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내한 리사이틀서 ‘24개의 프렐류드’ 40분 순삭
라벨 ‘쿠프랭의 무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감동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쇼팽의 ‘24개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있다.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쇼팽의 ‘24개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있다.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짧은 곡은 25초, 긴 곡은 5분 30초다. 프레데리크 쇼팽의 ‘24개의 프렐류드, 작품번호 28’을 전부 연주하면 대략 40분쯤 걸린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가장 작은 소품이라고 해도 그 안에 아름다움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갖가지 보석이 한데 모여 여러 색깔로 반짝이는 동시에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피아노 시인’의 음악적 구성미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24곡을 하나씩 연주하자 정말 ‘순삭’이다.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다. 2015년 조성진이 우승을 차지했던 쇼팽 콩쿠르의 준우승자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두 번째 내한 리사이틀에서 섬세하고 유려한 선율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2부에서 연주한 ‘24개의 프렐류드’. 쇼팽은 1836년부터 1839년까지 4년여에 걸쳐 ‘24개의 전주곡(프렐류드)’을 엮었기 때문에 전체를 관통하는 특별한 주제는 없다. 조성도 각각 달라 장조와 단조를 아우른다. ‘연습곡(에튀드)’보다 규모는 작지만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는 24곡 모두에 자신이 느낀 감상을 표제로 붙였을 만큼 흥미로운 작품이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제4번은 ‘무덤가, 진주 같은 눈의 시, 눈물의 노래’(코르토)다. 리샤르-아믈랭은 2·3·4마디에 붙어있는 구슬픈 선율을 열 손가락으로 살려내며 뭉클함을 전달했다. 쇼팽도 이 곡을 매우 좋아해, 그의 장례식에서 연주됐다고 한다.

제15번은 ‘빗방울 전주곡’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다. ‘수도원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사랑하는 아기를 달래 잠들게 하는 어머니의 마음’(코르토)이 느껴진다. 24곡 중 가장 길이가 길기 때문에 그 안에 다양한 표정이 숨어있다.

제20번에 대해 코르토는 ‘폴란드의 비애가 전면에 떠오름’이라고 적었다. 슬픔 속에 긴장감이 내포돼 있다. 악상은 단조롭지만 울컥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한스 폰 뵐로는 아예 이 곡을 대놓고 ‘장송곡’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제24번은 ‘젊은 피, 죽음’(코르토)이다. 격렬한 왼손의 움직임이 울분과 분노를 표출한다. 그 위로 오른손의 트릴과 위에서 내려찍어버리는 듯한 아르페지오 등 다양한 기교의 장면을 연출한다. 마지막 부분에선 쿵~쿵~ 천둥이 관객 가슴을 뒤흔들었다. 리샤르-아믈랭의 두 번의 왼손 주먹 타건은 24곡 전곡의 마침표를 찍는 거대한 종소리와도 같았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쇼팽의 ‘24개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있다.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쇼팽의 ‘24개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있다.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리사이틀 1부에서는 모리스 라벨의 작품 3곡을 잇따라 선사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원래 피아노곡으로 만들었으나 후에 라벨이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오케스트라 버전으로도 자주 연주된다. 파반느는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발생해 17세기 중엽까지 유행했던 궁중 춤곡이다. 어떤 형태로 추었는지 지금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리샤르-아믈랭이 피아노를 터치하자 옛날 스페인 궁정의 어린 공주가 나풀나풀 사뿐사뿐 춤을 추는 모습이 오버랩됐다. 라벨 특유의 낭만적 세밀함과 회화적 영상미를 잘 살려냈다.

1913년에 작곡된 ‘프렐류드(1913)’는 27마디에 불과한 짧은 곡이다, 연주시간은 2분정도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쿠프랭의 무덤’ 사이에 이 곡을 배치한 피아니스트의 절묘한 선곡과 재치가 돋보인다. 모두 6곡으로 구성된 ‘쿠프랭의 무덤’도 ‘프렐류드’로 시작하는데, 그 전에 연주하는 ‘프렐류드(1913)’가 연필로 희미한 윤곽선을 잡아가는 순간이라면 이어지는 ‘쿠프랭의 무덤’ 속 ‘프렐류드’는 물감으로 화폭을 완성해가는 순간이다.

라벨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벗들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런 비극적 마음을 담아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했다. 라벨은 여섯 송이의 꽃(제1곡~제6곡)을 준비해 그들의 무덤에 바쳤다. 추모의 곡이다. 이와 더불어 ‘쿠프랭의 무덤’은 프랑스 건반 음악을 아름답게 표현한 프랑수아 쿠프랭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곡이기도 하다. 쿠프랭이 구사했던 바로크 음악의 선법, 화성, 장식음을 라벨 특유의 논리와 리듬으로 엮어냈다.

리샤르-아믈랭은 라벨의 머리 속에 담긴 쿠프랭과 바로크, 그리고 친구들과 어머니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보여줬다. 16분 음표들이 방울방울 솟아나는 ‘프렐류드’,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정교한 ‘푸가’, 관능적이고 역동적인 ‘포를랑’, 오밀조밀한 음표로 기억의 상자를 연 ‘리고동’, 경쾌하고 우아한 선율이 돋보이는 ‘미뉴에트’, 끝까지 긴장의 속도로 유지하는 현란한 기교의 ‘토카타’가 25분가량 이어졌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쇼팽의 ‘24개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있다.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쇼팽의 ‘24개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있다.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앙코르는 3곡을 연주했다. 쇼팽 ‘녹턴 8번 내림라장조, Op.27-2’, 라벨 ‘마법의 정원’,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1악장을 들려줬다.

라샤르-아믈랭은 1989년생이다. 조성진(1994년생)보다 다섯 살 위다. 그는 오는 25일 다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선다. 이날은 독주회가 아닌 협연무대다. ‘유연, 자유, 최고’를 모토로 출범하는 필하모니코리아의 창단연주회에 출연하다. 지중배 객원지휘자와 호흡을 맞춰 라벨 ‘피아노 협주곡 사장조’를 들려준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은 최근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협연곡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을 맞추는 등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