안팎에서 전망한다. 지난해 말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과 경계현 DS부문장(사장) 투톱 체제를 구축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수는 그룹 ‘컨트롤타워’의 부활 여부다. 2017년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폐지한 미래전략실을 복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사업 부문별 3개의 TF를 구성해 대응 중인 가운데 이 회장이 전체 계열사를 총괄하는 직함을 갖게된 만큼 컨트롤타워를 복원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재계는 본다. 이 경우 그룹 2인자로 평가되는 지휘부 신설로 주요 임원들의 보직이 연쇄 이동될 수 있다.
생활가전사업부 수장이 공석인 것도 또 다른 변수다. 생활가전을 총괄해온 이재승 사장은 지난달 18일 돌연 사임했다. 세탁기 불량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한 실적 악화 여파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한 부회장이 생활가전사업부장을 겸직하고 있지만, 연말 인사에서 생활가전 사업만 전담할 인물이 기용될 가능성이 크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부문은 ‘칼바람’이 불 수도 있다. 지난 3분기에 사상 처음으로 반도체 매출 세계 1위 자리를 라이벌인 대만 TSMC에 뺏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장기적인 전략을 바꿀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회장의 인사 원칙이 ‘성과주의’라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더한다. 지난 2020년 말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과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의 승진 발령도 철저한 성과주의가 밑바탕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인사도 변동보다는 안정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예상된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가신 그룹이 대부분 물러나고 정의선 회장 체제로 세대교체를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203명의 임원을 선임하는 사상 최대 규모 인사를 단행한 만큼, 조직 안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지난해 인사에서 40대를 전체의 3분의 1 수준으로 뽑았던 ‘젊은 인재 발탁’ 기조가 올해도 이어질 경우, 예상보다 큰 폭의 인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또 정 회장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에 만전을 기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일부 조직·인사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최근 일 년에 한번 여는 CEO세미나에서 “비즈니스 전환을 통한 더 큰 도약”을 강조, 예상보다 큰 인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SKC 외에 모든 대표이사를 유임시킨 것과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카카오 먹통 사태와 관련된 SK C&C 경영진과 실적이 저조한 계열사 최고재무책임자(CFO) 위주로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
LG그룹은 지난달 25일부터 구광모 회장이 직접 보고받고 있는 ‘사업보고회’의 결과가 인사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사업보고회는 국내외에서 급변하고 있는 경영 환경을 점검하고 미래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구 회장은 △고객가치 △실용주의 △미래준비 등 3대 키워드를 내세우며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의 승진 여부가 관심사다. 신 회장은 최근 베트남 출장에 신 상무를 데려가는 등 경영 수업에 나선 모습이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지배적인 롯데에서 ‘인사 순혈주의’가 깨질지도 관심거리다. 롯데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바이오‧헬스케어·수소·배터리 등 신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선 상태다. 신 회장은 지난 4월 외부 인재 영입을 전담으로 하는 ‘스타팀’(Strategic Top Talent Advisors & Recruiters Team)을 신설하기도 했다.
사업 구조 개편에 한창인 한화그룹은 세대교체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한화는 그룹 차원에서 ‘포스트 김승연’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9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을 사장에서 승진시켜 태양광·방산·항공우주 등 핵심 사업을 총괄토록 했다. 또 2남인 김동원 부사장은 금융업을, 3남인 김동선 전무는 호텔과 리조트 사업을 각각 맡았다. 연말 인사에선 이를 기반으로 한 3세 경영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당장 실적을 낼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면서 “신상필벌이 강화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