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부커상 수상 번역가의 자전소설
언어 번역과 비슷한 삶의 과정 깊은 성찰

유명한 번역가 제니퍼 크로프트가 지난날의 잔상을 수집해 글과 사진과 여백의 형태로 한데 엮은 ‘집앓이’ 출간했다. ⓒ풍월당 제공
유명한 번역가 제니퍼 크로프트가 지난날의 잔상을 수집해 글과 사진과 여백의 형태로 한데 엮은 ‘집앓이’ 출간했다. ⓒ풍월당 제공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미국 오클라호마에 사는 에이미와 조이는 세 살 터울의 자매 사이다. 동생인 조이가 원인 불명의 발작을 겪기 시작하면서, 학교에 다니기 어려워진 두 아이는 홈스쿨링을 받는다. 조이가 병원을 드나들며 온갖 수술을 받을 동안 에이미는 책과 산수와 비밀 언어를 벗 삼아 평범하지 않은 일상 너머의 세계를 발견한다. 러시아어 가정교사 샤샤를 만나며 순식간에 이 세계가 현실로 다가오고, 에이미와 조이 사이에는 새로운 비밀이 생긴다. 둘이 지닌 비밀이 늘어 갈수록 자매의 삶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우리 몸에 각인된 기억과 장면들은 어떠한 여파를 남길까. 최근 출간된 ‘집앓이(Homesick)’는 유명한 번역가 제니퍼 크로프트가 지난날의 잔상을 수집해 글과 사진과 여백의 형태로 한데 엮은 책이다. 한 자매의 이야기이자 아픈 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 ‘집앓이’는 자전 소설과 회고록과 여행기를 아우른다. 또한 크로프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쓰면서 그 작업이 언어 번역과 닮았음을 암시한다. ‘집앓이’(이예원 옮김·밤의책 출간·308쪽·2만5000원)는 그렇게 탄생한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다. 출판사 ‘밤의책’은 내밀하고 깊은 읽기를 위한 풍월당의 작은 브랜드다.

◇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번역가 제니퍼 크로프트의 자전 소설

크로프트의 삶은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보았을 법한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한다. 홈스쿨링을 하다 익히게 된 러시아어를 더 공부하기 위해 SAT를 쳤다가 상위 1% 이내의 성적을 내고 열다섯 살에 대학에 입학.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유학. 번역가로서 폴란드어와 우크라이나어, 아르헨티나-스페인어를 다루며, 2018년에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을 번역한 공로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이 상은 작가와 번역가가 함께 받는다). 아르헨티나의 문학지 ‘부에노스아이레스 리뷰’의 창립 편집자이자 두 개의 문학상을 수상한 자전 소설 ‘집앓이’를 쓴 작가. 영미권과 그 외의 언어권이 만나는 접경 지역을 담당하는 인물 가운데 손꼽히는 스타.

그러나 그가 자신의 삶을 돌이키며 쓴 소설 ‘집앓이’에는 기묘한 불안이 감돈다. 이 작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따뜻한 우정이 함께 맴돌고 있다. 정신이 불안했던 옆집 남자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는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 작품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전주곡처럼 느껴진다. 옆집 남자는 주인공의 가족을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그건 그의 본심이 아니었을 테고 아마도 광기에 잠식되었던 것에 불과할 텐데, 그에 관한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마찬가지로 그 광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인생에 기쁨과 슬픔을 가져다주는 사건들은 대체로 그 발생 경위를 알 수 없다는 미스터리한 느낌. 이 느낌은 ‘집앓이’라는 작품 전체를 옥죄고 있다.

◇ 우리 모두는 비밀로 찰랑대는 존재, 비밀로 그득한 모든 것이다

이런 미스터리와 마주한 사람들은 대개 이것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특히 불행이 찾아올 때,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보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징조나 징후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생 조이가 어릴 때 뇌진탕을 겪으며 얼마간 특이한 행동을 보였던 순간은 주인공 에이미의 기억 속에 선명히 살아 있는데, 그건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조이가 뇌종양 수술을 하고 이후 남은 삶을 그 후유증과 함께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두 사건 사이에 실제로 연관성이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큰 관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두 개의 기억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그것을 떠올린 사람의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실이 되고, 그렇게 그 사람을 둘러싼 세상이 된다.

말하자면 인생은 죽 이어진 선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은 마치 점과 같은 몇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으며, 결국 인생이란 반짝이는 별이나 담뱃불에 닿아 생긴 구멍 같은 점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어 만든 머릿속의 그림에 불과하다.

짧은 에피소드들을 연달아 이어 놓은 ‘집앓이’의 구성은 이런 삶의 형태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에이미는 드물게 빛나는 기억들과 나머지 공간들을 잠식한 공허 속에서 헤매면서도 이런 자신의 삶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단 한 번, 그는 자신의 인생에 관해 무언가를 확신했고, 그때 그는 자신을 파괴하려 들었다. 이 모든 과정을 담은 1부는 그의 고향과 유년기와 가족을 위주로 이루어지지만, 이 1부의 제목은 ‘집’이 아닌 ‘앓이’다. 인생이라는 고통스러운 수수께끼 말이다.

이 ‘앓이’에서 벗어난 에이미가 당도한 ‘집’은 어디일까. ‘집’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2부는 역설적으로 그가 고국인 미국을 떠나 러시아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여러 언어를 배우고, 여러 나라를 방랑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점점 더 안정돼 간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머물지 않고(그러면 인생의 수수께끼가 당신을 찾아낸다) 끝없이 이어지는 과정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에이미가 사랑하는 외국어들은 다른 언어로는 발견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 주고, 그는 계속 더 넓어지는 세계 속으로 나아가는 모험가가 된다.

이렇게 성장한 에이미 역시 이 책 속에 등장한다. 바로 여러 사진 아래에 있는 짧은 문구를 써넣은 인물이다. 그 문구 중 하나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언어에는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떤 언어가 말하고자 하는 걸 다른 언어로 그대로 옮겨야만 한다면, 그런 일은 불가능할 거라고.

하지만 에이미는 “번역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즉, 그에게 번역이란 완벽할 수 없다는 숙명을 감수하면서 시도하는 행위-과정이고, 이는 에이미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 되었다. 어떤 결과에도 파묻히지 않고, 그것을 불러일으킨 시작도 찾지 않고, 오직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수많은 가능성 속에 머물며 가장 아름다운 하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 자기 자신이 만든 인과의 응보를 맹신하지 않고 오직 과정 가운데에 머무는 것.

◇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과거는 외국어로 쓰여 있을 것이다

이런 방랑자 겸 번역가 특유의 달뜸이, 얼핏 읽기 쉽고 낭만적인 책으로만 보일 수 있는 ‘집앓이’의 여기저기에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이 자전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제니퍼가 아니라 에이미다. 하지만 책 속의 사진에 나와 있는 금발의 아이는 실제로 어린 제니퍼를 찍은 것이었고,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들 역시 모두 제니퍼가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언어를 번역할 때와 마찬가지로 지나간 삶을 그대로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없다. 제니퍼는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쓰면서 그 작업이 언어 번역과 닮았음을 암시한다. 즉, 제니퍼는 제니퍼를 에이미로 번역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제니퍼 크로프트라는 한 인간에게 주어진 삶과 그가 만들어 가는 삶은 비로소 하나로 합쳐진다.

그 합쳐짐은 화해일 수도, 극복일 수도 있지만 결론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한 권의 책과 같다. 오늘이라는 한 페이지를 쓰는 동시에 지금껏 써 온 페이지들을 끝없이 재번역하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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